데카르트와 과학혁명의 시기에 이르면 산, 강, 나무는 물론 동물도 영혼을 갖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인간을 신체와 영혼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용고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오늘날에도 강하게 남아 있다. 죽음은이러한 이원론자들에게 대단히 곤혹스러운 문제다. 왜 영혼은 갑자기 축거나 신체를 떠나야 하는가? 영혼이 신체를 떠난다면 과연 어디로 가는가? 찰스 다윈cturdes Daesin 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죽음에 대한 과학적 또는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했다. 19세기 말 다원주의자였던 아우구스트 바이스만August Weismann은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유전자형들이 급속한 세대교체를 통해 공급된다고설명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그의 글은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생물학자와 철학자들이 ‘생명‘을 말할 때, 그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에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생명(살아 있음)이 아니라, 무생물의 생명 없음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생명을 뜻한다. 생물학의 중요한 목표는 ‘생명‘이라 불리는 어떤 실체의 본성을 해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생명‘이 어떤 실체나 힘으로 가정됐다는 것이다. 철학자와 생물학자 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실체나 활력 vital force 을 찾아내려고 애썼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사실 ‘생명‘이라는 단어는 삶의 물화일 뿐이다. 그것은 독립된 개별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명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지만, 추상화된 ‘생명‘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 삶이 무엇인지 서술하거나 정의해볼 수 있고, 생명체를 정의해 볼 수도 있으며, 살아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것을 구분해 볼 수도 있다. 어떤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생명이 그 자체로서는 살아 있지 않은 분자들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설명해 볼 수 있다.
진화된 프로그램.
생물은 38억 년에 걸친 진화사의 산물이다. 그것들의 모든 특성은 그 역사를 반영한다. 발달, 행동 등 살아 있는 생물의 모든 활동은 유전 프로그램에 의해 부분적으로 제어되는데, 이때 유전 프로그램은 생명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유전정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생명의 기원으로부터 단순한 원핵세포로, 그리고 거대한 나무, 코끼리, 고래, 인간에 이르는 연속된 흐름이 있다.
과학은 신학과 어떻게 다른가?
과학과 신학을 나누는 것은 아주 쉽다. 왜냐하면 과학자는 자연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려고 초자연적인 것을 끌어들이지는 않으며, 또한 자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신적인 계시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이 인간은 자연 현상 특히 천재지변을 설명하려고 했을 때는 반드시 초자연적인 존재와 힘을 끌어들였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신성한 계시는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에게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진리의 원천이다. 실제로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모든 과학자는 가장 좋은 의미에서 종교를갖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하거나신성한 계시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과학을 신학과 구분하는 다른 특징은 과학의 개방성이다. 종교는 그들의 상대적 불가침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계시종교에서는 계시에 기초한 자료 중 하나의 단어에 대한 해석 차이로도 새로운 종교가 기원한다. 거의모든 이론에서 상이한 해석들을 찾을 수 있는 과학과는 극적으로 대조를이룬다. 새로운 추측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며 이전의 추측은 논박된다. 그리고 언제든지 상당한 지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실로 이것은 과학을 진전시키는 가설의 형성과 검증에서 나타나는 다윈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과정이다.
과학의 각 분과들에는 아직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현상들이 있다. 어떤 무척추동물(특히 소위 살아 있는 화석들은 왜 1억 년 이상 실제로 변하지 않은 채로 있을까? 동일 군에 속해 있던 유사한 종들은 멸종되었거나 극적으로 진화했는데도 말이다. 두 종류의 새 중 하나는 수컷이 새끼의 양육에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데, 왜 둘 다 똑같이 성공적으로 보이는가? 그 대답은 새끼가 먹는 것이 곤충이나 과일이냐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수수께끼들의 수는 50년 전 또는 100년 전에는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그동안에 그러한 사례들이 현저하게 높은 비율로 만족스럽게 설명되었다. 예를 들면 왜 사회를 이루는 곤충들에서 불임인 구성원들이 여왕의 자손들을 양육하는 데 헌신적으로 참여하는가와 같은 문제를 들 수 있다.
교배 불가능성이라는 기준으로부터 생물학적 개념이 나왔다. 이 개념에 따르면 종이란 생리적 장벽이나 행동적 장벽에 의해서 번식적으로적으로 격리되어 자연적으로 형성된 교배 가능한 개체군들의 집합이다. 생물학적 개념이 가지는 타당성을 완벽히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윈이물었던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좋은 왜 존재하는가? 왜 우리는원리적으로 서로 모두 교배 가능한 유사한 개체에서부터 아주 다른 개체에 이르기까지 단절 없는 연속성을 자연에서 발견하지 못하는가? 잡종에대한 연구가 그 답을 제공한다. 부모가 같은 종이 아닌 경우(말과 당나귀와 같이) 그 자손(노새‘)은 잡종이다. 잡종은 일반적으로 대부분 2세대 안에 불임이 되며 생존력이 감소한다. 그러므로 동종으로 불리는 밀접한 유연관계를 갖는 개체들 사이의 짝짓기를 선호하고 먼 유연관계에 있는 개체들의짝짓기를 허용하지 않는 메커니즘이 선택적 이점을 갖는다. 종의 번식적격리 메커니즘이 이러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생물학적 좋은 균형 있고 조화로운 유전자형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한동안 대부분의 유전학자는 진화란 단지 유전자 빈도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대진화적 변화에서의 발생의 역할은 무시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다시 이와 같은 발생의 매우 흥미로운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선택의 주된 대상인 개체는 발생 과정에서 유전자와 유전자 그리고 유전자와 환경이 상호 작용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작용은 진화적 변화의 허용 가능한 범위를 한정한다. 대부분의 종이 나타내는 표현형의 통일성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준다. 특정 종의 표준적인 유형과는 다른형태들은 안정화 혹은 정상화 선택을 통해 제거될 것이다. (9장 참고) 이러한 발생적 제약들에 대한 연구는 현대 발생생물학에서 흥미를 끄는 주요한 분야 중 하나다.
진화의 연구가 마음의 기원에 대해 어떠한 빛을 던져줄 수 있을까? 정활동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는 제한된 생각 때문에 마음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커다란 진전이 없었다. 오늘날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사람들은 정신 활동에 있어서 일부 동물들(코끼리, 개, 고래, 영장류, 앵무새)과 사람 사이에는 범주적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의식에 있어서도마찬가지다. 의식의 근거는 무척추동물은 물론 심지어는 원생동물에서도나타난다. 정신이나 의식은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는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영장류와 호미니드 조상 모두에 있어서 수없이 일어나는작은 도약의 연쇄를 통해 궁극적으로 만들어진 산물로 생각된다. 결코 한순간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중추신경계의 산물, 즉 정신은 비록 형성 단계에 따라 매우 일정한 속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천천히 꾸준하게 형성되었다. 의사소통과 문화의 발달을 일으킬 수 있었던 언어가 등장한 시기는 분명히 마음의 형성이 크게 촉진된 시기였음이 확실하다. 지난 40년간 우리가 얻은 한 가지 사실은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되는 과정이지만 뚜렷한 파동 양상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며, 생물계의 모든 특징이 동시에 또는 같은 속도로 진화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호리호리한몸집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여전히 ‘동물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부터유일하고 특별한 종인 현세인류로 이어지는 과정은 서서히 진행되었지만이는 변화의 수준을 크게 바꾸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