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법과 대륙법은 밖으로만 영향력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서로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영미법 국가들과 대륙법 국가들은 서구 세계의 일원으로서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온 만큼 접촉이많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헌법에도 유럽 계몽주의의 색채가 짙게배였고, 미국식 입헌주의는 거꾸로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헌법 지형을 바꾸어놓았다. 위헌법률심사제도(judicial review)는 오늘날 두법 모두에 정착되었으며, 대륙법의 창조물인 공유부동산제도가 미국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려 콘도미니엄(condominium)이 되었다. 미국 보통법(common law)의 산물인 신탁제도는 대륙법에 스며 들어가 있다. 가장 대륙법적인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대학의 법학교육도 이제는 영미법 국가에서 비슷하게 따라하게 되었다.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유럽에 《나폴레옹법전》(1804)과 같은 법전편찬이 유행했다. 그런데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발간된 법전과 중세의 보통법, 그리고 19세기 법전들은 모양만 다를 뿐 내용이 거의 같았다. 이 법전들은 서로 기본 개념도 비슷하고, 구조도비슷하고, 무엇보다 목차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여 년이 지나서 21세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통용되고 있는민법전에조차 초창기 로마법, 중세 보통법, 19세기 민법전의 흔적이 선명하다. 로마민법은 이처럼 대륙법 전통을 가진 국가에서 가장 오래,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연구된 텍스트다. 그래서 일부 민법학자들은 법 중의 법은 민법이고, 그중에서도 로마법이 최고의 법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식혁명을 추동한 첫 번째 원칙은 자연법이었다(특정 종교에서 주장하는 자연법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비종교적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자연법에서는 인간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미국 독립 선언‘과프랑스의 ‘인권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그 예다. 자연법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생명과 자유와 재산에 대한 천부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이 불가침의 권리를 확인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이 선줄한 대표로 정부가 구성되어야 한다.
법실증주의란 결국 국가가 국내외적으로 입법권을 독점하는 체제를 뜻한다. 그 첫 번째 원칙이 바로 혁명기에 발원한 권력분립이론이다. 법을 만드는 기관은 하나여야 하고, 다른 기관, 특히 법원이 법을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입법권은 국민이 선출한 기관에게 있다. 그래야 국민의 뜻이 법에 구현된다. 이 이론으로 인해 판사라는 직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판례는 법이 아니라는 점만큼은 일단기억해두기를 바란다. 옛날에 판결한 것을 기초로 새로운 판결을하는 이른바 선례구속의 원칙(stare decisis)은 대륙법에 없다. 대륙에서는 판례가 법이 아니다. 법원은 법을 만들 수 없다는 권력분립이론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륙법에서 법은 법률, 명령·규칙, 그리고 관습법이다. 이것 외에 다른 법은 없으며, 이 법들이 적용되는 순서 또한 정해져 있다. 법률이 가장 위에 있고, 관습이 가장 아래에 있다. 법률과 명령이 모순될 때는 법률이 우선하고 명령과 관습이 모순될 때는 명령이 우선한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대륙법의 특징이다. 대륙법에서 판사는 법을 기계적으로적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법인지 판사에게 확실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사건이 발생해서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할때, 대륙법 판사는 법률, 명령 · 규칙, 관습법 세 가지만 보면 된다. 그것 외에 다른 학설이나 교과서는 없다. 판례도 마찬가지다. 판례는 법이 아니다.
반면에 혁명 이념과 그로부터 발전된 거의 교조에 가까운 법이론의 영향을 덜 받은 영미법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가령 영미의 보통법(common law)은 법률과 판례와 관습법의 집합체이고, 그것을 법으로 인식하는 데 전혀 이견이 없다. 영미법 세계에서 보통법(common law)은 역사의 산물이지, 법 이론의 결과가 아니다. 국회가 제정한 법이 법이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그것만이 법은 아니다. 또 국회가 만든 법이 판례보다 위라는생각도 없다. 대강 순서를 매겨보면 법률, 명령 · 규칙, 판례라는 식으로 배열될 것 같지만 구체적 사건에서 보면 늘 그런 것도 아니다. 영미 보통법(common law) 안에서는 이 법들의 순서에 집착하거나특정 법의 우열을 주장하지 않는다. 훨씬 더 유연하게 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미터법을 채택했고, 십진법의 화폐제도를 도입했으며, 법전을 편찬했고, 법실증주의에 따라 법의 순서를 정했다. 이 모든일을 단 몇 년 만에 완성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특히 영미법 국가 법률가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는 참 신기하고 이상한 국가다. 법을 저렇게 쉽게 만들고, 쉽게 없애다니! 아주 오래전의 영미 보통법(common law)을 지금도 법으로 알고 따르는 영미법 세계에서는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륙법은 성문법이고, 영미법은 불문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많다. 특히 영미에서는 판례가 법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견일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이런 말은 두 국가의 차이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미국에도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못지않게 성문법이 쌓여 있다. 말 그대로 엄청나게 쌓여 있다. 미국 판사도 법 적용 시에법률과 판례 중 법률을 먼저 적용한다. 법률이 위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같은 사안에 관해서 판례보다 우위에 있는것이 법률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문법의 양이나 그 적용 순서를가지고 대륙법과 영미법을 나눌 일은 아니다.
영미법에서 법관은 일종의 영웅이고, 어른이다. 영미법 세계의 주인공은 주로 판사다. 코크(Coke)나 맨스필드(Mansfield), 마셜(Marshall), 스토리(Story), 홈스(Holmes), 브랜다이스(Brandeis), 카르도조(Cardozo) 등이 전부 이런 판사의 이름이다. 영미법은 사건 하나하나마다 치밀한 논리를 설파하고, 그걸 기초로 하나의 법 체계를 완성시킨 판사의 손에서 성장하고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다음 사건에서 판단의 근거가 되고, 선례구속의 원칙으로 귀결된다. 영미에서도 물론 입법부를 따로 두어 어떤 국가 못지않게 많은 법률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충적인 것이다. 영미에서 법은 판사가 선언하고 가꾼다. 그래서 판사들은 행정부의 각종 월권행위에 대해 꾸짖기도 하고, 위헌적 요소가 있다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무효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이처럼 영미권에서는 판사가 말해주는 법을 더 맞는 법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종의 ‘사법부 우위의 원칙‘이 법 문화 속에 정착되어 있다. 특히 미국의경우가 그렇다. 영미법 세계의 판사는 주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에서 경력을쌓거나 공직을 거친 사람들이다. 특히 검사 출신이 많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데, 가령 성공적인 경력과 동료 변호사들 사이의 좋은 평판, 정치적 영향력 등이 그것이다. 판사가 된다는 것은 나이 들어서 받는 훈장과도 같다. 판사가 되면 존경과 영예가 뒤따른다. 판사는 사법부고위직이기도 해서 월급도 많이 받고, 비서도 생기고, 연구원도 배정된다. 특히 주대법원과 연방대법원에 오른 판사는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며, 그들이 실시한 내용을 신문기사가 다루기 시작하고, 각종 연구논문에서 분석 대상이 된다. 그들은 이미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되어 있다. 그런데 대륙법에서는 아주 다르다. 대륙법 세계에서 판사는 그저공무원 중 하나로 여겨진다. 국가마다 상당히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판사란 관리에 지나지 않는다. 대륙 국가에서 법과대학이나 로스쿨을 졸업하면 다양한 진로가 앞에 펼쳐진다. 그중에서 특히 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시험을 봐야 한다.
시험을 통과해야 수습 판사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프랑스 등 몇몇 국가에서는 관사 시험을 보려면 특수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다음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주로 지방의 심급이 낮은 법원에서 정식 판사로 임명되고, 소위 연공서열형이라고 해서 능력과 나이 등의 요소를 감안해 한계단씩 직급이 올라간다. 급여도 미리 예정된 대로 올라가고, 판사 역시 임금 인상과 근무 조건의 개선, 신분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판사 모임에 가입한다. 대륙법 국가에서 이 외에 다른 방식으로 판사가 되는 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변호사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나 법학 교수들이 바로 높은 직급의 판사로 임명되는 국가가 없지는 않지만(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생겨난 헌법재판소 판사로 가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판사 직역은, 심지어 대법관까지도 주로 전문적인 판사 경력자들로 채워진다. 대륙법 국가의 판사 역시 대법원까지 올라가면존경과 예우를 받지만, 그건 판사에게만 국한된 대우는 아니다. 다른 행정부 고위 관료가 받는 예우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영미법과 대륙법에서 판사를 보는 관점이 사뭇 다른 이유를 추적해보면 로마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에서도 판사(iudex)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었다. 로마제국 시대 이전부터 판사는 주로 분쟁이 생겼을 때 행정관료 중 하나인 집정관(praetor)이 작성한 서면을보고 어느 쪽 말이 맞는지 판단하는 민간인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의 판사는 법에 대해서 문외한이었기 때문여 법을 알고자 하면 전문가를 찾아가야 했는데, 그게 바로 법학자였다.
그러다가 제국 시대에 이르러 법을 좀 더 잘 아는 사람들로 판사직이 채워지기는 했지만, 이때에도 판사의 역할은 황제의 의도를 잘 구현하는 것이었지 재판을 통해서 로마법을 완성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역할은 아니었다. 중세를 거치고 절대왕정 시대를 거치면서 비로소대륙의 판사들도 영미 판사들처럼 법을 창조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게 오히려 유럽 대륙에서는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판사들이마음대로 법을 해석해서 자기들만의 판례를 만들어 중앙정부의 입법권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혁명이 일어나고 소위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판사의 권한이 대폭 축소된 것 역시 절대왕정기의 우울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절대왕점기의 판사 전횡을 목도한 혁명가들이 국회만 법을 만들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즉, 직접적으로는 간접적으로는 판사가 법을만들 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앞서 제4장에서 본 바와 같이, 대륙법의 판사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오로지 ‘법률‘에 의거해야하고, 이전의 판례를 따라서는 안 된다. 선례구속의 원칙은 없어지고 대신 권력분립의 원칙이 자리를 잡았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의하면, 판사에게는 불완전하고 불명확하고 모순된 법률을 해석할한조차 없다. 법률이 그렇다면 판사는 자신이 달리 해석하려고 할것이 아니라 입법부에 유권해석을 신청해야 한다. 다만 이런 상황 자체가 그다지 많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고, 초창기 약간의 혼란을 거치겠지만 결국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판사에게 적시에 제공될 것이며, 판사가 유권해석을 신청할 기회조차 거의 없게 될 것이라 믿었다.
이런 그림에서 판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일을 기계적으로반복하는 전문가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상황에 맞는 해답을 입법자가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판사는 그 법률을 찾아내서 상황에 맞게 법률이 제공한 해답을 연결하면 된다. 이걸 법에서는 삼단논법 (syllogism)이라고 부른다. 법률을 대전제로 하고, 사실관계를소전제로 해서, 법이 정한 결론을 판사가 선언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넘어 사건이 조금 더 복잡해져도, 판사는 미리 정해놓은 해석원칙에 따라, 그것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판사다. 입법자가 만든 기계를 작동시킨다는 의미에서판사의 일은 기계적이다. 그래서 대륙법에서 유명한 사람은 판사가아니다(혹시 유명한 판사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유스티니아누스, 나폴레옹, 안드레스 베요 (Andrés Bello)와 같은 입법자나 가이우스, 이르네리우스(Inerius), 바르톨루스(Bartolus), 만치니(Mancini), 도맷(Domat), 포티에(Pothier), 사비니,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 유럽과라틴아메리카의 학자들이 대륙법의 주연이다. 대륙법 세계에서 판사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창의적이지는 않은 일을 하는 고위 공무원에 불과하다.
대륙법계 국가에서 법률해석과 관련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법관은 해석권이 없다‘는 종래의 도그마를 어디까지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점이다. 아직도 법관은 법 적용만 하면 된다고 믿는 학자들이 있고, 지금도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서 새로운 법학 이론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위 이익법학과 사회법학, 현실주의법학이 그것이다. 가령 스위스민법은 판사에게 어떤 해석원칙으로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만약 당신이 입법자였다면 제정했을 법률 조항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이전과는 다른 발상이다. 판사도 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다수설은 아직 바뀌지 않았고, 소수 견해가 다수 견해를 넘어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결국 판사의 법률해석권을 부정하는 태도는 대륙법 전통의일부로 아직도 살아 있는 셈이다. 앞서 본 것처럼 대륙법 세계에서 관례는 법이 아니다. 종전의 판례가 다른 사건에 관해 그 사건을 재판하는 법원을 기록하는 순간판사는 법 제정권이 없다는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어떤 법원도 다른 법원의 결정에 따를 의무가 없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어떤 쟁점에 대해서 상급법원이 명확한 해법을 제시했더라도 하급법원이 그와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부분의 대륙법 국가에서는 판결문을 공표하고, 변론을 준비하는 변호사들은 종전 판례를 참조해서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판사도 물론 자주 판례를 들추어 본다. 혁명 이론이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해도, 영미법계 법관들만큼이나 대륙법계 법관들도 종전의 판례에 충실하다. 대륙법계 법관들이 판례를 참고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종전의 관례가 권위 있는 법원의 견해이기 때문이거나, 이론적으로 탁월하기때문이다. 혹은 법관 입장에서 다른 생각을 하기가 귀찮거나, 나중에 파기환송당하기 싫어서일 수도 있다. 전부 영미법계에서 선례를따르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례구속의 원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으로 대륙법과 영미법을 나누는 것은 오해이며, 과장이다. 대륙법계 판사들도 선례를 따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반대로 영미법계 법원도 따르기 싫은 선례는 따르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가 내린 결정을 뒤집기도 한다. 이것 역시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럼에도 고정관념은 아직도 힘이 세다. 대륙법계 법률가들은 자기 국가 판사가 법 대신 종전 판례를 보고 판결한다는 사실을 애써무시하고, 영미법계 법률가들은 선례라면 무조건 따르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대륙법과 영미법의 차이는 ‘실제 법원이 어떤식으로 행위하는가‘에 있지 않다. 법원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정관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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