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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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제목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든다.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을 죽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물른 소설의 흐름은 죽음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죽여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위성이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다는 것이며, 그 당위성을 독자들에게도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된다.

어쩌면 이런 감정을 유발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살인에 대한 당위성은 없다는 뜻으로 역설적인 표현을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릴리는 테드가 아내를 죽이고 싶다는 말에

"솔직히 난 살인이 사람들 말처럼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조금 일찍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요? 게다가 예를

들어 당신 부인은 죽어 마땅한 부류 같은데요."

라는 대답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이 대사가 이 책의 전반에 걸쳐 누군가를 죽여야하는 이에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대사 중 '죽어 마땅항 부류'와 제목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의미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대사에 등장하는 '죽어'의 의미는 일반적인 생각이나 관점을 담아낸 반면 제목에 있는 '죽여'에 담겨 있는 의미는 자신의 의지나 행동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죽임에 대한 당위성 

릴리는 어린 시절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 베스를 괴롭히는 길고양이를 죽임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당하기 전에 상대방을 먼저 죽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게 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을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언젠가 자신을 성폭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쳇을 죽여버리고 만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당사자를 죽임으로써 처벌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릴리에게 죽임을 당한 이들은 어떤 이유로 그녀에게 당위성을 부여하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런 당위성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요즘 들어 신문 사회면이나 뉴스를 보다보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직 우리나라에 사형이라는 형벌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과연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많은 이슈가 되고 있다.

비록 법적인 결과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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