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인생이 죽을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이 질문이 내 머릿속을 채운다.
지나 온 삶에서 아쉬움이 남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다가, 문득 어떤 삶을 살든 영원히 반복된다면 삶의 의미가 있을까라는 허탈한 생각도 하게 되면서 오히려 무서운 저주가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하게된다.
'시작에서 시작하도록 하자.'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의 열한 번째 생애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19년 영국 시골 기차역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갓 태어난 아기 해리 오거스트가 산파의 손에 들려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는 이미 지난 여러 번의 삶을 기억하고 있다. 죽으면 다시 같은 해, 같은 장소, 같은 몸으로 돌아오는 존재, 저자는 이들을 ‘칼라차크라’라 부르는데, 마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듯 끝없이 순환하는 삶을 뜻한다고 한다.
처음 몇 번의 삶은 지옥이었다. 해리는 미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종교에 매달리고, 과학으로 설명하려 애쓰지만 답은 없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존재인 버지나아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 숨통이 트이게 되는데, 자신들과 같은 존재들의 모임인 ‘크로노스 클럽’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선형의 시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과 '다른 칼라차크라를 해치지 말 것'이라는 모임의 규칙에 더 해 "자신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무한테도 말하지마. 절대 자세히 알려주면 안 돼."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의 진짜 본론은 11번째 삶 끝자락에 찾아온 한 어린 소녀의 말 한마디로 시작되는데, 이 책의 첫 장에 담긴 의문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