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나의 속마음'.
칼 구스타프 융은 [내 존재의 의미는 나의 삶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않으면 세상의 반응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대가 무의식을 의식으로 밝혀주고 표현해 줄때, 그대의 무의식은 그대를 보다 좋은 삶의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다.]라는 결론을 전한다.
나도 모르는 나의 속마음.
무의식 속에 있는 나의 속마음을 향해 수 많은 질문을 던지며 그 무의식을 의식의 존재로 들러 내라는 의미인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무의식 속에 있는 것들을 의식으로 들러낼 수 없었던 이유, 두려움이 아닐까?
두려움.
무의식의 존재를 의식으로 드러냈을 때. 내게 다가올 현실. 두려움이라는 그 무거운 마음 때문에 쉽사리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직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어두울 것 같은 미래의 일이 떠오르기에 두려운 것이 아닐까.
[미래의 감정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 닥쳤을 때를 가정하여 자신이 슬플지 기쁠지 상상하지만, 그것은 상상일 뿐이다], '미래가 아닌 현실의 행복을 설계하라'라는 주제로 미국의 심리학자인 데니얼 길버트가 전한 말이다. 두려움은 상상이고 현실의 행복은 내가 지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무엇이 우선일지는 어느 누구한테 물어보더라도 미래의 불안이 아닌 현실의 행복일 것이다. 현실의 행복을 하루하루 더해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살아가면서 수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생긴다.
뒤돌아보면 생기지 않았던 일이거나 극복하였던 일이다. 별 일이 아닌것임을 알고 있지만 오늘도 나는 미래에 일어날 부정적인 생각을 안고있다.
'좋은 것, 새로운 것, 행복한 것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긍정의 페르소나를 썻을 때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라는 저자의 마지막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어쩌면 둘다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의 일들이지만 지금 나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