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론 범우문고 249
토마스 페인 지음, 박광순 옮김 / 범우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어떻게 알게되었는지,, 김영란 대법관의 헌법이야기라는 책에서 알게 된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궁금했었다. 그래서 읽은 책. 토머스 페인의 상식론. Common Sence.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시 말그대로 그래도 되나? 했던 중간파, 독립 그 자체를 꺼렸던 반대파의 생각을 바꾸게 했던 책이다. 사실 책이 아니라 팸플릿으로 이 짧은 글이 어떻게 많은 이들의 생각을 바꾸게 했을까. 궁금했다.


책은 토머스페인의 삶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상식론의 전문을 싣고 있다. 토머스페인의 삶만을 들여다보면 이런 삶을 살았던 이가 어떻게 이런 책을 썼을까 싶게, 그는 평범한 사람이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코르셋 제조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코르셋 제조를 배웠고, 그게 싫었던 그는 가출해 선원이 되어, 배를 탔다. 결국 아버지에 의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코르셋 제조를 했지만, 다시 주조업자의 감시인, 밀수입의 감시인등의 일을 했다. 결국 부정사건에 연루되 면직당했지만. 이러저러한 일을 하다가 37세에는 완전히 무일푼이되어 두번째 아내와도 이혼해, 비참한 삶을 살지만, 이때 페인은 일자리를 찾아 영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나 미국으로 간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이 책, 상식론을 쓴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던 이가 이런 책을 썼을까.

사실 그는 시민 혁명의 중심에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당위성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고,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에 있었다. 그리고 가장 민심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며, 영국의 조지 3세의 폭정을 지켜봤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국가가 가지는 불합리에 대해 그 누구보다 분개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퀘이커 교도였기에 가난했지만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상식론은 국가 즉 정부의 탄생의 원리, 그 원리를 통해 영국 정부의 불합리성, 미국 국민의 권리를 일깨우며, 영국 왕정의 본질을 폭로하고, 영국 안에서 미국의 번영과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설명, 그리고 미국 스스로가 가지는 힘을 말하고 있다. 

페인은 정부의 탄생의 근거가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불행을 막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 평안하게 서로를 인정하며 살수 있다면 국가는 필요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공존하기 위해 도덕적 결함을 메꾸는 일을 하는 것이 국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세워진 국가에서 시민의 손으로 선출한 대표가 아니라 왕정이라는 형태는 옳은가? 에 대해서 비판하는 부분은 굉장히 신랄하다. 이미 세습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왕정은 신성한 권위를 잃었고, 그것이 나타내는 바는 압제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시민들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그들의 권리가 당연하다는 오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당연한 글이지만, 당시를 놓고보면 왕정을 이렇게 비판하다니 상식론을 출판할 출판사를 찾지 못할 정도 였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이 왕정에 대한 부분을 영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마그나카르타에서 그 모순을 말하는 부분이 꽤나 인상적이였다.


개인적으로 페인의 상식론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미국 독립의 당위성”이다. 이부분을 영국의 식민지로써의 미국은 더이상 번영을 할 수 없다는 근거와, 미국이 가진 힘을 말한다. 영국이 말그대로 본국과 식민지를 놓고 볼때, 식민지의 발전을 바랄 수 없다는 측면, 그리고 영국이 정말 미국을 지켜줄수 있는가에 대한 모순, 그리고 미국이 영국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약한가에 대해 군함과 그들이가진 풍부한 자원, 인력을 들어 그렇지 않음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지금 대한민국의 위치에 대해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근대화까지 강대국에 대한 의존성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도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글쎄. 우리는 더이상 50-60년 전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물론 우방국과의 친교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 우리가 꼭 몸을 낮춰야 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생각이다. 늘 한쪽 편에서만 서는 외교가 더 위험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다. 필요에 의해서는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외교 버퍼가 있어야할 것 같은데, 요즘은 그래보이지가 않아서.

그래서 1700년대 쓰여진 책이지만, 자주국방, 자주외교에 대해 지금을 우리의 상황을 대입해보아도 전혀 시대가 느껴지지 않는 책이다.


“요컨대 우리의 번영을 질투하는 국가가 과연 우리를 통치하기에 적합한 나라인가?” p.86

이말을 통치라는 말에서 외교라는 말로 바꿔본다면, 어떨까.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책이다. 


진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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