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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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북클럽 추천 도서라는 태그를 보고 읽은 책. ‘만화책?“ 웬 만화책 추천이지…하면서 읽었다. 태그만 보았기에 사실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몰랐고, 별 기대없이 본 책인데, 읽으며 내내 일전에 알쓸신잡에서 김영하작가님이 추천한 “내 어머니 이야기”라는 만화책이 떠올랐다.

이 책은 작가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의 일대기, 엄밀히 말하자면 유대인으로써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 이다.


그런데 왜 쥐로 유대인을 표현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책의 말미에 등장하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디즈니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추측, 나치가 유대인을 일컫던 것이  하수구의 더러운 쥐들과 같다는 영상 때문이였는지….

책은 아버지 블라덱이 어머니 아냐와 결혼하던 청년시절 부터를 시작한다. 재밌는 점은 중간중간 아버지와 이 만화를 작가 본인의 껄끄러운 관계가 등장하는데, 아버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이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래도 꾸준히 들으며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에피소드가 아버지 이야기의 무거움을 덜어준다. (뭔가 현실판 아버지와 아들이랄까) 


다소 부유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히틀러의 등장과 동시에 말그대로 삶에 대한 생존의 시기로 들어간다. 서서히 압박해오는 나치의 압박에 차차 조금씩 가진것을 잃고, 버려가며, 도망자신세로 목숨만 겨우 연명한채 살아가지만, 결국 아우슈비츠까지 끌려간다. 그 속에서 아버지는 처세를 통해 겨우 살아나왔지만, 그런 살아남기위해 처절했던 당시의 시간으로 인해 아버지는 쓰레기 한조각 까지 철저하게 아끼는 인물이 되어버리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전쟁 이후 아버지와 재회해 아들(저자)을 낳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듯 했지만, 결국 자살을 택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만화로 완성해가는 시간 속에서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다소 유해지는 것을 보며, 어쩌면 비정상적이였던 아버지의 삶을 상대적으로 정상적으로 살아온 아들의 이해가 보이기도했다.


 신기했던 점은 책 속의 아버지의 삶은 완연한 이분법적 인물들의 대립으로 보이진 않는다. 우리가 일제치하 속에 있을 때와 비슷했달까. 나치에 부역하는 유대인이 있었고, 유대인을 돕는 독일인도 있었다. 독일의 선전과 핍박으로 인해 폴란드인은 같은 폴란드계 유대인을 고발하기도했고, 책의 화자인 아버지 조차도 유대인이지만 나치에 부역하는 인물들에게 처세를 통해 살아남기도 했다. 그런 탄압속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는 전쟁 이후에 흑인은 모두 도둑놈이라는 인종차별주의적 사고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받아야만했던 온갖 차별과 핍박에 살아남은 인물이면서도 말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였다. 인종차별을 통한 한 민족의 말살은. 그 일이 어떠했었는지는 많은 책들을 통해 말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로 보여지는 한 사람의 인생 속에서의 그 사건은 더 생생한 가혹함으로 다가온다. 어떤 삶이였는지, 수백만명의 죽음보다 한 사람의 일생으로 보여지는 것이, 그리고 그 삶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더 생생하게 보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절대 다시 겪지 않아야할 역사를 읽으며, 정말 전쟁 이후 우리의 삶은 정말 평화로워진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평안하다고 전세계가 평안하지는 않으니. 여전히 전쟁을 하고 있고,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맑그대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각종 전쟁과 인종차별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저자의 <쥐>는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준다. 역사를 통해 누군가에 대한 혐오가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를.


진짜 추천!


“하지만 신은 거기 오지 않았단다. 믿을 건 오로지 우리뿐이었지”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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