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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 ㅣ 웅진 세계그림책 15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04년 6월
평점 :

Augustus Leopold Egg <Past and Present, No.1 > 1858. Oil on canvas . 635 x 762 mm
사실 아이들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매우 지루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다니는 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주 어릴 적 부터
엄마와 함께 미술관을 자주 가본다면, 그리고 그림을 하나 하나 찬찬히 들여다 보는 과정을 익힌다면,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부터는 미술관이 좀은 즐거운 장소로 변하게 되지 않을까요. 나아가 도서관 만큼 신기하고 새로운 지식이 가득한 장
소라는 것을 알게 될 테지요.
미술관을 위한 길잡이 책
미술관을 위한 길잡이책. 저는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을 이렇게 이름붙이고 싶군요. 앤서니 브라운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 세상엔 미술관이라는 것이 있단다. 그곳엔 그림이 많이 있지. 많은 그림들을 하나씩 보자꾸나. 재미있는 그림도 있고, 무
서 운 그림도 있지. 어떤 그림은 그 속에 들어가 주인공과 함께 놀고 싶어. 내가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그림들이
많아.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거야. 그림속의 사자가 놀자고 뛰쳐나오면 어떻게 하지?"
등등. 앤서니 브라운은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당기고 있습니다.
이책은 단순히 어린이용 그림책은 아닙니다. 제법 자세한 미술 설명서이자 가이드북이기도 합니다. 그림 <과거와 현재 >에
서는 그림의 의미를 살펴가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콜론들리가의 여자들>에서는 다른 그림찾기 게임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서 아이들은 그림을 찬찬히 살펴가는 훈련을 시작하는 거지요.
명화를 소재로 '다른 곳을 찾아보세요'라는 코너를 마련했는데, 재미있습니다. <만남, 또는 좋은 하루 되세요, 호크니씨>라는
그림을 앤서니 브라운은 특유의 익살로 패러디 했는데요, 커다란 삼지창에 쏘시지는 보다가 빵~ 터졌습니다.
무겁고 심각한 그림이 등장하는 까닭은
그런데 그림 중에는 어른이 봐도 심각한 그림들이 있지요. 전쟁을 배경으로 한 <퍼슨 소령의 죽음>, <배지를 단 자화상> <과거와 현재>같은 그림은 아이들이 별로 좋아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퍼스 소령의 죽음>은 군인들에게 쫓기는 귀족 일가를
보여주는데, 공포와 안개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현대의 것으로 패러디 됩니다. 군인들은 주인공네 가족 가까이
에서 총을 겨누고 있네요. 무서운 그림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같은 그림은 가정이 파탄나는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어머니는 바람을 피웠고 가정은 위태롭습니다.
색채는 음울하고, 누구도 웃고 있지 않군요. 굳이 아이들이 읽는 책에 이렇게 심각하고 무거운 그림을 끼워넣었을까? 밝고
발랄한 그림도 충분히 많은데. 왜 작가는 이런 무거운 작품을 선택한 것일까요? 아마 앤서니 브라운 만이 갖은 독자적인 가치관이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린이라고 해서 우리 삶의 가볍고 경쾌한 부분만을 늘 보여줄 순 없는 일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미 <돼지책>에서도 우리 사회의 엄마에 대한 대접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과 연
결해 본다면 아주 이상할 것도 없다 싶습니다.
미술관, 누군가에게 인생의 이정표를 열어줄 수도
이 책은 첫 시작을 이렇게 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커서 뭐가 될지 몰랐습니다.
어느 해 어머니 생신이었지요.
그날 어머니는 색다른 곳으로 나들이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내가 뭐가 될지 결정된 것은 바로 그날이었어요.
사람은 언제 어느때 어떻게 새롭게 자신을 발견할 지 모르는 무궁무진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가 자전적인 이야기
라면 아마도 앤서니 브라운은 미술관에 갔다가 그림책 작가를 시작하게 된 것이네요. 나가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도 어느날
미술관에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또다른 결심을 하게 될 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