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수녀의 미국 미술관 기행 1
웬디 베케트 지음, 이영아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Piet Mondrian (Mondriaan) : Broadway Boogie Woogie   / The Museum of Modern Art of New York 

 

오래전 EBS 방송에서 <웬디수녀의 미술관 기행>을 본 적있다.  BBC에서 기획한 것인데, 나이든 수녀님이 미술을 설명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수녀복을 입은 미술해설자는 흔한 풍경이 아니다. 뜻밖에도 그녀는 종교에 치우치지 않았고, 사람들의 세상살이의 고달픔도 잘 이해하는 너그럽고 열린 사람이었다. 물론 미술품에 대한 설명도 참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고, 미술사의 앞과 뒤를 연결하겠다는 강박관념이 없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 미술을 좋아하고, 그래서 자기가 아는 만큼, 느낀 만큼 소파에 앉아 차를 나누며 이야기 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무릇 전문가란, 이런 느낌이고 이런 자세여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가물 가물한 기억 속에서 책으로 <웬디수녀의 미국미술관기행> 을 읽게 됐다. 미국의 미술관이라면 모마나 보스턴미술관 정도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미국에는 미술관이 많다! 놀랍다!  책으로 만나는 웬디수녀는 오래전 방송에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부드럽고, 조근조근하며, 설명과 해석에는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의 장점을 하나씩 짚어보자.

1. 숨어있는 이야기 찾기

            ... 소녀들은 무대안에 고립되어있고, 19세기 치고는 입고 있는 옷도 빈약하다. 그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가족들이 아니라 먹이를 찾아 염탐하고 있는 남자들이다. 한 남자는 그들을 더 자세히 보려고 오페라
        글라스까지 가져왔다.
        그리고 무대왼편으로 들어와 어슬렁 거리고 있는 사람은 휴가 나온 군인이다. 인사에 답례하며 팔을 밖으로
        내미는 대신 안으로 꼭 부여잡고 있는 소녀들의 팔 동작은 그들이 어떤 위협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준다.
                                           -  르누아르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곡예사들> (시카고미술관) 설명에서-

이 그림을 그냥 보았더라면 그냥 서커스단 소녀들이 르누아르 특유의 화사한 피부빛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웬디수녀는 소녀들의 몸짓, 관중들의 행동을 통해 그림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녀의 설명만큼 그림이 보인다. 그녀는 탁월한 안내자다. 

2. 작가에 대한 서정성 깃든 해석 

      ...빛나는 색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하다. 정말 우울하지만 그것이 바로 뭉크다
      운 표현법이고, 그가 진정으로 믿는 것을 표현한 것이기에 이 그림은 보는 이에게 감명을 준다. 
      - 뭉크 <선창의 소녀들> 설명에서 -

이 글귀는 뭉크에 대한 짧지만 총체적인 평이다. 일반적으로 뭉크에 대한 해석에는 때론 미술사며 사회사, 심지어 심리학 사전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다가서는 설명은 이 정도로 충분하며, 어떠한 학술적 평가보다 뛰어나다. 

 
3. 공예와 조각품을 주묵하다

지금껏 나의 관심은 평면회화에 주로 머물러 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웬디수녀의 설명을 따라가보니, 고대의 조각품과 공예품이 너무나 멋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목록을 말하자면, 고대미술품으로는 < 이집트 여왕의 두상단편>, <페루 제의용 칼 > , 공예품으로는 <님펜부르크의 코메디아 델라트레 조각상들>등이 있다. 비유럽권 미술에 대한 조명도 빼놓을 수 없다.<미흐랍의 기도벽감> (이란), 이요바의 두상(나이지리아)등이다. 현대 조각품으로는 마틴 퓨리어의 <성소>라는 작품에 오래동안 눈길이 머문다.


4. 동양미술에 대한 이해

동양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은 드물다. 딱딱한 학술서를 제외하고는 동양의 전통미술을 부드럽게 에세이로 펴는 책은 별로 보지 못했다. 예전에 홍대미술교육원에서 동양미술사를 들을 때 한시간 한시간이 새로웠다. 대개 처음보는 그림이 많았기에. 우리는 어쩌자고 고호나 렘브란트르르 먼저 배웠을까. 소외된(?) 동양미술사를 누군가 재미있게 풀어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면에서 웬디수녀의 관심 폭은 매우 넓다. 동양의 미술품은 많은 부분 작가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따라서 해석을 제대로 하자면 한문은 물론 당대의 철학과 시대사조까지 이해해야 한다. 서양인이 동양의 미술을 해석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웬디수녀는 돋보기를 들여대며 열심히 탐구한 듯하다.

<학자의 책상>이라는 제목의 글은 중국의 선비들이 사용했던 문구류에 대한 설명이다. 책상가리개, 연적, 붓통, 코담배병등이 주인공이다. 옥으로 만든 코담배병에 대해 그녀는 이런 감상을 덧붙인다. 

           ... 중국인에게 옥은 정신적인 돌이다. 단단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만져도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완벽하다. 바로 우리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바가 아니던가. 그것을 만지고, 부드럽게 쓰다듬고, 그 미덕을 찬찬히
           음미하는 것은 일종의 내성(內省)행위였다. 신성한 평화, 그리고 신성한 기(氣)의 암시였다.

웬디수녀는 ' 내적인 자기성찰' 이라든가. 기(氣)에 대한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 

 

4, 아쉬운 점

무엇보다 편집이 별로다. 출판사는 예담. 시각효과가 중요한 책이라 아쉬움은 크다. 어떻게 후지냐 하면 책을 펼치면 헤드라인이 복잡하게 오간다. 위에도 있고, 아래에도 있다. 한편당 글이 비교적 짧은 편인 책에서 굳이 발문을 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 게다가 이 발문들은 내용의 이해를 돕기보다는 책의 여백을 메우려는 꼼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문이 짧은데, 작가소개, 그림들어가는 자리, 발문 등이 엉켜서 눈이 어지럽다. 책을 만들 때는 미적감각이 필요하다. 책을 만드는 미적감각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도 딱히 할말은 없지만. 웬디수녀의 <유럽미술관산책>의 경우는  편집이 깔끔하다. 굳이 이 미국편이 정신없는 편집이 된 이유는 뭘까?

이 책은 서교도서관에서 읽었다. 오늘 포스팅을 하다보니 이미 이 책은 여기서는 품절이라고 한다. 절판되었다는 뜻인가? 하지만 충분히 오래 오래 여러사람들에게 읽힐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다시 복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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