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그림처럼 - 나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일상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존 싱어 사전트<마담 X의 초상 > 1883~1884 
그림의 주인공 마담X는 귀족집안의 여인이다. 이 초상화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고
한동안 사교계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고 한다. 

 미술에세이의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90년대 초반만해도 전문미술사가의 교과텍스트용 미술사가 주를 이루었다. 출판사만해도 예경아니면 시공사가 주종이었다. 학고재에서 이주헌의 미술에세이가 나왔고, 출판계도, 미술계도, 그리고 대중도 미술이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뒤로  한동안 미술에세이 세계에선 이주헌의 독무대였다.전공자는 쉬운 글을 쓰려하지 않고, 미술이란 대상이 만만치 않기에 누구나 쉽게 그림이야기를 쓸 수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시인 최영미, 페이퍼 편집장 황경신 등 미술애호가인 글쟁이들의 글이 쏟아졌고, 불명예스러운 얘기가 따랐지만 한젬마의 책에서 확실히 미술도 대중서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미술에세이가 점차 전공자에서 비 전공 글쟁이들의 무대가 되려는 즈음, 이주은의 책은 미술사 전공을 한 사람이 쉽게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어서 반갑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쉽거나 (내용이 빈약하거나 감상에 치우친)가 아니라 딱 적당한 혹은 쉽고 재미있는 글이 호감간다.

이주은의 <당신도 그림처럼>의 장점을 보자면, 

1. 쉽고 일상적인 접근으로 그림을 말하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 그림으로 넘어가서 그림이야기를 하고 -> 다시 이 그림을 통해서 일상을 이야기로 맺는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주은이 주로 삼고 있는 '일상'의 테마는 위로다. 그녀 역시 이제 불혹에 들어섰고, 우리사회의 경쟁과 속도에서 '밀려난'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조근 조근 얘기를 건네온다.    

  무한한 우주 속에 서서 사람사는 일이란 뭐 그리 대단할 바 없다고 포기하듯 인정하고 나면, 역설적이게도 삶의 희망이
  다시 움트기 시작한다. 내 인생 전부를 걸었던 일이 실패할 지라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작은 실수처럼 대할 수 있는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면 된다는 억지스런 자기 최면이 좀체 약효가 없을 땐, 광할한 공간 앞에 서보라. 당신 안의 거인이
 '야호'하고 심호흡할 수 있도록. (23쪽)

 
2. 시대사, 사회사에 대한 접근 

그림을 볼 때 시대를 이해하면 더 쉽다.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그림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깊이가 있다. 그림은 오늘을 돌아보게도 한다. 이 책은 그림이 만들어진 시대를 통찰하면서, 오늘의 시간을 말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중세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신분 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주어진 생활에 의
  문 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평등해진 근대사회에서 기회는 무제한으로 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직업을
  갖는다거나 부자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등한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기대하고, 기대한 만큼 상처받으며 산다. ‘하면된다’의 세상에 살면서
  도 요것밖에 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무능탓이라는 자책이 사람들의 마 음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기회를 박탈당
  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수시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비참한가.(20쪽) 
 

  커피하우스는 제 2의 캠퍼스라고 불릴 만큼 토론과 지적인 대화가 오가는 장이 되었다. 이렇듯  '대화'를 양성하는 커피하우
  스가 글의 문체에 끼친 영향을 획기적인 것이었다. 무겁고 장황한 셰익스피어식이 문체는 사라지고 점차 대중적이고 경쾌한
  대화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구어체 문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것도 알고 보
  면 이 시기 커피하우스 덕분이다.  (145쪽)

이 책은 그림에 관한 이야기 이지만, 시대와 사회변화를 함께 담아내어 마치 인문학서를 읽는듯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3. 편집의 진화 

이 책은 어떤 면에서 편집의 승리라는  생각도 든다. 책은 네개의 섹션으로 되어 있다. 봄, 여름, 가을 , 겨울.
딱히 계절분류를 해야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만 많은 그림과 이야기를 네가지로 분류해 놓으니 훨씬 정리되어
보이고 그럴 듯해 보인다.

판형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크기인지라 그림이 깨어져 (양면으로 나뉘어) 나오는 경우가 없다는 점도 칭찬하고 싶다.
많은 그림에세이 집들이 몰이해 속에 그림이 양면으로 나뉘는 편집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속으로 말려들어간 곳은
전혀 형태파악이 안된다. 이해안되겠지만, 이런 편집 부지기수다.

그림의 부분도와 전체도의 배치도 깔끔하다. 미술책을 읽다보면 텍스트 따로, 그림따로 배치된 책이 많다. 읽다 보면 얼마나
정신 사나운지...이 책에선 그런 점이 없어서 좋다.
그림이 주 제목이 되지 않고( '고흐의 해바라기' 등과 같은 예) 감성적인 제목을 따로 뽑았다. 제목들은 한마디로 감성 그 자체다. 예를 들면 ' 불안이 거인처럼 커질 때'  ' 쿨한 세상에 올드 보이로 살기' ' 시간 앞에 허둥대는 당신에게' 등이다. 저자의 좋은 글에 편집자의 아이디어, 명확한 독자층 분류등으로 인해, 좋은 책이 나온 것 같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 중 하나가 '대중의 눈높이'일 것 같다. '대중'을 누구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이다.
<당신도 그림처럼>은 대중의 눈높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책으로 보인다. 그리고 저자인 이주은은 전공자의 입장에서 여성용 에세이와 그림의 미술사적의미 사이에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곰브리치의 미술사 못지 않게 대중미술서는 꼭 필요한 것이며 미술을 커피처럼 즐기는 것 또한 나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저자인 이주은, 정말 글 맛깔나게 잘쓴다. 사회
문화적인 인문학 지식도 해박하다. 그래서인가 기꺼이 시대의 통찰을 풀어낸다.
<당신도 그림처럼>은 좋은 편집자와 좋은 필진의 조화가 이뤄낸 멋진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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