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도 세월호냐” “언제적 세월호냐“ 라는 말이 주위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내 또래의 지인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그러게. 10년이면 뭔가 밝혀지거나 해결될 법도 한 시간인데, 왜 세월호는 ’아직,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는걸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14년 4월 16일, 부활주일을 앞두고, 314명의 생명이 바다 안에서 억울하게 죽거나 실종됐다. 나는 매년 4월 16일이 되면,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이제는 가슴 깊이 상흔으로 남은 그 기억을 끄집어 올린다. 그리고 조용히 희생자들의 영혼과 유가족들의 평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 같다.

이 책은 세월호의 ‘기억의 공간’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위원회’에서 기획했다.

‘기억의 공간’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아서, 책을 읽으면서 조금 놀랬다. 목포신항만 세월호 선체와 팽목기억관 외에도 단원고 4.16기억교실, 인천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제주기억관 등이 세월호에 관한 기억을 품고 있었다. 단원고 생존 학생을 위한 ‘쉼표’는, 여러가지 이유로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이 아픈 건 서울시의회 앞에 자리한 ’기억과 빛’이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기억과 빛‘은 이미 한차례 광화문 광장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적 있었고,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한데. 국가가 먼저 그 공간을 지켜줄 순 없었을까...
📍"커다란 슬픔 곁에 함께하며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배우고 있다. ‘기억과 빛’이 이 광장에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한 일인 건, 슬픔을 추방한 삶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어둠을 간직하지 않은 빛은 오롯한 빛이 아니다. 빼앗긴 이들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함께 슬퍼하는 이들의 노력이 살아 숨 쉬는 이 곳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다.“ (163)

‘기억하는 사람들’에선 4.16합창단 단원 안영미 님 이야기와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대표 김명임 님 이야기가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두 사람은 세월호에 자녀를 먼저 떠나보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합창단 공연과 연극을 통해 자녀를 기억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낸다. 4.16합창단은 지난 10년간 300회가 넘는 공연을 했고, 노란리본 극단은 “아이들이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공연을 한다고 했다.
합창단 활동, 연극, 노란리본 만들기 등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끈끈한 연대감을 느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연결되는 게 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노래라는 게 음을 달아서 말을 하는 거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우리의 메세지를 던진다는, 그러한 마음을 다해 불러요.”(309)
📍"사람이 오래 살면 여러 사건을 겪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참사가 되풀이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전혀 변화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정말 비슷하게, 똑같은 희생이 되풀이되는 거거든요.“(334)

아픔을 빨리 털어내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아픔을 기억하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고 힘든 일이니까. 그러나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 살이 돋지 않으면 그 상처는 곪아서 또 다른 상처를 불러온다. 상처를 자주 들여다보고 꼼꼼히 치료하며 상처가 반복되지 않게 노력을 기울이는 건 이런 이유로 중요하다.
‘기억’은 상처에 딱지를 만들고 새 살이 돋게 한다. 상처가 재발하지 않도록, 상처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기억은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세월호를 기억해여 하는 이유는, 세월호는 여전히 지금, 여기에 있고,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럼에도 육아 - 나를 덜어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하여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지우 작가의 신간. 갑자기 초인종을 ‘띵똥’하고 누르듯 찾아온 아이를 낳고 키운 시간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마음들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육아를 미화하지도 않고 설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논쟁적이거나 자극적이지도 않게, 아이와 함께하는 자신의 세계를 그저 담담하게 얘기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고 즐겁고 행복했던 사소한 순간순간을. 그리고 그 때마다 발견하는 삶에 대한 통찰을.
그래서 이 책은 얼핏 육아일기 같지만, 가만히 읽어보면 아이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작가 자신의 성장스토리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삶을 더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일종의 선언문 같기도 하다.

다음달이 되면 나는 결혼 5년차 부부가 된다.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어서 남편에게 ‘딩크’로 살자고 제안했다. 신체도 건강하고 정신도 건강하며, 아이를 낳지 못할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할 것 같아서, 아이를 사랑하기엔 내 사랑의 용량이 너무 적어서, 무엇보다 아이를 낳는 게 그 아이에게 궁극적으로 좋은 일일지 확신하지 못하겠어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

특별한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나는, 정지우 작가가 말하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서사와 감정을, 지금껏 갖지 못했듯 앞으로도 갖지 못할 것이다. 후회하게 될까? 잘 모르겠다. 지금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보다, 가임기 여성에게 주어지는 의무보다, 예측되는 현실의 혹독함이 더 두려우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은 ‘아이를 위해 나를 덜어내고 또 다시 아이로 나를 채우는 삶’도 그럭저럭 살 만하다는 생각, 아이를 통해 내가 ’누군가를 지켜내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혹여, 나중에 내가 “그럼에도 육아”라는 결정을 하게 된다면 그 출발점은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지금이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드는 또 다른 생각은, 정지우 작가의 책은, 수려한 문장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글은 없다. 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너무나도 무난해 보이는 글. 그런데 가만히 읽다보면 이상하게 빠져들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덤덤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묘하게 마음을 가득 채운다. 담백하게 털어놓는 인문학적 통찰들이 머릿속을 정돈 시키고, 사르르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말하자면 이 책은, ’집밥‘ 같다. 자극적이지 않아 혀가 단번에 맛있다고 느끼진 못하지만,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모를 때도 있지만, 어느새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채워주는 집밥. 식사를 준비하는 이의 사랑 한 스푼, 함께 먹는 사람과의 즐거움 한 스푼,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내는 여유 한 스푼이 더해진 집밥. 이 책은, 그런 맛이 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모두의 성장에 조금은 더 눈이 밝아지는 일 같다. 자라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삶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란다.” / 181
📍“언젠가 늦은 밤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가 어질러놓은 블록 하나 없는 날이 오면, 나는 아마 약간 허탈하게 소파에 앉아 잘 정돈 된 텅빈 듯한 집을 다소 허전하게 바라 보고 있을 듯하다. ... 삶이란 본디 부대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정이 있고, 애씀이 있고, 사랑이 있고, 보람이 있다. 그런 걸 하려고 사는 것이다.” / 73
📍“내 세월 , 내 시간, 내 삶은 이것을 위해 여기 있다. 나라를 구하거나, 노벨상을 받거나, 거대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하잘것없는 것으로 치워버린 자리에서, 그냥 사랑하며 소모하고 떠나보내기로 택한 것이 어느 시절의 삶이고, 하루 이다.” / 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도. 2013년, 그러니까 11년 전에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제목으로 초판 출간 됐던 책. 독자들의 복간 요청에, 작가가 원래부터 지었던 제목 ≪원도≫로 11년만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책은, ’원도‘라는 실패한 한 사람의 독백과 기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 마치 꿉꿉하고 스산한 지하실 같기도 하고, 피비린내 나는 상처를 오랜기간 방치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 읽는 내내 묘하게 우울하고 찝찝했다.

원도는 횡령과 사기, 탈세와 살인혐의로 쫓기는 신세다. 가족도 떠나고 모두가 외면하는, 구제 불능에 재활용도 불가능할 것 같은 쓰레기 같은 삶. 검붉은 피를 토하며 여관방에 들어가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그 마저도 여관 주인에 의해 실패하고 만다.
원도는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되뇌며 삶을 복기한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였는지. 이제껏 삶을 스쳐간 수많은 우연과 선택을, 원도에게 커다란 구멍을 냈던 사건들을 하나씩 되짚어 간다.

원도가 보는 앞에서 자살한 아버지 때문일까.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원하는 만큼 애정을 채우지 못한 것 때문일까. 장민석 때문일까. ’산 아버지‘의 이해되지 않는 훈계 때문일까. 연인과의 사랑에도, 인간적인 성공도 끝내 실패한 것 때문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뭐가 문제였지? 누구 때문이지?
죽어 마땅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처지, “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사람, 원도.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자꾸만 하게 되는 질문.

’죽음‘의 반대말은 ’생’일까 ’삶‘일까. 아니면 ‘죽지 않음’일까. 나는 읽으면서 내내 질문했다. 비슷한 말 같지만 비슷하지 않고, 같은 말 같지만 같지 않은 것 같은데.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물을수록 ’삶‘이 고개를 들고 대답한다. 우리는, ’생‘은 선택으로 주어지지 않았지만 ’삶‘은 선택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지금껏 네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너에게 상처를 줬다해도, 비록 실패와 좌절과 구제불능의 밑바닥 인생이어도, 괜찮아 살아도 돼. 살고 싶잖아. 살아보자. 하루하루 힘겹게 발길을 끌어가더라도, 사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야. 넌 살아도 되는 사람이야. 삶을 선택해도 되는 존재야.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순간 역시 많았다. 파산자에 범죄자에 도망자가 되어, 가족에게 버려진 채 매일 피를 토하면서도, 이 지경으로도 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이유인가. 순간마다 기억은 더해지고 뇌는, 아니 정신은, 아니 마음은 뻥뻥 뚫린 구멍으로 난장판인데.” / 175

📍“모든 순간이 결정적이다. 살아야 할 이유라면 무수히 많다. 살아내는 일분일초, 모든 행위와 생각이 모두 사는 이유다. 어떤 것은 이유고 어떤 것은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드문드문 살 수 없다. 살고 싶었다. 삶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모른 채로도 살았고, 살아 있으므로, 사는 데까지는 살고 싶었다.” / 236

인간 내면의 음습한 구멍을, 인간 밑바닥의 역겨운 본성을, 인간만이 가지는 꿉꿉한 욕망을, 동시에 삶에의 의지와 존재적 희망을, 작가 특유의 리드미컬한 문체로 끄집어내는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2회독 했지만 소화되지 않은 체기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소설의 분위기 때문에? 문체가 나랑 안 맞아서? 아니.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원도를 보았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그리스도인의 일상 중심 잡기 1
손성찬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독교에서 ‘돈’이란 주제는 쉬이 다루기 힘든 주제 중 하나. 목사님들도 설교를 할 때 ‘돈’에 관한 설교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한다고. 혹여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거나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서.

그렇다한들 ‘돈’ 이야기를 마냥 피해갈 수 있을까? 솔직히 우리, 기독교 신앙 갖고 있다해도 돈에 초월하진 못하지 않은가. 많이 벌고 싶고, 돈에 대해 관심도 많지 않은가. 누군가가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 좀 벌었다더라~’하는 소식을 들으면 ‘나도 해야하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도 들지 않은가.ㅎㅎ 그저 ‘세속적’인 사람으로 보일까봐,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죄감 때문에, 돈에 대한 솔직한 본능을 쉬쉬- 숨기고 있을 뿐.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책이 기독교에서 많이 나왔었고,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영예를 놓치지 않고 있다. 가령 ’왕의 재정‘이나 ’십일조로 부자가 된 록펠러‘ 같은 책. 나도 그런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부풀어 오르는 희망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더랬다. 어제도 가계부를 쓰면서 ’제발 로또 한 번만 당첨되면 좋겠다‘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주여~


‘돈’을 이야기하는 기독교서적은 많지만 내 돈 주고 한 권을 더 살만큼 괜찮은 책은 정말 오랜만(아니 거의 처음)이다. 손성찬 목사의 ≪돈≫. 죠이북스에서 지난달 신간으로 나왔다. 핑크 돼지저금통이 귀여운, 저 심플한 표지디자인을 볼 때만해도 이 책을 한 권 더 사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은 2회독 정도 했고, 읽을수록 ‘책 괜찮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본문을 ’누가복음‘으로 한정하고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직접적인 메시지‘를 선별해서, 균형 있고 심도 있게, 그러면서도 건강한 신학을 바탕으로 충실히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실존적 삶과도 잘 연결했다는 점이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우리네 ’먹고 사는‘ 인생을 존중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균형있게 다루고, 생각할 거리도 풍성하게 던져주면서 답을 찾아가도록 이끄는.. 굳이 말하자면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 


책의 핵심은 분명하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 도구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진정으로 믿고, 돈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나 자신의 주권자도 하나님이라고 확신하는” ‘청지기’라는 것.

이외에도 소득을 ‘근로소득/자본소득/인적소득’으로, 지출을 ‘필요지출/인적지출’로 분류해 각각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새롭게 배우게 되는 내용이 많아 유익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근로 소득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가만히 놔두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자산을 조금씩 버리는 꼴”과 같다고,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는 건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내용도 신선했다. 구약에서 ‘십일조’라는 율법을 주신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청지기 헌금”을 제안하는 부분도 너무나 좋았다. 아무래도 오늘날 ’십일조‘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감자인 건 사실이니까. 사실 나, ’청지기 헌금‘에서 조금 충격을 받은 것도 같다. 시대성과 의미를 다 살린 이토록 적절한 단어는 처음 본 것 같은데.


’뻔한 얘기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내 선입견을 깨뜨려 줘서 참 좋았던 책이다. 중간중간 ’오~‘ 감탄사와 함께 연신 끄덕이며 읽었다.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한 글발도 재밌게 완독할 수 있는 요인.

제목처럼 ”돈“을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고 다룰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다.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고, 투기와 투자를 잘 분별하며, 돈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필요보다 경험에 지출하고, 청지기의 마음으로 돈을 사용할 수 있기를. 그리고 안식과 회복의 경제를 지향하며 살아가기를..

#내돈내산 의 책을, 독자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 이주는 빈곤, 기후위기, 고령화사회의 해법인가, 재앙인가
헤인 데 하스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과 책 소개 글을 읽자마자 ‘이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주는 빈곤, 기후위기. 고령화사회의 해법인가, 재앙인가”는 나도 평소에 고민하던 부분이었기 때문.

요 근래 부쩍 ‘불평등, 기후위기, 저출산’ 문제의 대안으로 ‘이주’를 제시하는 책을 많이 보는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책도 그런 책이었는데, 꼭 책이 아니더라도, 저출산이 심각해지자 생산성 저하를 우려해 국경을 완화하는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는 뉴스나 전쟁 난민을 얼마만큼 수용할 것인지 논의하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하고 있지 않은가.

그에 비례해 ‘이주’를 둘러싼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주자의 증가가 우리 사회에 범죄나 실업 같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주에 대한 개인의 찬반 여부를 떠나, ‘이주’는 이제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든, 인류의 생존 문제와 결부된 중요한 담론임은 틀림 없다. 그렇다면 이주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을 알려주는 책은 없을까? 이주의 장단점, 이주에 대한 환상과 실제, 이주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등. 팩트를 속시원히 알려주는 책은 없을까?

과연 이주가 과거 ’아메리칸 드림‘처럼, 지금의 여러 위기에 대한 해법이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 헤인 데 하스는, 총 3부에 나누어 이주에 대한 “두려움과 오해 22가지”를 반박한다. 저자는 수많은 데이터와 연구 사례를 근거로 자신의 논증을 뒷받침한다. ‘22가지 오해’ 중에 내가 갖고 있던 오해도 상당했고, 그간 언론과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뒤집는 분석도 있어서 나는 읽으면서 꽤 놀랐다.


이번에 깨진 내 오해 중 하나는, ‘이주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언젠가 대이주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저자는, 실제 이주는 세계 인구 대비 3% 정도로 그리 높지 않으며 앞으로도 크게 늘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호모 사피엔스를 정착하게 만든 건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이었듯이, 이제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물리적 이동을 대체해 줄 것이라고 한다.

그 대신, 저숙련 노동자가 ‘노동력을 필요로하는 국가로’ 이주하는 것, 아프리카와 같은 저소득 국가가 ‘개발로 인해 이주 능력이 향상 되어’ 중소득 국가로 이주하는 것은 증가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대안으로 이민자를 적극 유치하는 정책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었다. 이민자가 자녀를 많이 낳는다 해도 출생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낳는 건 아니며, 이민자도 갈수록 자녀를 적게 낫는다고.^^;; “이입민이 시급한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아이를 덜 낳고 더 오래 사는 구조적 추세를 뒤집을 수는 없다.”(343)

저자는, 이민자 때문에 범죄가 급증한다는 오해도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고정관념은 근거가 희박할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라고 한다. 이들이 이주를 한 건 범죄를 저지를 목적이 아니라 평범하게 살기 위함이고, 불법 이입민일수록 경찰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더 조심한다는 것.


가장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역시 기후 난민 관련 내용이다. 기후 변화가 대규모 이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오해‘라고 반박하며, 대이주를 유발하는 건 기후가 아니라 오히려 ’정부‘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뭄과 홍수 등 “기후 변화가 유발한 것처럼 보이는 자연재해가 사실은 거의 완전히 인간이 유발한 재해다.”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대부분 환경 위험의 원인은 인간과 정치이며 이것이 기후 난민 이야기가 숨기는 사실이다.“ (486)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인간의 개발이 자연재해를 일으켰고, 빈곤 국가 사람들은 기후 난민이 되어도 정작 돈이 없어 이주하지 못하는 정치적 불평등을 겪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저자가 ‘기후변화‘ 자체를 ‘인재’로 보진 않는지 궁금했다. 뭔가 명쾌하지 않은 것 같은 아쉬움이 살짝.


이주와 관련된 각종 용어를 헷갈리지 않게 명확히 정의해 준다는 점, 저자 개인의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본질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 ’오해‘를 짚어주는 방식으로 독자의 집중력을 이끌고 간다는 점은, 내가 다른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요인이다. 책이 두꺼워 지루할 거라는 생각은 명백한 “오해”이다. 읽다보면 자신의 오해를 한꺼풀씩 벗겨내는 재미를 느끼게 될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