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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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2013년, 그러니까 11년 전에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제목으로 초판 출간 됐던 책. 독자들의 복간 요청에, 작가가 원래부터 지었던 제목 ≪원도≫로 11년만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책은, ’원도‘라는 실패한 한 사람의 독백과 기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 마치 꿉꿉하고 스산한 지하실 같기도 하고, 피비린내 나는 상처를 오랜기간 방치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 읽는 내내 묘하게 우울하고 찝찝했다.

원도는 횡령과 사기, 탈세와 살인혐의로 쫓기는 신세다. 가족도 떠나고 모두가 외면하는, 구제 불능에 재활용도 불가능할 것 같은 쓰레기 같은 삶. 검붉은 피를 토하며 여관방에 들어가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그 마저도 여관 주인에 의해 실패하고 만다.
원도는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되뇌며 삶을 복기한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였는지. 이제껏 삶을 스쳐간 수많은 우연과 선택을, 원도에게 커다란 구멍을 냈던 사건들을 하나씩 되짚어 간다.

원도가 보는 앞에서 자살한 아버지 때문일까.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원하는 만큼 애정을 채우지 못한 것 때문일까. 장민석 때문일까. ’산 아버지‘의 이해되지 않는 훈계 때문일까. 연인과의 사랑에도, 인간적인 성공도 끝내 실패한 것 때문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뭐가 문제였지? 누구 때문이지?
죽어 마땅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처지, “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사람, 원도.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자꾸만 하게 되는 질문.

’죽음‘의 반대말은 ’생’일까 ’삶‘일까. 아니면 ‘죽지 않음’일까. 나는 읽으면서 내내 질문했다. 비슷한 말 같지만 비슷하지 않고, 같은 말 같지만 같지 않은 것 같은데.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물을수록 ’삶‘이 고개를 들고 대답한다. 우리는, ’생‘은 선택으로 주어지지 않았지만 ’삶‘은 선택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지금껏 네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너에게 상처를 줬다해도, 비록 실패와 좌절과 구제불능의 밑바닥 인생이어도, 괜찮아 살아도 돼. 살고 싶잖아. 살아보자. 하루하루 힘겹게 발길을 끌어가더라도, 사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야. 넌 살아도 되는 사람이야. 삶을 선택해도 되는 존재야.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순간 역시 많았다. 파산자에 범죄자에 도망자가 되어, 가족에게 버려진 채 매일 피를 토하면서도, 이 지경으로도 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이유인가. 순간마다 기억은 더해지고 뇌는, 아니 정신은, 아니 마음은 뻥뻥 뚫린 구멍으로 난장판인데.” / 175

📍“모든 순간이 결정적이다. 살아야 할 이유라면 무수히 많다. 살아내는 일분일초, 모든 행위와 생각이 모두 사는 이유다. 어떤 것은 이유고 어떤 것은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드문드문 살 수 없다. 살고 싶었다. 삶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모른 채로도 살았고, 살아 있으므로, 사는 데까지는 살고 싶었다.” / 236

인간 내면의 음습한 구멍을, 인간 밑바닥의 역겨운 본성을, 인간만이 가지는 꿉꿉한 욕망을, 동시에 삶에의 의지와 존재적 희망을, 작가 특유의 리드미컬한 문체로 끄집어내는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2회독 했지만 소화되지 않은 체기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소설의 분위기 때문에? 문체가 나랑 안 맞아서? 아니.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원도를 보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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