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즘 -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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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가게에 가서 바지를 살 때 ‘내 엉덩이는 왜 이렇게 크지? 엉덩이가 너무 쳐져서 내 뒷태는 볼품없어. 왜 나는 이 바지를 잘 소화하지 못할까?...‘ 실망하고 수치심을 느끼며 심지어 내 몸을 혐오했던 적은 없었는가? 타인의 훌륭한 몸매를 부러워하고, 그런 몸을 갖기 위해 애써본 적은 없는가?

나는 작은 키에 왜소한 체형, 반면 엉덩이는 큰 몸을 갖고 있다. 바지를 살 때 내 몸에 맞는 바지를 사본 적이 없는 ‘저주 받은’ 몸. 길이가 맞으면 엉덩이가 꽉 끼고 엉덩이가 맞으면 길이가 길고.
체구에 비해 큰 엉덩이는 언제나 컴플렉스였다. 타고난 체형을 바꾸기 어렵다면 ’애플힙‘이라도 만들어보자! 싶어 열심히 운동과 다이어트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만족할 만큼 목표를 이뤄본 적이 없었다. 내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적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 적도 없었다.

그러던 중 이제껏 한 번도 묻지 않았던, 물을 생각도 없었던 질문을 이 책이 나에게 던지는 것이다. 왜 엉덩이가 크고 쳐지면 안 예쁘다고 생각해? 사려던 바지에 딱 맞는 게 ’정상적‘인 엉덩이일까? 운동의 본래 목적이 볼륨 있고 탄력적인 엉덩이를 만드는 데만 있을까?
적당한 사이즈, 봉긋한 볼륨, 셀룰라이트가 없는 매끈한 피부, 얇은 허리를 돋보이게 하고 섹시미를 강조하는 라인, 어떤 바지라도 찰떡 같이 소화해 내는 엉덩이를 누가 ’정상적‘이라고 규정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이 나에게 던지는 이 질문에 직면해 있었다. 처음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다 점차 내 관념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책은 엉덩이에 관한 고정관념의 기원과 계기를 추적해 가며, ‘누군가에 의해 규정된 엉덩이를 해체하는 책‘이었다. ‘정상적’인 엉덩이, ’섹슈얼하고 여성적‘인 엉덩이, ’이상적이고 올바른‘ 엉덩이... 백인, 남성, 이성애자에 의해 규정된 엉덩이의 의미로부터 비로소 ’엉덩이를 해방 시키는‘ 책이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4장 <평균의 탄생>과 5장 <탄탄하여라>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정상성‘의 기준이 된 ’노마와 노먼‘, 여성복 바지 사이즈의 비밀, 규격화되고 제조화된 엉덩이를 위해 운동을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 등. 4,5장은 내가 엉덩이에 관해 갖고 있던 불편한 인식이 어디에서 기인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장이었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날카롭지만 단단하다. 툭 가볍게 얘기하지만 상당히 딥deep하다. 저자의 통찰도 영감을 준다.
‘엉덩이’뿐 아니라, 해체와 해방이 필요한 모든 주제에 이 책을 펼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자! “누구한테나 있는 것인데, 왜 이렇게 난리들인가?“ ”그저 엉덩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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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즈 오브 스틸>은 여성들에게 강한 엉덩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비디오 제목에 내포된 의민느 그 이상이다. 인간의 몸에 붙은 살의 한계를 초월하는 엉덩이를, 완벽하지 못하고 치욕스러우며 탈출 불가능한 우리의 신체로부터 엉덩이를 해방해주겠다는 것이다. 강철 엉덩이는 인간의 엉덩이가 아니다. 제조된 엉덩이, 규격화된 엉덩이다. 연마되고 완벽하게 다듬어진 엉덩이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 확인하고 있듯, 몸은 규격화될 수 없다. 살은 언제나 저항한다.” / 244

📍“우리의 몸은 제멋대로예요.” 치수에 관해 설명하던 중, 그가 내게 상기시킨다. 제못대로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깊게 남았다. 우리 몸은 반항아다. 치수에, 자본주의에, 급을 나누고 위계를 세워 통제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에 저항한다. 몸이 제멋대로라는 생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로 느껴지기에 호소력이 크다. 나는 나이트크림을 바르고, 스쾃을 하고, 잘 맞지 않는 바지 안에 내 몸을 욱여넣으려 애쓰지만 그래도 내 몸에는 주름살과 셀룰라이트와 아무리 봐도 엉망이르 느껴지는 엉덩이가 있다. 내 몸은 그것을 통제하려는 내 노력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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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플렉스 - 복음의 부요함을 과시하라
신동재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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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제목. 진정한 플렉스!

‘플렉스’(flex)‘의 사전적 의미는 ‘구부리다, 몸을 풀다’인데, 미국 힙합 문화에서 ‘과시하다, 뽐내다’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가의 차, 집, 물건 등을 구매하거나 소유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나는 주로 미디어와 SNS에서 “플렉스 했다”는 글을 자주 봤었다. “나 오늘 시계(롤렉스) 플렉스 했어. 나 오늘 차(테슬라) 플렉스 했어.” 이렇게. 타인의 이런 ‘플렉스’를 보면, 사실 엄청 부럽고 상대적 열등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나는 왜 저 정도의 재력이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내 인생을 비관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데 웃기게도 나 또한 남 앞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 고가의 물건을 구매 한 후 ‘플렉스 했다’며 과시하는 모습. 얼마 전 휘트니스 센터 회원권 4년치를 끊은 것도 SNS에 자랑한 적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이유로 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얼마나 박탈감이 들었을까 싶다. 상대적 열등감은 반대의 경우엔 반드시 우월감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니까.


≪진정한 플렉스≫의 저자 신동재 목사는, 그리스도인이 ’플렉스‘ 해야 할 것은 ’복음‘이라고 말한다. 자동차, 부동산, 금융자산 같이 썩어 없어질 유한한 물질이 아니라, 참되고 영원한 복음의 부요함을 자랑하는 게 ’진정한 플렉스‘라는 것이다.

복음을 자랑하는 삶은 어떤 걸까? 복음이 대체 뭐길래? 외제차, 브랜드 아파트, 고수익 주식 자산보다 더 좋은 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자로 하여금 본질적 존재성을 바꾸고,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복되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한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이 복음의 가치를 증언해 주고 있는데,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복음을 플렉스’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도 알려주고 있다.


‘복음을 플렉스하는 삶’은...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높이는 것이다. 나환자(나병환자)처럼 자신의 결핍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고,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또 예수님과 함께하는 집이 하늘 나라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과 동행했던 것처럼 예수님과 언제나 ‘같이’ 있는 것이다. 


가장 좋았던 장은 ch.3 ‘나환자’(나병환자) 이야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나환자가 변화되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인데, 모호하게 느껴졌던 ‘복음을 자랑하는 삶’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대입되어 좋았던 장. 이 이야기를 읽고, 내 결핍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다.


각 챕터의 글들은 분량이 많지 않고 쉬운 언어로 쓰여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나는 신학을 전공한 자로서 책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긴 했는데, 일반 성도 독자라면 복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복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디서든지 당당하게 복음을 과시하는 삶을 살길,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아니 있다해도, 예수님의 복음만을 자랑거리로 삼는 내가 되길. 조용히 기도한다.


📍그리고 혹여나 여러분의 친구가 요즘 살 만하냐고,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자동차나 집을 보여 주는 대신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요? “야, 나 예수님 믿는다!”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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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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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소설가의 6개 단편소설 모음집. 

6개의 소설은, 짙은 존재론적 고독 속에서 부드러운 사랑의 몽우리를 발견하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던 정현종 시인의 시처럼, 인간은 본디 고독과 사랑을 동전의 양면처럼 품고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작가는, 인간의 이러한 속성을, 쓸쓸하지만 여운이 있고 불안하지만 단단하며 슬프지만 희망적인 필치로 섬세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각 작품마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특징.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소설집을 꺼내어, 그 계절의 냄새가 스며있는 작품을 읽으면 좋겠다.

봄에는 벚꽃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에서 이 책의 표제작인 <가벼운 점심>을, 봄의 설렘이 사라지고 권태로운 더위를 맞이하는 초여름에는 <피아노, 피아노>를 읽으면 좋겠다.

여름엔 습기에 눅진해진 책 냄새를 맡으며 <하품>을 읽고, 초가을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선선한 맞바람을 맞으며 <고전적인 시간>을 읽으면 좋겠다.

옛 추억을 소환하는 늦가을엔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을, 그리고 겨울엔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파수꾼>을 읽으면 좋겠다. 

마지막 6번째 작품 <파수꾼>은, 마지막 지점에서 새로운 시작으로의 문을 힘주어 열게하는 소설이었다. 마치 겨울의 끝에, 겨우내 얼었던 땅에서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것처럼. 

그리고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은 202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나는 <고전적인 시간>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읽고 난 후 여운을 떨쳐내지 못해 한참을 그 순간에 머물러 있어야했던 소설. 사람이 가진 온기, 사람의 환기는 오랫동안 방치된 집을 안온함을 가진 생명력 있는 공간으로 바꾼다. 사람이 드는 집,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누군가가 찾아오는 집, 고양이도 안전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집으로.

그리고 그게 어디 집만 그러할까.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덥고 습하면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춥고 건조하면 불을 지펴 온기를 불어넣어야 집이 오래” 살듯이,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그러하거늘. 


📍집에 들고 나려면 일단 문부터 열어야 한다. 집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 집이 집이 되는 일. 우선은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문을 열면 집은 비로소 집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 190

“집에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찾아온다.”

집에 사람이 있으니 사람이 계속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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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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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 없는 초고령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UN은 65살 이상 인구 비율에 따라 고령화 사회(7% 이상), 고령 사회(14% 이상), 초고령 사회(20% 이상)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초고령 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고 일본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 들었다고 한다(30%에 육박).


이런 시기에 시의적절한 책이 나왔다. 일본 노년 심리학 전문가 사토 신이치의 ≪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저자는, 고령자가 그저 쇠약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역설하면서, ‘노인’이라는 호칭 대신 “고령자 씨”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고령자 씨’라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호칭인가! 연령대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으면서 존중하는 뉘앙스까지 담긴 호칭. 제목에서부터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책이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갸우뚱하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65세’라는 기준이다. 노인이라 부르기 시작하는 나이 65세. 그런데 65세는, 과거엔 노인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평균 수명도 길어졌고 여러모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 그렇다면 ‘노인’이라 정의하는 나이를 조금 늦춰야 하지 않을까. 75세 정도가 적합하지 않을까...

그런데 ’65세‘라는 나이에 눈길이 머문 사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저자도 ‘일본에서 고령자의 정의를 재검토하자는 제안이 있었다’고 말한다. 65~74세를 ‘준고령자’, 75~89세를 ‘고령자’, 그리고 90세 이상을 ‘초고령자’라 부르는 게 어떻겠냐고.

’노인’ 연령을 조정하는 게, 대중교통 무임승차나 국민연금 수급, 퇴직 시점 등의 이슈와 맞물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논의를 해야하지 않나 싶다.


책은, 11개의 주제와 11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고령자 씨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이 듦, 기억, 성격, 고독, 노화, 치매 등 고령자 씨의 주된 특징을 키워드로 잘 정리해 주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 교회 어르신들과 이웃 할머니를 대할 때 어떤 어려운 경험이 있었는지, 무엇이 궁금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나는 주로 이런 게 궁금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왜 이렇게 고집스런 성격으로 변할까‘, ‘아내와 사별한 남편은 왜 금방 아내 뒤를 따를까‘와 같은 거.

때마침 책에서 내가 던졌던 질문들을 다루고 있었다. 고령자 씨의 ‘성격의 변화’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은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른데(여성은 ‘감정 초점형’ 대처, 남성은 ‘문제 초점형’ 대처), 남성에게 ‘배우자의 죽음’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잃으면 바로 죽는다고 한다.


다른 재미있는 주제도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왜 운전대를 놓지 않을까”(4장). ㅎㅎㅎ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증가하는데 왜 운전면허를 반납하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내용.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고령자 씨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활 환경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로 바뀌어 평소 무기력함을 많이 느끼는데, 운전은 그렇지 않다고. 고령자 씨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소외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지금, 고령자 씨를 어떻게 돌보느냐의 문제는, 미래에, 내가 어떻게 돌봄받느냐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고령자 씨‘가 존중 받는 사회가 되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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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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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13주년 기념, 전면 개역판. 김석희 번역가의 ‘혼이 담긴’ 역작.

자그마치 8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라, 번역도 힘들었겠지만 읽는 것도 사실 쉽지 않았다. 벽돌책을 받아든 순간 ‘대모험‘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완독을 위해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첫 장을 펼치는 내 모습이, 마치 포경업자들이 고래를 잡기 위해 목숨 건 항해를 떠나는 모습 같았다. 좀 과장된 표현 같지만, 진짜다.


이 소설이 나에게 ’대모험‘이었던 이유는 분량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포경업‘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고래를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내가 고래잡이를 봤을리가. 작살을 던지고 밧줄을 당기는 장면을 모두 상상에 의존하려니 읽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세세한 묘사와 속도감 있는 문장도 작가의 광활한 상상력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듯한 흥분과 긴장을 느끼게 했다. 눈으로 읽고 있지만 어디선가 웅장하고 떠들썩한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기에, 고래에 관한 방대하고도 전문적인 지식까지 더해지니 실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이다. 고래가 ‘2절판, 8절판, 12절판’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나 고래에게서 ’용연향‘이라는 향기나는 물질이 있다는 사실 등은 평소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정보가 아니던가. 뭐, 어느 지점에선 ‘고래가 이런 생물이구나‘ 알아가는 게 꽤 흥미롭기도 했지만. 하여간 고래학 전문가가 집대성한 ‘고래 대백과사전’이라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소설이었다. 고래를 좋아하는 우영우가 이 책을 읽었다면 정말 행복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인간에게 잔인하게 죽는 고래를 보며 도리어 슬퍼 했으려나. 


소설은, 에이해브 선장이 흰 고래 모비 딕을 추적하는 이야기에 여러 에피소드가 덧붙여졌다. 에이해브는 40년 전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후 복수심에 사로잡혀 사는 인물. 그는 집착과 광기를 버리지 못하고 모비 딕을 추적하다가 결국 선원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하고 자신도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다. 


나는 에이해브와 모비 딕을 보며, 광활한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인간의 실존을 생각했다. 고래를 정복하겠노라 작살을 던지지만 그 작살에 도리어 목숨을 잃고 마는 인간. 자신의 힘을 고래에게 잔인하게 휘두르지만 고래의 몸짓 하나에 바다 속으로 맥 없이 삼켜지는 인간. 고래에게 한쪽 팔과 다리를 잃고선 고래뼈로 팔과 다리를 만드는 모순적인 인간. 인간이 바로 그런 유한한 존재라고. 

뿐만 아니라 에이해브 선장이 구약 성서에서 가장 악독한 ‘아합 왕’을 모티브한 인물인만큼, 리더의 중요성도 되새기게 되었다. 포악한 선장 에이해브에게 “저는 고래를 잡으러 왔지, 선장님의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스타벅도 매력있게 다가왔다.


📍“지상에 군림하는 신이 하나뿐이듯 ‘피쿼드’호에 군림하는 선장도 하나뿐이다! 밖으로 나가!”(638)

📍“선장님은 웃을지 모르지만,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경계해야 합니다. 영감님, 자신을 조심하세요.”(638) 


고래는 상업적 포경과 기후위기로 개체수가 급격하게 감소했고 멸종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고래가 인간에게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더 이상 인간의 탐욕과 자본주의에 고래가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포경이 사라지기를, 그래서 훗날, 야만인과 다를 바 없었던 인간의 과거 기록만 이 소설에서 들춰볼 수 있기를 바란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완독하긴 쉽지 않았지만, 인간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가슴 가득 주었던 소설이다. 다른 번역보다 작가정신에서 출간한 김석희 역자의 번역으로 읽어보기를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비극도 너무 장엄하면 슬픈 게 아니라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걸 미학에서는 ‘숭고미’라고 하는데, 내가 뭔가 고양되는 느낌, 그래서 내 삶이 구원받는 느낌이 드는 것—그게 문학을, 예술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이유가 아닐까. (…) 감히 말하건대, 『모비 딕』만큼 그런 독서의 즐거움을 주는 책도 드물 것이다.“ ― 김석희(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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