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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장은진 소설가의 6개 단편소설 모음집.
6개의 소설은, 짙은 존재론적 고독 속에서 부드러운 사랑의 몽우리를 발견하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던 정현종 시인의 시처럼, 인간은 본디 고독과 사랑을 동전의 양면처럼 품고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작가는, 인간의 이러한 속성을, 쓸쓸하지만 여운이 있고 불안하지만 단단하며 슬프지만 희망적인 필치로 섬세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각 작품마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특징.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소설집을 꺼내어, 그 계절의 냄새가 스며있는 작품을 읽으면 좋겠다.
봄에는 벚꽃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에서 이 책의 표제작인 <가벼운 점심>을, 봄의 설렘이 사라지고 권태로운 더위를 맞이하는 초여름에는 <피아노, 피아노>를 읽으면 좋겠다.
여름엔 습기에 눅진해진 책 냄새를 맡으며 <하품>을 읽고, 초가을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선선한 맞바람을 맞으며 <고전적인 시간>을 읽으면 좋겠다.
옛 추억을 소환하는 늦가을엔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을, 그리고 겨울엔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파수꾼>을 읽으면 좋겠다.
마지막 6번째 작품 <파수꾼>은, 마지막 지점에서 새로운 시작으로의 문을 힘주어 열게하는 소설이었다. 마치 겨울의 끝에, 겨우내 얼었던 땅에서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것처럼.
그리고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은 202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나는 <고전적인 시간>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읽고 난 후 여운을 떨쳐내지 못해 한참을 그 순간에 머물러 있어야했던 소설. 사람이 가진 온기, 사람의 환기는 오랫동안 방치된 집을 안온함을 가진 생명력 있는 공간으로 바꾼다. 사람이 드는 집,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누군가가 찾아오는 집, 고양이도 안전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집으로.
그리고 그게 어디 집만 그러할까.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덥고 습하면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춥고 건조하면 불을 지펴 온기를 불어넣어야 집이 오래” 살듯이,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그러하거늘.
📍집에 들고 나려면 일단 문부터 열어야 한다. 집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 집이 집이 되는 일. 우선은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문을 열면 집은 비로소 집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 190
“집에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찾아온다.”
“집에 사람이 있으니 사람이 계속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