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 개정판
김지영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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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작가의 여행에세이. 여행지에 관한 정보 전달보다 단상과 에피소드로 독자들을 담백하게 위로하는 책이다.

저자는 재활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다 치매환자로부터 이유 없이 뺨을 맞고, 그 때 문득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곧바로 직장에 사표를 내고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1년 7개월 동안 40개국을 여행했다.

여행지에서 겪은 황당한 일들, 낯선 땅에서 알게 된 ‘나’라는 사람, ‘진우’라는 좋은 사람을 만나 나눈 사랑 이야기, 지면을 빌어 누군가에게 전하는 진심까지 한데 모아 이 책을 출간 했고, 5년만에 개정판을 냈다.

개정판을 냈다는 건, 여전히 이 책이 읽힌다는 것. 청춘들의 고뇌는 5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정서는, 한겨울 호수 위 부유하는 뜨거운 수증기 같았다. 부옇고 채도가 낮았고 고독했다. 불안하고 흔들렸다. 금세 공기중으로 날아가 사라지는 짧은 여운, 그러면서도 온도는 뜨거운 수증기. 여행지에서의 설렘과 긴장보다, 수증기와 같은 정서가 더 많이 전해졌다. 심지어 여행의 낭만보다 상처 위에 앉은 ‘딱지’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이 마냥 유쾌하게 읽어지진 않았다. 글밥이 적었음에도 읽는 게 버거워 몇 번이나 덮었다가 다시 펼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 되어 가는 과정과 비어 있던 마음에 무언가가 하나씩 채워지는 것을 보며 위로와 공감을 느낄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저자의 용기에 희망과 희열을 얻기도 할 거고. 무엇보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고독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너 지금 그래도 괜찮은 나이라고 생각해?” 저자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려 할 때 엄마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너도 이제 서른인데, 이제 돈도 모으고 해야 하지 않아? 노후에 고생하지 말고.” 저자가 석사를 끝냈을 때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91년생 청춘이 돈과 직장 같은 눈에 보이는 안정을 포기했을 때 아마 대다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도 똑같이 반문했다. “언제가 괜찮은 나인데?” “서른은 어떠해야 하는 나이인데?“

그래도 괜찮은 나이는 언제일까. 그래,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우리 나이는 ‘그래도 괜찮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좀 더 잃을 게 많은 나이’인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잃지 않기 위해 추억과 행복 같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며 바둥거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용이라 한참 머릿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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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다합에서 만난 따듯하고 좋은 남자 진우님과는 개정판이 나오는 그 사이에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축하드려요!👏👏) 사랑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감싸안는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남편을 만나 사랑을 배우고 또다른 행복을 찾았듯이 저자도 진우님과 함께 여행 같은 매일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시면 좋겠다. 정처없이 부유하는 수증기가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던 온기로 허공을 포근하게 데워주는 수증기가 되시길, 이 지면을 빌어 저자에게 응원과 위로를 전한다.


포르투의 뿅망치 축제(성 주앙의 밤)는 나도 참여해 보고 싶다. 뿅망치로 상대방의 축복을 빌어주다니! 아 정말 짜릿해!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인도 바라나시, 별이 쏟아져 내리는 사하라 사막, 해발 3,000m의 도시 페루 마추픽추는 나도 꼭 가보고 싶다. 생각만해도 낭만적이다. 그리고 모로코 페즈에서는 절대 아무도 믿지 말라는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도 꼭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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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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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과 지선, 예찬과 종률, 동수와 형섭, 서연과 현정, 선이와 미주, 그리고 교사들과 어른들. 이들의 이야기에서 나는 수많은 폭력의 얼굴을 보았다. 알게 모르게 보고 당하고 행하는,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이고 끈질긴 폭력들을.

특히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가정과 학교에서 너무나 당연한 듯이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는 게 새삼 소름 돋았다. 문제는, 표면적인 폭력(체벌)은 금지 되었다해도 “그거 기분 나빠도 되는 말이 맞네. 그러고 보니 진짜 이상한 말이구나.”라고 생각할 수조차 없게 뭉근히 행해지는 폭력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폭력이 가진 힘은, 자신보다 약한 자를 향할 때 커진다. 더 센 누군가를 만나기전까진 그 힘이 사그러지지 않을 것처럼 기세 좋게 타오르고, 또 실제로 제3자들의 묵인에 의해 그 위세가 더 당당해진다. 무관심과 방관, 가십거리로 폭력을 2차,3차 소비하는 이들도 결과적으로 가해자와 다름이 없음을 소설에서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상처 입은 이들이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피해자들은 서로에게 그저 미안해하고 자책한다. 숨고 도망가도록 내몰린다. 상처가 아프지만 치료할 줄을 몰라 덮어버린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지 않아서, 힘이 없어서, 여자라서 ‘잘못했다’고 다 그렇게 말하니까.

청소년들이 만나는 최소한의 사회, 가정과 학교에서조차 이 아이들은 보호 받지 못했다. 소설의 이야기가 마냥 픽션이 아니어서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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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한 거 아냐?”

“경찰도 별일 아니라 했다던데?”

어디에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몰라도 많은 아이들이 호응을 했다. 심기태가 딱하다고 말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늘었다. 결국 비난의 화살은 처음 사건을 폭로한 현정에게 향했다. 학교의 평판에 먹칠을 한 배신자. 나 갗은 애가 학교 이미지를 망치는 거야. 그런 내용이 한데 뭉쳐진 글이 대자보가 되어 붙었다. 대자보는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현정이 직접 떼어 내기 전까지 온전히 잘 붙어 있었다. 현정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난과 별개로 스스로를 책망했다. 숨어서 살자. 존재를 지우자. 다짐했다. 미란은 일주일 뒤 인사도 없이 전학을 갔다.”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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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학교폭력, 운동부 사제 간 폭력, 언어폭력, 가짜뉴스와 악성댓글, 데이트폭력, 그리고 성폭력... 영원할 것 같았던 이 불길 속에서 이 아이들을 꺼내준 건 ‘우리’였다. 이들은 우리가 되어 폭력에 맞서 싸우고, 상처를 치유해갔다. 혼자라면 힘들 일도 함께라면 가능했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말하고 함께 위로하고. 그렇게 작은 파란색 리본 ‘꼬리’는 파도가 되어 돌아왔다. 변화는 더디지만 조금씩 일어났다.


소설은, 홀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숨지 않아도 돼. 우리가 지켜줄게. 함께라면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며 쓰라린 상처를 감싸 안아주고 있다.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 ≪꼬리와 파도≫를 통해 독자들도 세상의 상처에 맞서는 용감한 파도의 물결에 동참해 보시기를 바란다.


책을 덮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주어야 할까 고민했다. 지선의 곁을 지켰던 무경처럼, 미란을 위해 용기를 냈던 현정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또 안전하고 정의로운 어른 최아라 교사처럼, 나도 상처받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재생산하던 폭력을 단호히 끊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읽는 내내 폭력을 재생산하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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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하늘을 산 사람들 - 교회사에서 만난 12명의 예수의 사람들
배덕만 지음 / 세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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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천 년 교회사 속에서 “이 땅에서 하늘을 추구하며, 각자의 시대와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서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 12명을 선별해 소개한 책이다.

교부 시대에서 3명(성 안토니우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교황 그레고리오 1세), 중세 시대에서 2명(아시시의 프린치스코, 얀 후스), 종교개혁 시대에서 3명(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메노 시몬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그리고 17세기부터 현대까지 4명 (조지 폭스, 존 웨슬리, 에이미 샘플 맥퍼슨, 마틴 루터 킹 2세)이다.


국가와 민족, 시대, 인종, 교단과 교파, 신앙색채, 성격, 신분과 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골고루 소개한 점이 좋았다. 덕분에 특정 신학에 갇혀 있던 내 사고도 넓힐 수 있었다.

생소하고 낯선 인물들이 많아 신선했다. (몇 명을 제외하곤 이름조차 처음!) ‘에이미 샘플 맥퍼슨’은 이 열 두명 중 유일한 여성이라 반가우면서도, 기독교회사 속에서 여성의 자리가 여전히 적다는 점은 씁쓸하기도 했다. 저자도 이를 염주에 두고 “교회사가들이 극복해야 할 학문적, 문화적 한계요 과제”라고 겸허히 인정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조명될 가치가 충분한 인물들을 발굴해 소개한 책이기에 사료로써의 가치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이 12명은 마치 예수님의 12제자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재밌는 건, 저자가 <활천>이라는 교단지에서 1년간 연재한 글을 엮어 책으로 낸 거라 ‘12’라는 숫자를 굳이 의도한 건 아니라는 점. 절묘한 우연!ㅎㅎ


이 12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갔다. 어떤 사람은 사막이나 수도원으로 들어가 고된 수행을 하면서.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또 어떤 사람은 타협하지 않고 투쟁과 저항으로 성경적 가치를 지키며. 또 어떤 사람은 수준 높은 경건과 영성 훈련을 하면서.

물론 이들의 방식이 다 동의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비록 그랬을지라도 이들의 예수를 향한 열망과 노력까지 폄하할 순 없는 것. 오히려 적당히 타협하며 안일함에 젖어있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고 이들이 주는 교훈과 도전 앞에 겸손히 서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이 인물들의 명암을 동시에 살핌으로써 이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연약한 인간임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래서 큰 업적과 공헌을 세웠다해서 자칫 영웅시하거나 우상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단점과 실수를 독자들이 반면교사 삼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또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이들의 노력을 인정하면서 우리도 그 마음의 중심을 배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나는 우리의 이런 모습 그대로, 장점은 강점으로 강화하시고, 단점은 은혜로 덮어주시며, 실수와 잘못까지도 그의 나라에 선용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12명의 삶과 신앙을 자신에게 대입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더 유익할 것 같다.


표지도 책 제목과 내용을 한 눈에 파악하게 하는 직관적인 디자인이라 마음에 든다. (표지 투표할 때 지금 이 디자인에 한 표를 던졌었다는. 후후!) 가독성도 좋다. ‘생각 나눔’은 저자의 진솔한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좋았고, ‘묵상과 토론을 위한 질문’은 고민과 적용을 구체적으로 해 볼 수 있어 유익했다.

역사를 전체적으로 머리에 그리면서 각 인물들을 살펴봐야 했기에 개인적으론 책이 좀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술술 읽어나가진 못했다. 2회독을 했고, 2번 째 읽을 땐 연대기순으로 노트에 그래프를 그려가며 읽었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했던 대로, 나중에는 여성과 한국인도 발굴해서 책을 내 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한명의 여성으로서, 이 땅에서 신실하게 하나님 나라를 살아냈노라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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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블로그 일 방문자 수 1,000명 만들기 - 개정증보판
권호영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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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땐 블로그를 잘 꾸밀 생각도, 크게 키울 마음도, 오래 유지할 의지도 없었다. 그 랬는데 이 책을 읽고 블로그를 잘 관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10년 이상 블로그를 운영하며 블로그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저자가 알려주는 블로그 정체성 설정, 포스팅 관련 조언, 저자만의 ’비밀 노하우’, 블로그 관리법과 수익창출 등을 읽고 큰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검색어 상위노출, 제목 키워드, 블로그 최적화 비법, 블로그 지수와 알고리즘 등은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알면 좋은 내용이긴 하지만 이런 거 하나하나 따지다가 지쳐서 블로그를 그만둘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저자가 강조한 ’꾸준히, 진정성 있게(정보가 충분하게) 글을 올리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조언대로 적용한 부분도 있었다. 블로그 이름과 닉네임을 좀 더 간결하게 다듬었고, 분산되어 있는 카테고리를 합쳤다. 글자 정렬과 색상도 조금 바꾸었다. 그동안 올렸던 글들을 다시 보면서 제목에 키워드만 나열하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수정하기도 했고... 또 오른쪽 하단에 PC와 모바일 환경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이런 게 있었다니! 정말 최고!) 모바일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도 몇 개 수정했다.

책에서 알려준 링크로 들어가 블로그 지수도 확인해 보았다. 애드포스트 수익신청도 해봤다


수익은 둘째치고 블로그로 자신을 이렇게나 멋지게 성장시킬 수 있다니. 자신만의 브랜딩을 가질 수 있다니. 눈이 번쩍 뜨인다. 블로그에 올려둔 책 관련 컨텐츠가 훗날 나만의 포트폴리오가 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 책의 조언대로하면 블로그는 충분히 좋은 수단이 되어줄 것 같다. 굳이 거창하게 꿈꾸지 않아도, 지금처럼 에너지를 많이 소진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공간으로 블로그를 유지해봐도 좋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이런 실용적이고 유익한 ...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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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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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가 가출 청소년 ‘이호’의 자해공갈을 우연히 목격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호를 보며 인수는 자신의 과거, 즉 어른의 부재와 가정에서의 아픔, 서로에게 의존하지만 결코 서로를 믿지 못하는 거리에서 만난 친구들, 반복적으로 노출 됐던 폭력과 무시, 무질서와 범죄에 갈 바를 잃어버렸던 그 시간들을 회상한다. 그렇게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두 시점을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인수가 이호를 왜 제 집에 머물게 했는지가 드러난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도 인수의 시선을 따라 내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서 많이 희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들추어낼 때마다 여전히 아픈, 남에겐 절대 털어놓지 않는 지독 했던 내 청소년 시절을.

인수의 서사는 곧 내 이야기였고, 인수의 심리는 곧 내 마음이었다.

인수의 어머니가 아들 인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하나만 묻고 싶다. 우리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니.”도 ‘어떻게 천륜을 끊을 수 있냐. 하나님께 큰 죄 짓는거다. 천 벌 받는다. 네가 참고 용서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했던 어른들의 말과 뭐가 다를까. 인수가 어머니의 연락처를 차단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겠어서, 나는 씁쓸했다.


가출 청소년들은 저마다 가정에서 상처를 입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반복적인 폭력과 헤어나올 수 없는 범죄 속에서 이들에게 남은 건 무기력과 냉소 뿐. 아이들은 어른의 부재를 스스로 채우려 애쓰지만 끝내 어른과 사회를 향한 높은 불신을 헐지 못하고 돌아갈 길을 잃어 버린다.

“우리는 안 미쳤는데, 사람들이 우리보고 미쳤다고 하잖아.”

“사장 형처럼 없는 죄도 만들어서 덮어씌울걸.”

“아무도 우리 안 믿어줄걸. 우리가 이렇게 만든 거라고 생각할걸.”

어른이란 뭘까, 가정이란 뭘까, 이 아이들을 보호해 줄 어른은 정말 한명도 없었던 걸까. 그저 ‘반항’으로 치부하며 아이들을 질책하면 끝나는 문제일까.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지독하게 아픈 질문을 던진다.


어둡고 축축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작은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건, ‘경우’라는 아이의 존재와 ‘또다른 경우’가 된 인수의 성장이다.

‘경우‘는, 다른 가출 청소년들과 똑같이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했지만 늘 ‘경우(境遇) 있게’ 행동하며 인수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친구다. 비굴하지 않고 남의 지갑을 훔치지 않으며, 착실하고 신중하게 살아가던 아이. 과거 인수는 그런 경우를 경계하면서도 의지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이제 더는 인수 곁에서 경우를 만날 수 없지만, 이호에게 어른으로서, 보호자로서, 형으로서 보듬어주는 인수에게서 우리는 또다른 ‘경우‘를 만난다. 가출팸 시절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인수가 이호에게 ’또다른 경우‘가 되어줌으로써 그렇게 인수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간다.


우리에게는경우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누군가에게또다른 경우 되어줄 차례다. 먹먹한 여운이 오래 남는 소설, 읽고나면 어른으로의 한발자국을 내딛게 만드는 소설을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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