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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평점 :

무경과 지선, 예찬과 종률, 동수와 형섭, 서연과 현정, 선이와 미주, 그리고 교사들과 어른들. 이들의 이야기에서 나는 수많은 폭력의 얼굴을 보았다. 알게 모르게 보고 당하고 행하는,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이고 끈질긴 폭력들을.
특히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가정과 학교에서 너무나 당연한 듯이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는 게 새삼 소름 돋았다. 문제는, 표면적인 폭력(체벌)은 금지 되었다해도 “그거 기분 나빠도 되는 말이 맞네. 그러고 보니 진짜 이상한 말이구나.”라고 생각할 수조차 없게 뭉근히 행해지는 폭력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폭력이 가진 힘은, 자신보다 약한 자를 향할 때 커진다. 더 센 누군가를 만나기전까진 그 힘이 사그러지지 않을 것처럼 기세 좋게 타오르고, 또 실제로 제3자들의 묵인에 의해 그 위세가 더 당당해진다. 무관심과 방관, 가십거리로 폭력을 2차,3차 소비하는 이들도 결과적으로 가해자와 다름이 없음을 소설에서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상처 입은 이들이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피해자들은 서로에게 그저 미안해하고 자책한다. 숨고 도망가도록 내몰린다. 상처가 아프지만 치료할 줄을 몰라 덮어버린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지 않아서, 힘이 없어서, 여자라서 ‘잘못했다’고 다 그렇게 말하니까.
청소년들이 만나는 최소한의 사회, 가정과 학교에서조차 이 아이들은 보호 받지 못했다. 소설의 이야기가 마냥 픽션이 아니어서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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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한 거 아냐?”
“경찰도 별일 아니라 했다던데?”
어디에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몰라도 많은 아이들이 호응을 했다. 심기태가 딱하다고 말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늘었다. 결국 비난의 화살은 처음 사건을 폭로한 현정에게 향했다. 학교의 평판에 먹칠을 한 배신자. 나 갗은 애가 학교 이미지를 망치는 거야. 그런 내용이 한데 뭉쳐진 글이 대자보가 되어 붙었다. 대자보는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현정이 직접 떼어 내기 전까지 온전히 잘 붙어 있었다. 현정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난과 별개로 스스로를 책망했다. 숨어서 살자. 존재를 지우자. 다짐했다. 미란은 일주일 뒤 인사도 없이 전학을 갔다.”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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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학교폭력, 운동부 사제 간 폭력, 언어폭력, 가짜뉴스와 악성댓글, 데이트폭력, 그리고 성폭력... 영원할 것 같았던 이 불길 속에서 이 아이들을 꺼내준 건 ‘우리’였다. 이들은 우리가 되어 폭력에 맞서 싸우고, 상처를 치유해갔다. 혼자라면 힘들 일도 함께라면 가능했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말하고 함께 위로하고. 그렇게 작은 파란색 리본 ‘꼬리’는 파도가 되어 돌아왔다. 변화는 더디지만 조금씩 일어났다.
소설은, 홀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숨지 않아도 돼. 우리가 지켜줄게. 함께라면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며 쓰라린 상처를 감싸 안아주고 있다.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 ≪꼬리와 파도≫를 통해 독자들도 세상의 상처에 맞서는 용감한 파도의 물결에 동참해 보시기를 바란다.
책을 덮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주어야 할까 고민했다. 지선의 곁을 지켰던 무경처럼, 미란을 위해 용기를 냈던 현정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또 안전하고 정의로운 어른 최아라 교사처럼, 나도 상처받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재생산하던 폭력을 단호히 끊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읽는 내내 폭력을 재생산하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