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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2022년 작년 한 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2223명이라고 한다. 사고 사망자는 874명, 질병 사망자 1349명. 하루에 두 명꼴로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셈. 끼여서 죽고, 떨어져 죽고, 불에 타 죽고, 질식해 죽고, 감전돼 죽고.
산재 사망소식은 뉴스나 신문에서 간간히 접했었지만, 그 내용은 단신이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릴 정도로 무성의하고 불친절하다. 경제 관련 매체는 더더욱. 이 사고에 관해 분명 숨은 이야기들이 더 있을텐데, 억지로 운을 떼다 만 것 같은 느낌. 아니 의도적으로 정보 공개를 방해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애도하기는커녕 과실을 뒤집어씌우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기업을 위축시키고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악으로 묘사하면서.
솔직히 나는, 우리나라에서 산재 사망이 이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정말 몰랐다. 평택항 이선호 씨, SPC 제빵공장 직원,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구의역 김 군... 산재는 그저 아주 가끔씩,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건인 줄로만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노동자는 일터에서 왜 죽음을 맞는걸까. 노동자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그들의 서사는 왜 무시되거나 은폐되는 걸까. 우리는 언제까지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이 ‘당연해야’ 하는 걸까.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신다은 기자의,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미 앞서간 이들의 행적을 빌어 “진실의 조각들을 모으고 기록”했다. 저자의 말대로 ‘안전’이란 것엔 애초부터 또렷하고 쉬운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터의 안전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하고 재해의 흔적을 더듬어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만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우리의 일터를 안전하게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 또 그렇게 하는 일은, 뭉뚱그려진 노동자의 죽음을 선명하게 애도함으로써 그들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떠나간 이들의 서사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일종의 부고장이기도 하다.
1,2부에선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려는 다방면의 노력과 그 결과가 담겼다. 저자는, 평택항에서 300kg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한 이선호 씨 사건을 중심으로 ‘사고의 구조적 원인이 노동자의 죽음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짚어내고, 제조업 산재 사망사고를 유형별로 분류해 밝힌다. 마음이 아파 읽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노동자 과실’이라는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래, 어찌 작업자의 과실이 없을 수만은 있겠나. 그렇지만 안전수칙 위반이 노동자의 ‘선택’이라 할 수 없는,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가 ’누가 됐든‘ ‘어쩔 수 없이’ 위반할 수밖에 없는 관행이 숨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임스 리즌의 ‘썩은 사과’ 이론처럼 “안전수칙 위반이 개인 실패가 아닌 시스템 실패”라면...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가 산재의 구조적 원인 파악을 왜 강조하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3,4부에선 연간 800여명에 달하는 (사고에 의한) 산재 발생에도 불구하고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공개 되지 않는 이유를 살피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산재를 은폐하려는 시도와 밝히려는 노력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이유를 ‘소통의 부재’로 보았다. 기업의 은폐하려는 태도, 정부의 예방보다 처벌에 치우친 방식, 노조의 역량 부족, 언론의 관심 부재 등이 산재 소식이 세상 밖으로 울리지 못하는 이유라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선 산재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처벌을 넘어 예방 그리고 ‘사회적 기억’으로 나아가야 하며, 더 날카롭고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사회 전체가 안전에 반응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산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재해조사의견서, 법원 판결문)을 읽을 땐 정부에서 꼭 반영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또 ’사람 많이 죽는 기업‘을 ’살인 기업‘이라 칭한 노동단체의 적나라한 단어가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안전을 중심에 두지 않는 기업의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죽는다고 했다. 뒤집으면 기업이 안전해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
자연스럽게 죽는게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고발하는 책,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게 하는 이 책을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