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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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내용을 가늠할 수 없는 친절하지 않은 제목에 첫 장을 쉬이 열지 못했다. 쉬운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쉽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내용이라는 부제에, 나는 비장애인이고 자녀가 없으며 아름다움에 관해 평소 사유해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두려움부터 앞섰다. 분량도 적지 않았지만 글이 갖는 무게감 또한 상당한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꽤 오랜 기간 붙들고 있어야 했다. 2-3회독을 한 것 같다.


저자 클로이 쿠퍼 존스는 ’천골무형성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가 없는 선천성 질환. 그녀는 장애를 가진 몸을 처음부터 ‘누락된 상태‘로 인식한 건 아니었다. 장애로 인해 의도치 않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오해와 동정을 받으면서, 또 일반적으로 규정된 ‘아름다움’에 부합하지 않는 몸이라며 비난과 배제를 겪으면서, 심지어 아름다움을 경험할 가치가 없는 존재로 부정 당하면서 자신의 몸을 ‘누락된 몸’ ‘불완전한 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점차 그녀는 자신이 평생 임신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사의 선언을 의심 없이 그대로 믿도록 학습 되어 버린다. 


📍장애에 관한 대부분의 서사들은 이런 줄거리를 따라간다. 주인공에게는 그가 정상적이었던 ‘이전’이 있고 그가 정상적이지 않게 된 ‘이후’가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이 몸만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게 정상적인 몸이다. 나의 자아상은 ‘다른 사람들’의 이전과 이후를 자각하는 데서 형성됐다. / 230


그녀는 타인의 조롱과 혐오가 가슴에 파편처럼 박히자 그에 대한 방어로, 내면의 ‘중립의 방’으로 숨어 버린다. 현실을 외면하고 내면에서 탈출구를 찾으려고. 또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홀로 존재하는 ‘관찰자, 구경꾼‘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점차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며 인정하기 시작한다. 학문적 성취, 여행, 결혼과 출산을 통해서.

철학 교수와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신. 딸과 아내, 엄마로서의 자신. ‘이게 도덕적으로 맞는지 고민해 봤냐’는 의사의 말에도 출산을 선택하고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도 얻는 그녀가 멋있었다.

뿐만 아니라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가진 자신. 연애와 섹스 등의 원초적 욕망을 가진 자신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특히 그녀가 밀라노의 비욘세 콘서트장에서 ’직설적이고 자신만만한 아름다움’을 본 뒤 ‘쉬운 아름다움’을 경시한 자신의 우월감을 깨닫게 되는데, 나는 그 순간이 가장 인상깊었다. 자신이 그동안 방어적인 태도, 즉 내면에 숨어서 내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느라 외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에 솔직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으니까. 자신의 몸이 어떻든,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삶을 살아 왔든,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이지(Easy)! 쉬운 일이라는 사실. 비로소 그녀가 고치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세상 밖으로 나온,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를 벗어나야 하는 플로티노스의 아름다움을 넘어 바깥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아이리스 머독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는 저자. 그녀의 아름다움에 관한 전복적 깨달음에 나도 해방을 얻은 것처럼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저자의 내밀한 심리의 변화와 인식의 전환이 각 에피소드에서 매우 섬세하게 기록되고 있어 한 글자 한 글자를 놓칠 수 없었던 책이었다.


📍우리의 삶은 쉬운 삶도 아니고 고통 없는 삶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현실의 삶을 받았다. 무서울 정도로 일상적이면서도 숭고한 삶. 나는 더 이상 다른 삶을 염원하면서 그 삶의 아름다움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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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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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을 배경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사랑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 ≪운명의 꼭두각시≫.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생을 마감한 문학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덧 씌워진 껍질을 들추고 주의 깊게 들여다 보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를 점점이 채우고 있는 개개인의 서사를, 상처 입은 약자의 서사는 더더욱, 무심코 지나쳐 버리게 된다. 마치 우드컴 파크를 보러 왔으나 16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그곳의 내밀한 이야기는 알지 못하는 관광객처럼 말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로 구성된 영국을 생전에 꼭 한번 가야 하는 나라, 세련되고 낭만적인 나라라며 선망 했지만, 정작 아일랜드라는 변방의 국가엔 내 관심의 렌즈를 줌-인 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시대 영국의 지배 아래 있던 아일랜드를, 우리나라도 그러했듯 독립과 자유를 갈망 했던 아일랜드를,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들여다 보게 되었다.


물려 받은 금발과 파란 눈을 가진, 낯선 이들이 아픈 데는 없는지 묻곤 하던 윌리. 그는 영국 블랙 앤드 탠즈가 첩자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자행한 킬네이 대학살 사건에서 아버지와 여동생들을 잃는다. 폐허가 된 킬네이를 떠나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와 근근히 살아가던 중 영국인 외사촌 메리앤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으로 끝을 맺고 만다.


📍“우리가 지금 함께였다면 당신의 고통을 입맞춤으로 날려 보내기 위해 두 팔로 당신의 머리를 감싸 안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을까? 그러면 내가 어쩌다 영국인인 것을 용서해주었을까?” / 메리앤, 198

📍킬네이는 그 어느 때보다 무시무시한 곳이었지만 난 다른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았다. 반쯤 탄 집이 아무리 음울해도,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아도 당신이 거기에 속했으므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었다. 내 존재의 모든 세부, 내 몸의 모든 혈관, 모든 흔적, 내 모든 친밀한 부분이 눈을 감고 쓰러지고 싶게 만든 그 부드러움으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메리앤, 264


사랑이란 게 왜 이리도 지독한 것일까. 함께라면 폐허가 된 킬네이에서의 삶도, 가족을 잃은 슬픔도, 억압 받는 자의 비참함도 다 사라질 것 같다는 윌리의 진심... 불결한 죄인 취급 받으며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 걸 알면서도,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증오와 적대를 알면서도, 그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은 메리앤의 용기... 진하고도 고독한 이들의 사랑에 가슴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퀸턴 가의, 증조부모로부터 이어진 영국인과 아일랜드인의 이 사랑은 불가항력에 의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사랑을 ‘꼭두각시’가 아닌 ‘운명’이라 부르고 싶다. 상황을 넘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지켜내는 사랑은 마땅히 ‘운명’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책장을 덮을 때쯤, 나도 그렇게 사랑함으로써 ‘운명’이라는 선을 점점이 그려나가야겠다고, 그렇게 또다른 ‘운명’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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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 137 - 모세오경 137개 핵심 난제 탐구 HIDDEN GOD 시리즈 1
황성일 지음 / 세움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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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오거나 궁금한 점이 생겼을때, 마땅히 물어볼 데도 없고 그렇다고 관련 책을 찾아 볼 엄두도 나지 않을때 ‘아~ 누가 속 시원하게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 기독교인이라면 다들 해 봤을 것이다. 특히 모세오경은 성경 66권 중 가장 난해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려운 내용 투성이다.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가득한 창세기와 판타스틱한 출애굽기, 온갖 생소한 용어의 레위기와 혼란스러운 민수기, 지루한 신명기... 레위기는 ’내 위기‘이며, 신명기의 설교는 아무리 유명한 모세가 한다해도 잠을 부른다. 모세오경, 정말 잘 읽을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모세오경 137≫은 그런 사람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난제 해설 책이다. 모세오경에서, 중요하지만 어려운 주제 137개를 골라 쉽고 간결하게 답해준다. 책에서 다룬 주제들은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했을 법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지,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건지,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이스라엘이 왜 12지파인지,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이유가 무엇인지, 5대 제사와 절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은 무엇인지 등.

그리고 꼭 난제가 아니더라도 언약과 절기, 성막과 5대 제사, 하나님의 이름, 구속사적 모형론 등은 성경을 읽는 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나는 ’야곱의 축복과 모세의 축복의 차이점‘(64번)과 ‘구약 시대 십일조의 종류’(132번)가 제일 흥미로웠다.

야곱의 축복과 모세의 축복은 구속사의 흐름을 계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야곱의 축복은 미래를 예언, 행위에 따른 저주도 있는 반면 모세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중심으로 선포, 저주는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야곱의 축복’이 아니라 ‘모세의 축복’을 축복송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ㅎㅎ

또 구약에는 십일조가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십일조는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해 소득의 1/10을, 두 번째 십일조는 성소에서 이웃들과 감사의 축제를 나누기 위해 나머지 소득에서 1/10을 드렸다고. 이 부분에서, (지금이 구약시대는 아니지만) 내 소득의 일정 부분을 이웃들과의 교제(그리고 구제)를 위해서 구분해 놓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개의 항목은 성경을 너무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아쉬워하는 혹자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해석이 분분한 난제의 경우 왜 그렇게 해석한 건지 근거를 명확히 밝히고 있어서 납득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성경에 충실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였고, 언약 신학 안에서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어 성경 이해에 유익함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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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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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거침없는 문장, 실명과 상호명을 그대로 사용, 정치 경제 사회 현안들을 체에 거르지 않고 생생하게 도마에 올리는 글에, 당혹스러움과 쾌감이 교차했다.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논픽션일까. 내가 읽고 있는 게 소설인가 현실인가. 아니 그보다 국내 정치 상황과 정치인들 실명을 그대로 언급해도 괜찮은걸까? 나 지금.. 떨고 있니?..


어디에서든 정치와 종교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인간관계에서의 국룰(?) 아니던가. 은밀하게 속삭여야 할 것 같은 주제들을 날 것 그대로 가공해 솔직하게 눈 앞에 펼쳐 놓고 서슴 없이 대화를 요청하는 소설이라니. 속 시원하면서도 두렵고, 날카로우면서도 혼란스러우며, 묵직하면서도 유쾌한 조선희 작가의 ≪그리고 봄≫을 읽었다.


소설은 4인 가족의 시점을 4계절로 설정해, 봄-정희(엄마), 여름-하민(딸), 가을-동민(아들), 겨울-영한(아빠), 그리고 봄-정희(엄마)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실 정치를 평범한 한 가족에게 투영해 갈등과 해체가 화해와 봉합으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잘 그려냈다. 읽다보면, 나와 상관 없을 것 같은 이야기도 우리네 삶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 평범한 가정에도 정치 사회 문제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가령 대통령 선거가 한 가족의 해체 위기로 이끄는 요인이 될 수 있고, 커밍아웃과 국제결혼이 내 딸의 미래일 수 있으며, 각종 사회 현상과 재난의 피해를 내 아들이 겪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갈등으로 금이 가버린 가족 관계를, 이들은 존중과 수용으로 자연스럽게 극복해 간다. 다양성이 혐오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혐오의 팬데믹에 물들어 후퇴하지 않으려면 마찬가지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설은, 혐오가 아닌 존중으로 양극화가 아닌 수용으로 성숙하게 나아갈 것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바닥을 쳐야 튀어 오르는 변증법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독일의 민주주의와 의회제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마저도 역사는 경험과 실력으로 쌓아 진보한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내일을 낙관할 수 있는 이유임을 소설은 알려주고 있다.


정치사회의 IMF, 혐오의 팬데믹 가운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하는 유의미한 이 책을, 독자들도 읽어 보시길!


📍’그래, 바로 그거야. 바닥을 쳐야 튀어 오르지.‘ / 226

📍“근데요. 우리가 6.29하고 10.26이 뭔지 꼭 알아야 돼요? 5.18 광주도 그래요. 우리나라가 민주화됐잖아요. 민주화되기 전에 그 옛날얘기를 그렇게 자세히 알 필요가 있어요?“ / 248

📍“우리 엄마 아버지는 평생 6.25를 안고 갔고 우리는 5월 광주를 죽을 때까지 가져갈 거고. 하민이나 동민이는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거야.” /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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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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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작년 한 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2223명이라고 한다. 사고 사망자는 874명, 질병 사망자 1349명. 하루에 두 명꼴로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셈. 끼여서 죽고, 떨어져 죽고, 불에 타 죽고, 질식해 죽고, 감전돼 죽고.

산재 사망소식은 뉴스나 신문에서 간간히 접했었지만, 그 내용은 단신이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릴 정도로 무성의하고 불친절하다. 경제 관련 매체는 더더욱. 이 사고에 관해 분명 숨은 이야기들이 더 있을텐데, 억지로 운을 떼다 만 것 같은 느낌. 아니 의도적으로 정보 공개를 방해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애도하기는커녕 과실을 뒤집어씌우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기업을 위축시키고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악으로 묘사하면서.

솔직히 나는, 우리나라에서 산재 사망이 이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정말 몰랐다. 평택항 이선호 씨, SPC 제빵공장 직원,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구의역 김 군... 산재는 그저 아주 가끔씩,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건인 줄로만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노동자는 일터에서 왜 죽음을 맞는걸까. 노동자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그들의 서사는 왜 무시되거나 은폐되는 걸까. 우리는 언제까지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이 ‘당연해야’ 하는 걸까.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신다은 기자의,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미 앞서간 이들의 행적을 빌어 “진실의 조각들을 모으고 기록”했다. 저자의 말대로 ‘안전’이란 것엔 애초부터 또렷하고 쉬운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터의 안전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하고 재해의 흔적을 더듬어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만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우리의 일터를 안전하게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 또 그렇게 하는 일은, 뭉뚱그려진 노동자의 죽음을 선명하게 애도함으로써 그들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떠나간 이들의 서사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일종의 부고장이기도 하다.


1,2부에선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려는 다방면의 노력과 그 결과가 담겼다. 저자는, 평택항에서 300kg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한 이선호 씨 사건을 중심으로 ‘사고의 구조적 원인이 노동자의 죽음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짚어내고, 제조업 산재 사망사고를 유형별로 분류해 밝힌다. 마음이 아파 읽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노동자 과실’이라는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래, 어찌 작업자의 과실이 없을 수만은 있겠나. 그렇지만 안전수칙 위반이 노동자의 ‘선택’이라 할 수 없는,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가 ’누가 됐든‘ ‘어쩔 수 없이’ 위반할 수밖에 없는 관행이 숨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임스 리즌의 ‘썩은 사과’ 이론처럼 “안전수칙 위반이 개인 실패가 아닌 시스템 실패”라면...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가 산재의 구조적 원인 파악을 왜 강조하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3,4부에선 연간 800여명에 달하는 (사고에 의한) 산재 발생에도 불구하고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공개 되지 않는 이유를 살피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산재를 은폐하려는 시도와 밝히려는 노력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이유를 ‘소통의 부재’로 보았다. 기업의 은폐하려는 태도, 정부의 예방보다 처벌에 치우친 방식, 노조의 역량 부족, 언론의 관심 부재 등이 산재 소식이 세상 밖으로 울리지 못하는 이유라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선 산재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처벌을 넘어 예방 그리고 ‘사회적 기억’으로 나아가야 하며, 더 날카롭고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사회 전체가 안전에 반응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산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재해조사의견서, 법원 판결문)을 읽을 땐 정부에서 꼭 반영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또 ’사람 많이 죽는 기업‘을 ’살인 기업‘이라 칭한 노동단체의 적나라한 단어가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안전을 중심에 두지 않는 기업의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죽는다고 했다. 뒤집으면 기업이 안전해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

자연스럽게 죽는게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고발하는 ,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있는 사회를 꿈꾸게 하는 책을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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