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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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거침없는 문장, 실명과 상호명을 그대로 사용, 정치 경제 사회 현안들을 체에 거르지 않고 생생하게 도마에 올리는 글에, 당혹스러움과 쾌감이 교차했다.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논픽션일까. 내가 읽고 있는 게 소설인가 현실인가. 아니 그보다 국내 정치 상황과 정치인들 실명을 그대로 언급해도 괜찮은걸까? 나 지금.. 떨고 있니?..


어디에서든 정치와 종교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인간관계에서의 국룰(?) 아니던가. 은밀하게 속삭여야 할 것 같은 주제들을 날 것 그대로 가공해 솔직하게 눈 앞에 펼쳐 놓고 서슴 없이 대화를 요청하는 소설이라니. 속 시원하면서도 두렵고, 날카로우면서도 혼란스러우며, 묵직하면서도 유쾌한 조선희 작가의 ≪그리고 봄≫을 읽었다.


소설은 4인 가족의 시점을 4계절로 설정해, 봄-정희(엄마), 여름-하민(딸), 가을-동민(아들), 겨울-영한(아빠), 그리고 봄-정희(엄마)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실 정치를 평범한 한 가족에게 투영해 갈등과 해체가 화해와 봉합으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잘 그려냈다. 읽다보면, 나와 상관 없을 것 같은 이야기도 우리네 삶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 평범한 가정에도 정치 사회 문제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가령 대통령 선거가 한 가족의 해체 위기로 이끄는 요인이 될 수 있고, 커밍아웃과 국제결혼이 내 딸의 미래일 수 있으며, 각종 사회 현상과 재난의 피해를 내 아들이 겪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갈등으로 금이 가버린 가족 관계를, 이들은 존중과 수용으로 자연스럽게 극복해 간다. 다양성이 혐오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혐오의 팬데믹에 물들어 후퇴하지 않으려면 마찬가지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설은, 혐오가 아닌 존중으로 양극화가 아닌 수용으로 성숙하게 나아갈 것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바닥을 쳐야 튀어 오르는 변증법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독일의 민주주의와 의회제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마저도 역사는 경험과 실력으로 쌓아 진보한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내일을 낙관할 수 있는 이유임을 소설은 알려주고 있다.


정치사회의 IMF, 혐오의 팬데믹 가운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하는 유의미한 이 책을, 독자들도 읽어 보시길!


📍’그래, 바로 그거야. 바닥을 쳐야 튀어 오르지.‘ / 226

📍“근데요. 우리가 6.29하고 10.26이 뭔지 꼭 알아야 돼요? 5.18 광주도 그래요. 우리나라가 민주화됐잖아요. 민주화되기 전에 그 옛날얘기를 그렇게 자세히 알 필요가 있어요?“ / 248

📍“우리 엄마 아버지는 평생 6.25를 안고 갔고 우리는 5월 광주를 죽을 때까지 가져갈 거고. 하민이나 동민이는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거야.” /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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