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지옥 - 91년생 청년의 전세 사기 일지
최지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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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나와야 할 책이 나왔다. 전세사기를 당한 91년 생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현 시대를 향한 고발과 투쟁 기록.

현재 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수많은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의 태도는 미온적이기만 하다. 이제서야 심각성을 인지했을 뿐,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제도와 법을 고치는 건 여전히 뒷전이다. 현재의 법과 제도로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지옥으로 내몬 사기범들을 처벌 할 방도가 없다. 처벌 하더라도 솜방망이에 그칠 뿐이다. 사기수법은 날로 진화해 가고 있는데, 피해의 범위도 더 넓어지고 있는데, 전세사기 문제를 정말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까? 다른 방법이 없을까? 조심한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문제인가?


나는 서울 화곡동 9평짜리 빌라의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여러번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참아가며 이 책을 읽었다. 보증금 1억 8천 신혼집에서, 나는 전세사기를 당했다. 저자의 경우와 수법은 다르지만(나의 경우는 화곡동에 천백 여채를 소유한 ‘빌라왕’의 수법과 같다). 전세사기는 당해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모르고 ’내 일‘이 아니라며 관심 밖에 두게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출간이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이 책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이야기를 사회에 더 선명히 전달해주길, 전세제도 결함을 수정 보완할 동력으로 작용해 주길 나는 간절히 바란다.


저자는, 월세 30만원을 아끼기 위해 은행에서 청년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전세 집을 구한다.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부동산 사장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파일럿이 되기 위해 돈을 모으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서.. 저자가 계약한 리첸스 1004호는 녹물과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는, 회사와도 가까운, 그야말로 천국 같은 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자는, 그 집이 지옥행 문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수 씨한테 보여주려는 집이 1004호거든? 봐봐, 이름부터가 천사잖아. 여기서 살면 매일 천국에서 사는 기분일 거야.” / 38

📍“자식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내걸고 영업하는 부동산 사장을, 나는 끝까지 믿고 싶었다. 인류애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 75


경매통지서가 문 앞에 붙고 새로운 낙찰자가 정해진 후 하루아침에 전재산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게 된 저자는, 시청과 법원, 경찰서, HUG, 주거복지재단 등을 쫓아다닌 지옥 같은 820여 일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그 과정이 얼마나 큰 고통의 시간이었을지,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사기꾼들에게 관대“한지, 각종 절차들은 뭐 이리 까다롭고 어려운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입구에 선 기분“이 뭔지.. 나는 겪어봐서 다 안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되지 않는 열 가지 원칙’ 중 1번 “전세 계약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그래도 전세 계약을 하지 않는다.“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전세사기 수법은 하루게 다르게 진화하고 있고, HUG 전세보증금 반환보험을 가입한다해도 보증범위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서(그마저도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전세계약이 얼마나 허점이 많고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도 두번 다시 전세계약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무분별한 부동산 투기와 전세제도에 대한 대책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전세사기는 피해자의 잘못 때문에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전 재산을 잃었어도 삶에 대한 끈과 희망을 놓지 말자고, 우리 잘못 아니니까 끝까지 힘내자고, 나는 이 지면을 빌어 꼭 말하고 싶다.

📍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웃을 날이 오겠지. 죽지 않고 살아온 어제의 나에게 고맙고,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갈 내일의 나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이 시간은 반드시 지나갈 것이고,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깟 돈 때문에 저버리기에, 내 삶은 정말 소중하고 귀하다. 모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모든 분을 응원한다. 죽지 말자. 어떻게든 살아남자. / 158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주고, 연대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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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고민 상담소 - 공부, 꿈, 관계, 인생에 대하여 학생들이 묻고 교사가 답하다
권승호 지음 / 지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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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이 청소년들의 고민에 답해주는 형식의 책.

고민은 크게 ‘공부와 공부법 / 사교육 정말 안해도 괜찮은건지 / 국영수 공부법 / 꿈과 진로 / 그리고 기타고민(이성교제,부모님과의 갈등,외모) 등’으로 구분 할 수 있다. 

 

168개의 고민을 읽으면서,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내적갈등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청소년 때 똑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도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많은 청소년들이 쉴 시간, 놀 시간, 책 읽을 시간 하나 없이 ‘대학입시’ 공부에 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몇 가지 중복된 답변들을 통해 저자의 일관적인 교육관도 알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게, 학원을 다니지 말고 학교 공부에 충실하며 ‘자기주도학습’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것(이걸 제일 많이 강조한다). 저자는 사교육에 정신없이 떠밀리는 청소년들에게 ‘진짜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임을 반복해서 알려준다. 저자에 의하면, 사교육(학원 및 선행학습)은 안하는 게 좋다는데,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하지만 사교육 위주의 교육이 정말 바뀌기는 할까? 내 자녀가 청소년이 됐을 때 나도 사교육을 안 시킬 수 있을까?.. 여러가지 비관적인 생각이 스쳐갔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이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가볍게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교육기관에서 청소년을 지도하는 교사에게도 유익할 책이다.

단, 인문계 고등학생의 고민에 한정 되어있다는 점, 저자가 공교육 교사라 대학입시에 공부의 단기 목표가 설정 되어있다는 점 등은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남자 선생님답게 조언도 ‘매운맛 돌직구’다. 그래도 책인데, 이렇게  뼈 때려도 돼? 하는 생각이... ㅋㅋㅋㅋㅋ 나와 남편도 교육기관에서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담당하고 있지만, 나는 정말 돌려 돌려~ 말할 것 같은데. 저자의 조언 방식에 대리만족을 해보며, 속까지 시원해지는 매운맛 돌직구는 책으로 만나보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공부하며 안전하게 성장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양육하는 학부모들과 교육하는 지도자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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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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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무총장이 “지구가 온난화 단계를 넘어 끓어오르는 시대다“ ”인류가 지옥의 문을 열었다“라고 외치고 다닐 만큼 기후 사정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 일로를 걷고 있고, 우리가 손써볼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 101


얼핏 인류의 승리처럼 들리는 ‘인류세’는 ‘기후위기’라는 끔찍한 청구서를 인류에게 내밀었다. 기후위기는 정말 코 앞으로 다가왔고, 기후위기를 ‘되돌릴’ 골든타임은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주요 생태지표의 티핑포인트(임계점) 도달 시점이 빠른 속도로 앞당겨졌다는 연구 결과가 2021년 7월에 발표됐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은 그 속도가 얼마나 늦춰졌을까.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지구 열대화’라고 한다는 말을, 나는 올해 여름을 보내며 절실하게 체감했다. 더이상 ‘급하지 않다’며 방관하고 있을 수 없다. 기후 재앙으로 달리는 가속 페달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혹자는 여전히,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게 당장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해야하냐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정치권부터 ‘저감’보다는 ‘적응’과 ‘무대응’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소위 진보 정당이라 불리는 곳도 기후위기에 직접적으로 제동을 거는 정책이 아닌 기후변화의 피해가 클 ‘취약계층 배려’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나는 이게 ‘적응에 해당하는 대응’이라는 저자의 말에 꽤 놀랬다. 저자의 말이 맞다. 지금의 정치권은 ’위드 코로나’처럼 ‘위드 기후변화‘의 태세를 벌써부터 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기후변화 자체를 막으려는 ’저감‘이어야 하는데.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는 여전히 ‘성장’과 ‘개발’을 부추기며 인간으로 하여금 죄책감 없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만든다. 두산중공업이, 2021년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것을 두고 반대 시위를 한 젊은 활동가 두 명을 되레 고소했다고 한다(199p). 자본주의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까.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개개인도 이기심과 근시안, 비양심과 어리석음에 기후위기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무엇에나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도스도예프스키의 말을 작금의 상황에 적용해 본다면, 차라리 적응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인간이길 포기하는 게 전 지구적 차원의 생태계에 더 이로울지도 모르겠다.


📍 단기 목표와 구체적 이행 계획 없는 30년 후의 약속은 달성 없음을 드러낸다는 것. /35

📍어리석음이란 순우리말로 ‘얼’이 ‘썩은’, 즉 정신이 썩은 상태다.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다. 지능이 높아도 얼마든지 어리석을 수 있다. /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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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주의가 불러온 폐해. 동시에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 기후위기. 저자는 이에 새로운 관점인 ‘탈인간’을 제시한다.

탈인간은 인간이기를 그만두자는 말이 아니라, 생태적 파국을 불러온 인간 중심주의, 비인간 타자를 존중하지 않는 인간 우월주의를 벗어나 보려는 시도를 말한다. 타자들의 존재를 그 자체로 오롯이 긍정하는 것.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중심의 자리에서 매개의 자리로 물러나는 것. 그동안 ‘우리’라고 상정해 왔던 구성원의 테두리를 확장해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탈인간인 것이다.


📍탈인간이 추구하는 벗어남과 타자 포용은 이런 것이다. / 15

📍그 ‘우리’는 비인간 동식물을 포함하는 광의의 우리여야 한다. / 54


탈인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거짓 녹색 성장에서 탈성장을 추구하고, 개발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에 저항할 것을 저자는 제안한다. 또 육식주의를 멈추고, 무분별한 포획과 낚시를 하지 않는 것이다. 비거니즘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공장식 축산을 멈추게 하기도 하지만 “공동체(환경,건강)와 약자(동물권) 배려라는 보편적 가치를 대변“하기도 한다. (49p) 나는 이 문장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자가 고래 등의 다양한 ’물고기‘들을 ’물살이‘라 이름한 것도 마음에 깊이 남았다. 


탈인간은, 인류가 기후위기 앞에서, 인류세의 끝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가져야 할 담대한 상상력이며 환상이다. 동시에 구체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아야만 실현됨을 목도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여정이기도 하다. 탈인간 선언! 거스를 수 없는 이 요청에 독자들도 반응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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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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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0일, 윤석열 후보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날. 검찰총장 출신에다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다니. 아니다, 정치를 모르는 건 괜찮다. 내가 염려했던 건 그가 추구하는 정치의 방향이었다. 대한민국을 병들게 할 정치, 갈등과 분열과 공포를 일으키는 폭력적인 정치, 애써 이룬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할 게 뻔한 정치이기 때문. 간발의 차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 됐을 때, 내 지인은 당시 윤석열과 단일화를 했던 안철수를 매우 원망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박쥐 같은 사람이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나중에 한자리 받으려고 한치 앞만 내다본 거 아니냐고.


≪두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는 TBS <신장식의 신장개업>의 논평 ‘신장식의 오늘’ 중에서 2022년 3월 10일 이후 방송분을 추려 뽑아 만든 책이다. 주제별로 7장으로 분류, 시간 순서대로 구성 되어 있다. 검찰 공화국, 노동자와 소수자 인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태도 등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날카롭게 짚어내는데, 글과 내용이 마치 생선의 썩은 부분을 단번에 도려내려는 회칼 같다. 신랄하다. 논평 하나의 길이는 짧은 편이지만, 읽는 데 오래 걸렸다. 허투루 읽을 수 없기도 했고 또 읽다보니 답답해서 속도가 자꾸 느려졌다. 그래 이 책, 정말 무지 아프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으로 시작한 이 봄, 우리가 목도한 것은 이 땅의 정치의 참담한 실패입니다. 그것은 단지 차별금지법을 못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불평등과 부정의로부터 변화시킬 능력이 지금의 정치에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더 이상 국회 앞에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국회가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찾아올 정치가 부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 122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46일간 곡기를 끊었던 인권 활동가 미류 씨가 단식 농성 중단 기자 회견에서 한 말이다. 저자는 여기에 “정치가 실패한 자리, 정치가 부재한 자리가 어디 국회 앞뿐이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공무원에게는 복종 의무가 있다, 검찰만 빼고. 이러고도 검찰 공화국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 39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 600일 / 155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멸공이냐 아니냐, 반중이냐 아니냐, 한미일이냐 아니냐, 친윤이냐 아니냐. (…) 여기에 실리와 균형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 265


책을 다 읽고나서 ’들어가는 말‘을 다시 읽어보니, ‘신장식의 오늘’은 “난중일기나 마찬가지였다”던 저자의 말이 비로소 공감 되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약 600일, 정치, 경제, 사회, 노동, 인권, 생명, 안전, 외교, 국방 등 전방위적으로 대환장파티. 총체적 난국이다. 난중일기라니, 웃프다 웃퍼. 개인적으론 기독교인으로서 거짓 선동가 전광훈 목사의 이름이 여기 있는 게 심히 부끄러웠고, 현 대통령을 ”MB 시즌2“라 한 것도 동의 되었다. 정치를 보는 눈과 역사를 조망하는 시야를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대한민국,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건, 모든 걸 다 얼어붙게 만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독한 겨울에도 끝이 있다는 불변의 사실 때문이 아닐까. 겨울이 지나간 자리엔 반드시 생명을 움틔우는 봄이 찾아온다는 것. 우리가 공감하고 연대한다면, ‘국가 시스템과 민주주의 역량’이라는 내벽을 더 단단히 세운다면, 지금의 시간을 성찰의 기회로 보낸다면, 정치가 실패한 자리, 정치가 부재한 자리에서 시작되는 “내일을 여는 정치“를 목도할 수 있으리라.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지치지 말고 당당히 앞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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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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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랑희,슬기,이호연,타리,희정,전주희 글, 치명타 그림

#한겨레출판


📘

한부모가족, 경력단절여성, 장애인 등이 비교적 쉽게 취업할 수 있고, 월급이 제때 나오며, 3교대이지만 육아와 집안일까지 겸할 수 있는 일. 바로 톨게이트 수납 업무다. 이 일은 ‘좋은 일자리’란다. 아줌마들에겐. 

그러나 톨게이트 노동자 1,500명의 농성과 투쟁을 통해 까발려진 진실은, 좋은 일자리는 무슨. 그야말로 ‘지옥의 노동’이었다. ‘공공기관 일자리’라 불리지만 실은 영업소와 계약을 맺는 외주화 형태. 냄새나는 관행과 노동자의 착취가 여기에 숨어 있다. 월급을 제 때 받긴 하지만 불안전과 불평등이란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취업의 문턱은 낮았지만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비정규직이다. 장애인 고용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이용되고, 성희롱, 갑질 등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우가 만연하다. 취약한 노동자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곳이 바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영업소였다. ‘좋은 일자리’란 말에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뼈아프게 들어 있었다.

‘화물차가 부스를 박아서 근무자가 입원해 있는데도, 노동자들의 안전은 안중에 없다’는 서범주 님의 말에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책은, 도로교통이 1,500여 명의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한 사태에 맞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한 2019년의 시간을 조명한다. 이들은 약 7개월 간 톨게이트 캐노피 위, 도로공사 본사, 청와대 앞, 광화문 등에서 점거농성을 했다. 당시 대법원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직접고용 하라‘고 판결 했고, 이 판결에 따라 10명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도로교통에 직접고용 된 ’정규직‘으로 복직 되었다.


12명의 톨게이트 노동자가 구술자로 참여해 이 사건의 전말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구술자 12명은 트럭 과적 단속 일을 하던 남성노동자 1명과 11명의 여성노동자들이다. 여기서 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보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취약자라는 공통점에 더 집중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누구나 취약한 자가 될 수 있다. 꼭 여성, 장애인,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더라도.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인터뷰를 하나하나 읽다보면 ‘직접고용’의 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단순해 보이는 4글자는 ‘고귀한 노동가치를 향한 열망‘과 ’더 인간다운 삶을 향한 희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좋은 일‘이란 무엇인지, 아니 그 이전에 ’노동’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끝까지 투쟁했던 1,500명은 깨어 있는 사람, 볼 줄 아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은 돈을 떠나서 인간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들 같아요. 이 사람들은 장애인이든 아니든 인간적인 대우를 안 해줬기 때문에 싸운 거고. 우리가 정규직이 되었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받는다거나 그러진 않잖아요. / 171


직접고용으로 정규직이 지금,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이전에 하던 일이 아닌 졸음쉼터 청소나 풀 뽑기 등의 임시 업무를 부여 받았다. 요금 수납 업무는 자회사가 가져갔고, 과적 단속이나 스마트톨링 등은 기계가 대신한다. ‘제대로 된 일‘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중이지만, 도로공사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에 소홀하다. 하이패스 상용화로 톨게이트 수납은 더 줄어들테니, 어쩌면 앞으로도 이들이 ’제대로 된 일’을 맡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과 쟁취는, 노동의 지형을 바꿀 유의미한 분기점인 건 분명하다. ‘평등하고 공정한’ 노동 환경을 질문하는 한 걸음이 되었다. 단단한 바위도 균열을 낼 수 있는 촘촘한 연대의 힘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AI 시대에 기계에 대체 되는 인간의 노동을 어떻게 지키고 살릴 수 있을지, 인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함을 시사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 어차피 우리에게 직군을 변경시켜 가면서까지 줄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면 우리는 다 같이 할 수 있는 업무에 집단적으로 들어가길 원한다고 했어요. 안 흩어지고 이 인원 그대로 할 수 있는 일 말이죠. ‘그렇게 밀어내고선 만든, 더 이상 채용 없고 결국 없어질 업무’ 말고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 자긍심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업무를 같이 만들어 보자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요. /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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