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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랑희,슬기,이호연,타리,희정,전주희 글, 치명타 그림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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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가족, 경력단절여성, 장애인 등이 비교적 쉽게 취업할 수 있고, 월급이 제때 나오며, 3교대이지만 육아와 집안일까지 겸할 수 있는 일. 바로 톨게이트 수납 업무다. 이 일은 ‘좋은 일자리’란다. 아줌마들에겐.
그러나 톨게이트 노동자 1,500명의 농성과 투쟁을 통해 까발려진 진실은, 좋은 일자리는 무슨. 그야말로 ‘지옥의 노동’이었다. ‘공공기관 일자리’라 불리지만 실은 영업소와 계약을 맺는 외주화 형태. 냄새나는 관행과 노동자의 착취가 여기에 숨어 있다. 월급을 제 때 받긴 하지만 불안전과 불평등이란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취업의 문턱은 낮았지만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비정규직이다. 장애인 고용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이용되고, 성희롱, 갑질 등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우가 만연하다. 취약한 노동자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곳이 바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영업소였다. ‘좋은 일자리’란 말에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뼈아프게 들어 있었다.
‘화물차가 부스를 박아서 근무자가 입원해 있는데도, 노동자들의 안전은 안중에 없다’는 서범주 님의 말에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책은, 도로교통이 1,500여 명의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한 사태에 맞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한 2019년의 시간을 조명한다. 이들은 약 7개월 간 톨게이트 캐노피 위, 도로공사 본사, 청와대 앞, 광화문 등에서 점거농성을 했다. 당시 대법원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직접고용 하라‘고 판결 했고, 이 판결에 따라 10명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도로교통에 직접고용 된 ’정규직‘으로 복직 되었다.
12명의 톨게이트 노동자가 구술자로 참여해 이 사건의 전말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구술자 12명은 트럭 과적 단속 일을 하던 남성노동자 1명과 11명의 여성노동자들이다. 여기서 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보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취약자라는 공통점에 더 집중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누구나 취약한 자가 될 수 있다. 꼭 여성, 장애인,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더라도.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인터뷰를 하나하나 읽다보면 ‘직접고용’의 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단순해 보이는 4글자는 ‘고귀한 노동가치를 향한 열망‘과 ’더 인간다운 삶을 향한 희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좋은 일‘이란 무엇인지, 아니 그 이전에 ’노동’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끝까지 투쟁했던 1,500명은 깨어 있는 사람, 볼 줄 아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은 돈을 떠나서 인간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들 같아요. 이 사람들은 장애인이든 아니든 인간적인 대우를 안 해줬기 때문에 싸운 거고. 우리가 정규직이 되었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받는다거나 그러진 않잖아요. / 171
직접고용으로 정규직이 지금,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이전에 하던 일이 아닌 졸음쉼터 청소나 풀 뽑기 등의 임시 업무를 부여 받았다. 요금 수납 업무는 자회사가 가져갔고, 과적 단속이나 스마트톨링 등은 기계가 대신한다. ‘제대로 된 일‘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중이지만, 도로공사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에 소홀하다. 하이패스 상용화로 톨게이트 수납은 더 줄어들테니, 어쩌면 앞으로도 이들이 ’제대로 된 일’을 맡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과 쟁취는, 노동의 지형을 바꿀 유의미한 분기점인 건 분명하다. ‘평등하고 공정한’ 노동 환경을 질문하는 한 걸음이 되었다. 단단한 바위도 균열을 낼 수 있는 촘촘한 연대의 힘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AI 시대에 기계에 대체 되는 인간의 노동을 어떻게 지키고 살릴 수 있을지, 인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함을 시사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 어차피 우리에게 직군을 변경시켜 가면서까지 줄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면 우리는 다 같이 할 수 있는 업무에 집단적으로 들어가길 원한다고 했어요. 안 흩어지고 이 인원 그대로 할 수 있는 일 말이죠. ‘그렇게 밀어내고선 만든, 더 이상 채용 없고 결국 없어질 업무’ 말고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 자긍심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업무를 같이 만들어 보자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요. / 3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