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날엔 말리꽃 향기를 따라가라 - 삶이라는 여행에서 나를 지켜주는 지혜의 말
재연 옮김 / 꼼지락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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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되는 시들은 헛된 우상을 섬기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높은 신분을 믿고 거들먹거리는 자에게는 가차 없이 야유를, 지식과 지혜를 갖지 못한 자에게는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냉소를 보인다.

이 시집은 인도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고전 시가를 번역한 것으로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읽어낼 수 있다. 시집을 보면 우리들의 일상 아주 가까운 곳에 뿌리를 대고 있는 교훈적인 속담, 명언, 경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시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갠지스강이 흐르는 인도 대륙에 사는 사람들과 한반도의 한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도 다르고 생활 풍습도 다르지만,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는 시각과 미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읽는 눈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옛 인도 대중의 실상은 특정 종교나 학파의 전적들 혹은 왕실의 돈주머니를 곁눈질하며 알랑거린 궁정 작가들의 어지러운 말장난보다는, 대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다양한 주제의 잠언, 속담, 경구, 풍자시 들을 통해서 더욱 가깝고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산스크리트 문학의 한 장르인 수바시따다. (p8)

이 책은 수바시따를 한데 모은 시집이다.

수바시따 가운데는 격언이나 교훈적인 잠언시뿐만 아니라 고전문학 작품에 나오는 시와 그것 자체로서 훌륭한 시로 평가되는 저자 불명의 걸작도 들어 있다.

인간의 욕망과 정감, 약점과 결함까지도 포함한 인간성의 따스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인들이 신화와 전설, 그리고 실생활에서 경험한 흥미로운 일화와 함께 제시한 짧은 시들이 수바시따의 주류를 이룬다.

수바시따 시들의 주제는 삶의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수바시따 모음의 전통적인 편집 방식은 힌두교도가 생의 목표로 치는 정의, 부, 사랑, 그리고 해탈의 네 가지 큰 주제로 나눠 정리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수바시따 선집은 푸나대학교 산스크리트과의 석사과정 교재로 쓰였던 적도 있다.

이 책의 번역의 주안점은 시적인 구문보다는 보다 가까운 원문의 의미를 전달에 뒀으며, 가능한 어순과 각 단어의 격을 바꾸지 않고 직역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말로 옮기면서 산스크리트 시들이 가지는 아름답고 독특한 운율을 살리지 못한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인도 대중 시선집이 사람들에게 환상과 신비의 인도에 대한 오해를 지우고, 우리 자신과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다시 들여다보며, 이웃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두 개의 시집을 인용해보자.

첫 번째 시의 제목은 '베풂'이고, 두 번째 시의 제목은 '해와 달'이다.

베풂

행운이 왔을 때 베풀라

신이 또 채워줄 것이니

행운이 시들 때 역시 베풀라

어차피 죄다 없어질 것이니

지금 가진 그만큼으로

왜 기꺼이 나누려 하지 않는가

어느 세월에 베풀고 남을 만큼

가질 날이 올 것인가

p129

해와 달

이 세상에

해와 달보다 더 가난한 것은 없다

해와 달 앞에서

가난 타령하지 말라

저것 좀 봐

하늘 옷 한 벌을

밤낮으로 돌려 입는 것을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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