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학교
윤명선 지음 / 가디언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윤정의 〈어머나〉, 임영웅의 〈인생찬가〉, 이승철의 〈서쪽하늘〉, 이루의 〈까만안경〉, 김장훈의 〈Honey〉, 슈퍼주니어의 〈로꾸거〉…

한 번쯤 흥얼거려본 이 노래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작곡가 윤명선의 손을 거쳤다는 점입니다.

저에게도 이 노래들은 한때 입에 달고 살던 곡들이었어요.

멜로디만 좋은 게 아니라, 이상하게 마음을 찌르는 가사가 꼭 한 줄씩은 있었죠.

그 ‘감정의 한 줄’을 만들어 온 사람이 쓴 시집이라니, 제목부터 눈길이 갔습니다.

바로 윤명선의 시집 『운명의 학교』입니다.


노래하던 사람이, 시로 말하기 시작할 때

『운명의 학교』는 거창한 시 이론이나 난해한 상징 대신,

살면서 부딪히고 사랑하고 방황하고 버티고 결국 노래해 온 한 사람의 시간을 담담하게 풀어낸 시집입니다.

시집은 크게 다섯 개의 축으로 나뉩니다.

“부딪혀라, 사랑하라, 방황하라, 살아라 그리고 노래하라.”

마치 인생의 학년, 혹은 학교의 과목처럼 보이는 이 다섯 단어가 시집 전체의 색깔을 결정합니다.

노랫말을 통해 짧게 스쳐 지나가던 감정들이, 시라는 형식을 만나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게 앉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1교시, 부딪혀라 – 삶의 전면으로 나가는 연습

‘부딪혀라’는 제목이 붙은 시들을 읽다 보면,

불안해하면서도 결국 앞에 나가야 했던 청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그래도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기까지의 시간,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결정했을 때 마주했을 반대와 두려움,

그럼에도 스스로를 계속 무대 위로 밀어 올리는 힘.

노래 가사에서는 몇 줄로 스쳐 지나갔을 이야기들이,

시 안에서는 조금 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펼쳐집니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만 이렇게 흔들렸던 게 아니구나” 하는 묘한 위로를 받게 되고요.


2교시, 사랑하라 – 연애를 넘어, 존재를 사랑하는 법

‘사랑하라’ 파트는 제목만 보면 연애시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 전체를 다루는 시들이 더 많습니다.

연인 관계에서의 설렘과 상처는 물론이고,

가족, 동료, 팬,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 스펙트럼이 넓어요.

노래에서는 몇 분 안에 완성해야 했던 이야기들이,

시에서는 조금 더 여백을 가진 채로 놓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서늘하고, 때로는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이 사람은 사랑을 이렇게 견뎌 왔구나” 하는 마음이 읽히는 느낌이랄까요.


3교시, 방황하라 – 흔들림을 허락하는 용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축은 ‘방황하라’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방황을 “빨리 끝내야 하는 것”으로만 여기지만,

이 시집 속 방황은 인생의 필수 과목처럼 그려집니다.

어디가 정답인지 모르겠는 길 위에서

무작정 걸어본 날들,

잠 못 이루고 뒤척였던 밤의 감정들,

“나는 왜 이 길에서만 자꾸 미끄러질까” 자책하던 순간들.

윤명선의 시는 그런 방황을 부끄러운 실패가 아니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나 자신이 지나온 방황의 계단들도 조금은 덜 미워지게 됩니다.


4교시, 살아라 – 버티는 사람을 위한 시

‘살아라’ 파트는 말 그대로 “살아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화려한 무대 뒤, 보이지 않았던 불안과 공허,

성공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외로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의 일상.

이 시편들에서는 유난히 “버틴다”는 단어의 무게가 크게 느껴집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삶 자체를 위해 계속해서 하루를 시작하는 일.

그 평범하지만 거대한 작업에 대해

차분하게, 때로는 아주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5교시, 노래하라 –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

마지막 축인 ‘노래하라’는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결론 같습니다.

노래를 업으로 삼은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조금 넓게 보면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라”는 초대처럼 읽힙니다.

누군가는 정말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노래할 수 있겠지요.

윤명선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운명의 학교”라는 건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긴 과정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랫말에서 시로, 익숙함과 새로움이 동시에

『운명의 학교』를 읽는 재미는,

익숙함과 새로움이 동시에 온다는 데 있습니다.

노랫말을 통해 이미 그의 언어를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시집 곳곳에서 “아, 이 사람 특유의 감정선이다” 싶은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문장이 길지 않고, 이미지가 선명해서 시를 자주 읽지 않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어요.

동시에,

3~4분 안에 완성되어야 했던 가사의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여백과 맥락을 품을 수 있는 시라는 형식을 통해

조금 더 깊고 거친, 덜 다듬어진 감정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집은

  • 윤명선의 노래를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느낌으로,

  • 그냥 ‘사는 게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조용한 위로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이런 분들께 특히 추천하고 싶어요

  • 윤명선이 만든 노래들을 좋아했던 분

  • 가사처럼 솔직하고 이야기처럼 읽히는 시를 찾는 분

  •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분

  • 방황과 선택, 사랑과 버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솔직한 언어가 필요할 때

『운명의 학교』는 거창한 인생론을 들이밀지 않습니다.

대신, 작곡가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부딪히고, 사랑하고, 방황하고, 살아내고, 결국 노래하며 여기까지 온 시간을 조용히 건네줍니다.

그 속에서 각자 자기만의 운명의 학교를 떠올려 보게 되는 것,

그게 이 시집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