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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오설자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2월
평점 :
많은 사람들이 한 달 살기로 희망하는 곳이 있다면
단언컨대 그 1순위는 제주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뽑으라고 한다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육지와는 사뭇 다른 제주어가 먼저 다가온다.
제주를 처음 갔을 때 혼저옵서예라는 말을 보면서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거지라는 의문과 함께
왜 제주에는 아직도 이런 말이 남아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제주에 거주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육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듣거나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표현들이 주는 색다른 느낌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제주어.
제주어는 어떠한 느낌일까 생각해보니 책에 나온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어떤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입안에 굴리고 나면 나직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곤 합니다. 손안에 쥔 듯 가만히 만져지는 말, 말랑해지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말, 고향의 언어에는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_ 책 중에서
제주어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말 같다.
모든 지역에는 각자의 언어들이 남아있지만
제주어는 낯설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점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이 책은 아련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제주어 에세이이다.
저자는 눈이 하영(많이) 온 날,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솥 굽는 마을 새동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35년간 교단에 서 있으면서
좋은 이야기는 좋은 삶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제주어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제주를 느끼고 경험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뒈싸(뒤집어) 널었던 이불을 걷었습니다. 마음 속도 이불처럼 아무 때나 내어 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 묻은 마음, 습기 찬 마음을 이불을 내어 널 듯 햇살에 말리고 싶어집니다. 이불을 개다 말고 다시 얼굴을 묻었습니다. 따듯하고 보그락했습니다. 맑은 바람 냄새와 어린 시절 그 냄새, 과상이(바싹) 마른 이불에서 밤새 코소롱한 꿈을 꿀 것만 같았습니다. _ 책 중에서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낯선 제주어가 함께 섞여 있어서 그런지 더욱 고향이 정감이 느껴진다.
제주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마치 제주에 살아본 듯한 착각을 갖게 된다.
태풍은 인간들의 오만한 태도를 응징하는 신의 입김쯤으로 여겼습니다. 재해가 오면 삶을 돌아보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게 해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을 딛고 다시 삶을 이어갔습니다.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거두고, 멜라진(무너진) 담을 다시 쌓았습니다. 새봄이 돌아오면 여전히 씨를 뿌리고 태풍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_ 책 중에서
책을 읽다보면 매 문단마다 낯설고 신선한 제주어가 하나씩 섞여 있음을 알게 된다.
색다른 표현을 보면서
왜 이렇게 표현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서 글을 읽다보면
제주라는 곳이 갖고 있는 특징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
에구, 무슨 소용 있수광. 아들, 요거 컹 장개 가민 손지들이영 오순도순 살아질까 허는 꿈도 이서신디예. 막상 그게 아니라마씸.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으꽝? 이해는 헙니다. 이해 허명도 자식은 키웡보난 예, 한 치 건너우다. _ 책 중에서
제주 사람들의 실제 언어를 그대로 옮겨둔 표현들은
마치 제주 속 삶의 터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만큼 현실감 있게 제주어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써놓고 보니, 내 삶의 조각들을 숟가락으로 야금야금 파먹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며 뿌듯했습니다. 어딘가 갇혀 봉인되었던 말들을 풀어주고 살아 숨 쉬게 한 것 같아 기뻤습니다. _ 책 중에서
봉인되었던 말을 풀어주고
살아 숨 쉬게 한 것 같다.
책의 저자가 남긴 말이 너무 와 닿았다.
책을 통해 만난 제주어는 그동안 내가 느끼고 알던 제주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제주어로만 표현될 수 있는 감각을 느끼면서
제주어로만 증언될 수 있는 삶과 역사를 알아가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봉인되었던 말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을 함께 느끼게 되었다.
<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제주를 느끼는 또 다른 방법.
제주어를 통해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좋은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