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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2월
평점 :
개인적으로 정의에 대해 토론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꼭 가져오는 대표적인 예시가 있다면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등장했던 기찻길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차가 달려오고 있고, 그 기차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나.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가게 되면 기찻길에서 공사를 진행하던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3명이 죽게 되고
기찻길의 방향을 돌리면 10명이 타고 있는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죽게 될 때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속에 나의 가족이 있다면
또는 10명이 타고 있던 그 기차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지.
정의에 대해 이야기를 진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아파한다.
딜레마 상황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후회는 있고 어려움이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딜레마 상황만큼이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상황도 없다고 생각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고민하고 내려야하는 결정.
결국 마지막 행동이 그 사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생명과 정의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이 둘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특히나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명과 정의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져간다.
이미 영화에서 만난 세계처럼
머지않아 나와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만들어두고
내가 아프면 복제 인간의 심장을 나를 위해 가져오고, 복제 인간은 사망케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할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마주할 생명과 정의에 대한 딜레마는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 너무나 많은 상황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 먼저 살려야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런 딜레마 상황을 79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해준다.
책의 저자인 제이콥 M.애펠은 미국 의학박사이자 생명윤리학자이면서 변호사라고 한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전문 지식을 쌓다보니 고민이 정말 많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그는 저자에게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딜레마 상황을 이야기해준다.
현실이라서 더욱 안타깝고 속상한 딜레마들이었다.
첫 문제부터 어려웠다. 잠깐 문제 상황을 공유해본다.
75세 홀아비인 프레드는 콩팥기능상실(신부전)을 앓는 환자로, 평생 투석을 받아야 한다. 오랫동안 그를 진료한 애로스미스 박사와 한참 논의한 끝에, 프레드는 가족과 친구 중에서 신장 기증자를 찾기로 한다. 프레드의 외동딸로 마흔이 코앞인 린다도 기증자 적합성 검사를 받기로 한다.
검사 결과를 받아본 애로스미스 박사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린다의 신장이 적합하지도 않을 뿐더러, 유전자 표지로 보건대 린다가 프레드의 친딸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세상을 뜬 부인이 외도를 해서 린다를 낳았다는 뜻이다.
애로스미스 박사는 프레드나 린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_ 책 중에서
이미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너무나도 많이 접한 상황이지만
막상 이 문제 상황에서 어떠한 답을 내려야할 지를 고민해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막막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책에는 이 상황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한다는 결론은 내려주지 않는다.
어차피 답도 없을 뿐더러 답을 내린다고 해서 그것이 답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독자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또 하나의 흥미있는 딜레마 상황도 소개해본다.
몇몇 확실한 역학 연구에서 식수에 천연 리튬 성분이 들어있는 지역의 자살률이 낮다고 밝혀진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미량의 리튬에 노출되었을 때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런 위험을 찾아내고자 수행한 장기 연구는 거의 없다.
리튬과 관련한 이런 역학 연구가 영국의 어느 소도시 시장인 오티스의 눈길을 끈다. 이 도시의 자살률은 서방 세계에서 손꼽히게 높다. 오티스는 시의 식수에 리튬을 미량 첨가해 이 조처가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오티스가 생각하기에는 길게 봤을 때 리튬 첨가로 해마다 불필요한 자살을 50건은 예방할 수 있다. "리튬에 노출되고 싶지 않은 분은 생수를 사 마시면 됩니다."
오티스의 제안은 윤리에 어긋날까? _ 책 중에서
자살률. 우리나라도 이미 부끄럽게도 OECD에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자살률이기 때문에
리튬과 관련된 이슈는 나에게 무척 흥미로웠다.
실제로 이 일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상수도와 같은 공공 자원에 대한 다양한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실제 구현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한 생각 정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값진 시간을 마련해준다.
<누구먼저 살려야 할까?>
이 책은 앞에서부터 정독하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소설처럼 쭉 이어지는 내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각 파트에서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는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책의 아무 곳이나 잡고
랜덤으로 펴서 읽어보고 생각해보는 방식을 추천해본다.
답을 내릴 수 없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며
혹시라도 주변에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시간만으로도
생명과 윤리,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정의에 대해서
깊이있게 고민해보면서 삶에 대한
방향성을 하나하나 잡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책 제목은 참 잘 지은 것 같다.
누구 먼저 살려야할까?
https://youtu.be/QuMCF-sjzm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