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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철학 - 2019 청소년 교양도서 선정
송수진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3월
평점 :
3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
저자를 소개하는 첫 글귀이다.
아마도 '을'의 대표적인 부분을 나타내고 싶었나보다.
을.
가슴 아프지만 우리 사회의 을은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
너도 을이고 나도 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때가 많이 있다.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늘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20대를 살았으며
체한 것 같아 병원에도 가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20대 내내 앓은 멀미나는 체기와 복통은
30대가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30대로 접어들면서 어쩌면 40대의 나를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아팠던 건
철학이 없어서였다.
그러던 저자가 마주한 것은 바로 철학이었다.
그것도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면서 '을'로 살아온 저자의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한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보면서
온 몸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가 알게된 사실.
자신의 20대 전반을 지배했던 건 나에 대한 철학의 부재였다는 것이었다.
철학은 저자에게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 관점으로 자신을 둘러싼 이 세상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를 이해하니 주변의 타인도 눈에 들어오고
철학은 눈물나는 자각과 함께 처절한 반성, 그리고 작은 실천을 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이런 저자는 철학을 통해 삶이 다정해졌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야기한다.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를 구속해온 모든 것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당신도 지금 타고 있는 정신없는 그 버스에서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붕괴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책은 저자의 경험담으로 채워져있다.
실제 경험이라는 것이 때로는 놀랍게 다가온다.
그리고 저자가 겪는 엄청난 시련 가운데
철학이 주는 위로를 저자는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붕괴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독일의 철학자 애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을 이야기한다.
무언가 채워져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비워지거나 붕괴될 때 비로소 보인다. 이런 느낌을 철학에서는 현상학이라고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현상학은 독일의 철학자 애드문트 후설이 창시한 철학으로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지금까지의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선입견 없이,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본질을 파악하는 철학적 사고법'을 뜻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장녀라는 이유로 엄마의 기대를 니체가 말하는 '낙타'처럼 등에 짊어지고 살았다. 내가 가진 능력은 5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엄마는 늘 10을 바라셨다. 아주 가끔은 그런 엄마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_ 107쪽 중에서
저자의 통찰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자의 실제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철학은
단순하게 학문의 영역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철저하게 삶 가운데서.
느끼고 경험하는 철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언제 어디서 죽을지를 결정하는 거였어
영화 <캐스트어웨이>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탄 비행기가 표류하게 되고
무인도에서 무려 4년을 살다가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돌아온 그가 남긴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을 이야기한다.
그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글을 통해 그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한다.
내 옷을, 내 몸을, 내 노동을, 내 시간을 다 빼앗아도 내 자유는 빼앗지 못한다. 유대인들에게 자유가 있었을까 싶지만, 그들에겐 언제 죽을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지급받은 물이나 커피 가루를 마시고 씻지 않으면 몰골이 이상해져 더는 노동할 가치가 없는 자로 낙인찍혔다. 그렇게 해서 가스실로 갈 것인지, 아니면 반은 마시고 반은 씻어 노동을 할 수 있다고 어필해 죽음을 미룰 것인지의 싸움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우리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의 철학은 존재와 실존을 구분한다. 의자나 책상처럼 본질이 이미 정해진 사물들은 자유가 없는 존재다. 반면에 본질이 미리 정해지지 않은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드는 실존이다. 결국 우리는 자유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실존인 셈이다. _ 173쪽에서
되든 안 되든 최선을 다해보는 것,
이것을 철학이 알려줬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철학과 접목시켜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자하는 것일까?
작가는 우리에게 우리만의 철학으로 우리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철학이 내게 준 것들로 오늘도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 일상으로 흘려보낸 것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리고 평범이라 치부했던 일상에 비범이라는 이름표를 다시 붙여주었다. 나를 움직이게 해준 철학이 고맙다. 이 고마운 철학에게 나는 다짐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내 생을 다시 붙잡을 것이라고. 무엇을 하든 자발적 선택을 할 것이며, 혹여나 비련한 아우성 속에서 다시 질식하더라도 이제는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_ 288쪽에서
저자에게 당연하다는 듯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큰 위안이 되었다는 철학.
대한민국에서 '을'이라는 입장으로 살아가면서
저자가 느낀 '우리는 왜 이토록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
'을'이라는 이 커다란 절망을 읽다보면
희한하게도 자꾸만 희망이 생겨나는.
그 철학의 이야기를 <을의 철학>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