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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좋은 일 -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정혜윤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뜻밖의 좋은 일.
"
표지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고 싶다.
나는 이 그림을 2016년 빠리의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시회에서 발견했다.
그림의 제목은 '홍수'였다.
그린 사람은 샤를 글레르다.
1806년에 태어나 1874년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발견한 것은 내가 아니라
빠리 근교에 살던 내 친구였다.
친구는 미술관 전시회 정보를 검색하다가 이 그림을 봤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보면 틀림없이 좋아하겠군.'
그 다음에 친구는
'같이 가봐야겠다. 얼마나 기뻐할까?'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렇게 생각했다.
'비밀로 해야겠어. 전시회에 가자고 하면 귀찮을 거야.'
그러나 오랫동안 비밀로 하지는 못했다.
"
오랜만이었다.
책 표지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글이.
많은 책의 서문을 보았지만
표지를 이야기하는 책은 드물다.
대개의 표지는 책을 잘 나타내기 위해 가독성이 좋게 설정하거나,
사전에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지에 대한 언급은 대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표지는 작가가 직접 선정했나보다.
그렇기 때문에 표지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서평에서 나의 생각을 쓰는 것이 중요한 책이 있고,
나의 생각을 줄이고 그냥 보여주면 좋은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의 경우인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얻게 된 나의 생각도 좋지만,
그냥 함께 책의 내용을 공유하면서 책을 보는 것도 좋은 나눔이 될 것 같다.
"
천사를 믿었더니 수시로 천사의 날갯짓 소리를 듣게 되었다.
며칠 전에도
'나는 어떤 일을 하려고 태어난 걸까?' 물으며
눈물을 흘리는 초췌하고 아름다운 남자의 어깨에서
뾰족한 날개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책장을 넘길 때도 천사의 날갯짓 소리를 듣는다.
책을 읽는 사람의 구부린 어깨에서 투명한 날개가 솟아오르는 것을 본 일도 있다.
그 날개는 주는 자(저자)나 받는 자(독자)나 순수한 채로 서로의 영혼을 나누었기 때문에
투명해 보였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지 모를 것이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러웠다.
"
천사의 날갯짓 소리.
책을 읽는 사람들 속에서 천사의 날개를 본다는 이 표현 속에서
나는 작가의 감수성 넘치는 표현과 함께
넘치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
나와 세상 사이의 연결고리는 늘 책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늘 책으로 돌아갔다.
밤과 책의 위안으로 돌아갔다.
응답 없는 세상과 삶에 대한 고통스러운 사랑을
갖가지 아름다움으로 바꿔놓은 것이 책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책이 날개를 펄럭일 때 떨어져나오는 황금빛 가루에 의지하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를 달래고,
은밀히 격려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버티고,
집요하게 미래를 위한 소원을 품고, 슬픔을 잠으로 바꾸고, 꿈을 꿨다.
그리고 세상으로 돌아갔다.
소로우는 그 무엇도 내가 누구인지를 여름 햇빛만큼 잘 말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나 자신은 그 무엇도 내가 누구인지를 책을 읽는 밤만큼 잘 말해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도 책은 내 머리 위에서 펄럭거리면서 날갯짓을 한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날아다닌다.
말들이 공중에 떠 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책 속에서 지혜와 삶의 해법을 찾는 독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항상 독자인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의 고독을 떠올리고.
당신의 아까운 시간이 이 책으로 낭비되지 않기를 바라고,
당신의 삶 또한 낭비되지 않기를 바라고,
혼자서 책을 읽는 당신에게 말할 필요도 없이
기쁜 뜻밖의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
"
이런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독자로서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작가가 독자를 얼마나 배려하면서 글을 썼는지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묻어나오는 마음이.
작가의 문체를 통해 느껴진다.
이 책은 에세이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이야기가 묻어 나온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힘들고, 지치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실증이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우리의 삶.
이 책은 이런 우리의 삶을 위로하듯 다가온다.
"
주위가 텅 빈 것 같아! 허전해!의 반대.
꽉 찬 순간이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 있었던가?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순간을 잊을리가 없다.
그때는 흐를 생각만 하는 고집쟁이 시간도 흐르기를 멈추고
숨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소진되지 않는다.
그때 동그라미 속은 온기로 가득 차 있고
그 온기는 과거부터 우리가 해온 행동들의 정수 같다.
우리가 만들어낸 따뜻함 같다.
우리는 태어난 이유는 몰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안다.
우리가 태어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것이다.
일상은 초조하고 짜증나고 불안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일상 속 어딘가 이렇게 성스러운 순간이 있다.
"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뜻밖의 좋은 일을 가져다 준 책의 목록이 나와있다.
거의 논문급의 참고 문헌이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책을 통해 우리에게 뜻밖의 좋은 일을
선물해주고 싶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
괴테가 말했든 인생은 시처럼 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더라도 결코 우리에게도 하나의 인생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을,
다시 한 번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일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
때로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나는 그것이 뜻밖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뜻밖의 좋은 일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 순간은 보는 것으로 알 수 있지, 말로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 책은 뜻밖의 좋은 일이다.
그래서 글로, 말로 다 표현이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보여주고 싶다.
그 순간을 함께 바라보며 <뜻밖의 좋은 일>을 함께 경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