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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 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석기용 옮김 / 든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스토아학파=금욕주의. 아직 머릿속에 이런 공식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고등학교 주입식 교육이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뜬금없이 스토아주의자가 되었을까?? 현대사회의 물질만증주의 속에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려는 올드 한 가치관을 가진 책이며 어쩌지 하는 걱정 속에 책을 들었다.
책을 읽고 이해한 스토아학파의 금욕은 내가 생각했던 금욕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정확히 말하면 금욕의 범위가 달랐다. 어떤 목표를 이룸에 있어 내가 관여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금욕하고 나머지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벌어진 결과를 수요한다. 이것이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다.
쉬운 예를 들면 다이어트를 함에 있어 체질과 유전자 구성 같은 요인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식이요법, 운동, 생활습관 등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사항에 대해 집중한다. 그런다고 살이 빠질까??
그건 나에게 달린 일은 아니다. 나는 그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벌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좋지 못하더라도 겸허하게 수용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너무 어려운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더욱 많은 것을 통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신경에 혼란을 줘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해 강제로 다이어트를 하고, 수술을 통해 체질과 유전 요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살이 빠지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다음에 더욱더 강한 통제를 가한다.
특히 결과만을 강조하는 현상은 사회 곳곳에 퍼져있다. "어떻게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과(실적)만 좋으면 돼" 이 말은 어느 직장에서나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한다. 하지만 잘못된 과정에서 나온 결과는 아무리 좋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잘못된 행위의 정도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스토아학파에서는 주의한다.
결국 문제는 욕심이다. 돈에 대한 욕심, 성공에 대한 욕심. 이런 결과에 대한 욕심은 결국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 인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노력은 하기 싫고, 좋은 결과를 원한다면 결국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통제를 원하고 과정에 대한 순수함을 잃는다. 스토아학파에서는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삶에 고통을 피하고 기쁨을 경험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기쁨을 추구하느니 존경스러운 방식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편이 더 낫다.
나쁜 과정을 통한 성공은 다음 성공을 이루기 위해 더욱 나쁜 과정을 요구한다. 그럴수록 원하는 결과를 이뤘을 때의 행복이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목표를 달성해도 불행해진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