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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 - 대만에서 미국까지, 수관층 생태학자의 일곱 나무 이야기
란융샹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6년 6월
평점 :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나무에 오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요!"
나무에 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신이 나 원래 하려던 생화학자가 아닌 산림학으로 방향을 틀어 수관층 연구자의 길을 들어선 저자.
나무의 꼭대기층인 수관층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일곱가지 나무 이야기와 그 속에 깃든 생명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나무에 오른다니, 왠지 제가 좋아서 몇 번을 본 영화 <플립>의 여주인공이 생각납니다.
플라타너스 나무에 올라간 줄리는 평소 땅 위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탁 트인 세상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빛깔을 봤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거침없이 뛰어든 호기심 가득한 한 과학자의 이야기는 나무 꼭대기에서 황홀한 장관을 바라보던 영화 속 반짝이던 소녀의 눈빛을 떠올리게 합니다.
호기심 가득한 과학자인 저자의 뛰어난 필력과 컬러판으로 제공되는 풍성한 사진들이 이 책을 끝까지 여행하는데 지루할 틈이 없게 합니다.
땅에서는 보이지 않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으며, 나무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장면은 어떨까요?
나무 꼭대기에서 자라는 이끼류, 지의류, 벌레, 곤충, 도롱뇽에서부터 땅속의 균류, 숲의 천이, 숲 생태계의 순환을 책을 통해 배우며 자연과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무 꼭대기에 오르는 저자의 경험이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며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본래 생화학자가 되고자 했던 저자는 복수 전공으로 삼림학을 하고 있었는데 삼림학 현장 실습에서 수목 등반을 한 이후 수관층 연구의 길을 들어섭니다. 나무에 오르는 일은 육체적으로 고되고 위험한 일이지만 저자에게는 나무 위에서 느끼는 순수한 기쁨이 더 컸습니다.
나무에 오르는 일은 손발로 숲 전체의 생명력을 느끼는 순간이자 나무와 대화하는 시간이라 말합니다. 나무 위에서 갖는 5분동안의 쉼, 그 잠깐 동안의 기억으로 충만해집니다.
대만편백나무 위에서 만나는 두툼한 이끼 카펫과 이끼 위로 자라는 착생식물들이 '작은 공중 정원'을 일구고 그 안에 깃든 무수히 많은 생물과 미생물의 생태계를 보여줍니다.
이끼류와 지의류에 관심 많은 저로서는 나무 위를 뒤덮은 이들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는 저자에게 공감이 갔습니다. 이끼와 지의류의 형태와 생식구조, 번식,생활사 등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치란산의 대만편백나무와 대만가문비나무는 사진으로 보아도 위용이 느껴졌습니다.
대만 나무에 호기심이 생겨서 대만으로 나무 보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일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여행지의 서먹함과 막연한 두려움을 '맥도날드'를 찾아 해소한다고 들었는데, 저자는 뉴욕 도시 한복판에서 느낀 막막함을 뉴욕식물원에서 만난 가문비나무들을 보고 마음의 닻을 내렸다고 합니다. 저자는 가문비나무 덕후가 되어 여행을 할 때마다 다양한 가문비나무를 찾아보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고 합니다.
꼭 가문비나무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식물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의 삶에는 자신과 세계의 낯선 구석을 연결해 줄 지극히 친밀한 존재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곤 한다.
저자는 나무에 오르는 일을 오래 하면서 나무들이 견뎌온 고난과 그 굽이굽이마다 찾아온 기적 같은 행운을 깨닫습니다. 이끼, 지의류, 균류 등의 아름다움과 숲 전체가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걸 알아갑니다.
처음엔 우뚝 솟은 나무 끝을 바라보았지만, 박사과정과 박사후 과정을 거치면서 고개를 숙여 발밑의 땅을, 숲 바닥의 생태를, 숲의 순환을 이해하고 설명합니다.
미국 국립공원에서 자이언트세콰이아를 합법적으로 오를 수 있는 저자, 그녀는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자이언트세콰이아를 올랐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잦은 산불에 시달리는 나무들은 산불에 맞서 적응하기 위해 분투합니다. 저자는 수천 년의 시간을 지나온 자이언트세콰이아에 올라 매 순간 치열하게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맞선 나무의 시간을 떠올립니다.
높디높은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는 숲과 계곡의 풍경이 얼마나 근사한지, 나무와 숲이 만들어낸 세계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글과 사진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는 현실적 여건과 여러 제약으로 연구주제를 바꿔가며 시간을 보내다 결국 자신이 원하던 나무에 오를 기회를 다시 얻습니다. 현장을 누비며, 다양한 학자 및 기관과 협력하고, 새로운 연구 분야로 지평을 넓히는 과정으로 보냈던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자신의 삶의 궤적이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며 자라는 한 그루의 나무와 닮았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어떤 나무 꼭대기에 오르든 과거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저자의 웃는 사진을 끝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는 저자의 여정에 저도 독서로 함께 했고, 그 시간이 있어 저도 예전보다는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나무 꼭대기 풍경을 그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종종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나무 꼭대기 가까이에 웅크리고 앉아 수백 년 동안 살아 숨 쉰 나무의 목덜미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럴 때면 마치 시간을 끌어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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