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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가장 느린 것들이 가장 오래 빛난다
이유리 지음 / 청림출판 / 2026년 7월
평점 :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식물세밀화가, 환경전문기자, 나무의사, 시인, 정원사 등의 저자들이 쓴 식물 관련 책을 두루 읽은 편입니다. 식물관련 과학책이나 에세이를 읽다 보니 식물이 조용한 존재로만 보이지 않고,. 알수록 경이로운 식물의 세계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식물만 연구하는 식물세포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입니다.
식물을 통해 삶의 지혜를 나누는 에세이를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과학적인 식물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읽지 못한 새로운 것들로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꽃을 피워낸 식물처럼 늦은 나이에 독학사를 시작으로 서울대 교수가 되기까지 조용히 분투한 저자의 삶이 담담하게 담겨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학부 때 과제였던 식물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면서, 지금도 '식물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가? 라는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1,000년이 지나 발아하는 씨앗을 보면, 식물에게 생명은 '활성'이 아니라 '가능성'일지도 모릅니다. 식물의 삶과 죽음은 뚜렷한 이분법이 아니라 느리게 흘러가는 연속선 위에 놓여 있는 것일지도요.
책을 읽으면서 식물은 동물과 다르지만 전체 자연을 보면서 생명에 대해, 성별에 대해 제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으나 성장하면서 움직이는 식물을 이야기해 줍니다.
해바라기는 하루 동안 해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 밤사이 다시 동쪽 방향으로 바꿔 다음 날 아침 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수직의 버팀뿌리를 계속해서 생성하여 자라는 '걷는 야자', 편모를 지닌 정자, 즉 '정충'이 존재한다는 은행나무와 소철, 편모를 가진 운동성 정자로 번식한다는 선태식물과 양치식물 등 몰랐던 식물 이야기들이 신기했습니다.
식물에게 음악 대신 벌의 날개 소리를 들려주면 꿀의 당도 상승 및 양의 증가로 이어지고, 애벌레가 잎을 씹는 소리를 들려주면 식물은 방어 물질을 생산합니다.
식물이 소리에 반응을 하고, 스스로 소리를 내기도 한다는 연구가 쌓이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대학에서 벼꽃을 처음 보고, 꽃이 아름다울 거라는 편견을 깼다고 합니다.
열매는 익숙한데 꽃이 익숙하지 않은 은행나무 꽃, 땅속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 지상에서 파란 꽃을 피우고 땅속에서도 암술과 수술만 있는 꽃을 피운다는 고깔닭의장풀(2010년 제주에서 처음 발견) 등 식물의 꽃은 땅 위에서 피고 아름다울 거라는 제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조용해 보이는 식물의 삶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열한 우리의 생과 닮아 있고, 그 닮아 있음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요란하지 않게 진솔하게 풀어낸 저자의 삶은 문장에 깊이를 더해 읽는 사람에게 감동으로 전달될 것입니다.
독학사로 시작한 저자가 겪었을 세상의 편견. 포스텍 대학원 진학 이후에 힘들었던 스위스 유학과 귀국 후 또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위해 기다려야 했던 불안한 시간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내지 않고 식물의 이야기를 하며 다문다문 풀어냅니다.
뭉근하게 다가오던 저자의 삶이 <소나기를 견디는 법>을 읽으면서는 저릿하게 다가왔습니다.
포항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시기, 스물일곱 살 동생에게 내려진 뇌종양 진단. 저자는 일요일마다 서울에서 병간호를 하고 슬픔을 견디며 학업을 이어가지만 동생은 1년의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또 유산이라는 상실을 겪습니다.
저자는 폭우가 내리던 시절, 멈출 수 없었던 그 시기를 회환으로 떠올리며, "때로는 멈추는 일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라고 식물에게서 건져올린 지혜를 전합니다.
조용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열하게 사는 식물처럼 저자의 삶도 전하는 방식도 어쩐지 식물과 닮아 보여, 저자가 건네는 이야기에 더 진한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우리를 둘러싼 식물의 세계가 얼마나 다채롭고 역동적이며 하루하루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새롭게 보입니다.
<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야겠습니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한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닮아 있음은 긴 시간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내가 맞닥뜨린 막막한 고민이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 저 창밖의 나무들도 함께 앓고 있는 삶의 무게라는 사실만으로도 가만히 힘이 차올랐다.
식물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다양한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숲에는 다양한 소리가 존재한다. 바람 소리, 빗소리, 새소리, 곤충의 날갯짓 소리, 동물의 울음소리....이 음향 정보는 식물에 무의미하지 않다. 정적인 존재로 보이던 식물은 사실 그 음향의 일부를 감지하며 주변 환경을 ‘듣고‘ 적응한다.
꽃을 꽃으로 봐주지 못하듯, 사람을 사람으로 봐주지 못하는 시선. 그 시선으로 평가를 받고, 그 잣대에 맞춰 스스로를 접어 내리는 삶. 어쩌면 우리는, 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존재 가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꽃도, 사람도, 있는 그대로 봐주어야 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만의 그늘도 생길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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