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읽는 그림 - 수천 년 세계사를 담은 기록의 그림들
김선지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은 있지만 빽빽한 글자만 담긴 역사책은 재미가 없을 거 같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으로 역사를 풀어준다면?

그림으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미술책,

'시간을 읽는 그림(김선지, 블랙피쉬)'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었던,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 전체의 시대적 흐름과 함께 각 장에서 당대의 흥미로운 역사를 미시적으로 관찰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을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저자가 풀어내는 역사 이야기들은 아프리카, 남미 등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던 문명의 세계사, 우리가 몰랐던 흥미로운 사건들, 드러나지 않은 이면(어둠)의 역사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독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골라 담아 생생하게 풀어냅니다.

첫 장에는 성경 속 바벨탑으로 알려진 고대 바빌론의 지구라트&공중정원이 나옵니다. 유대인과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는 할리우드 영화 등 기독교 문화권인 서구 영화 등으로 심어진 이집트에 대한 고착된 이미지를 깨고, 삶의 기쁨과 재미를 만끽하는 이집트인들의 밝은 모습을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전사,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 헬레니즘 문화, 고대 로마 등 그 시대 사람들의 먹거리, 화폐, 교육, 문화, 전투 등을 일상과 삶을 그림과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중세로 넘어와서 유럽 전역을 강타한 흑사병의 창궐로 대규모 인구 감소가 이어지고, 성직자들도 병에 걸려 사망하고 도망가는 모습에 교회의 신뢰가 떨어져 결국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중세 서아프리카의 부유한 나라였던 말리 왕국, 황금의 나라 말리 제국에 대한 소문이 추후 유럽 제국주의 식민지 확장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벗어나 아프리카, 몽골, 아즈텍, 중국, 아일랜드 등의 역사를 다룬 부분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최초 문명부터 중세, 르네상스, 과학혁명, 제국주의, 현대 사회까지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면서도 당시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기존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 이야기를 뒤집는 반전의 순간들을 만납니다.

예를 들면, 중세 시대 농노는 억압받는 암울한 이미지로 고착되어 있었다면 책에 의하면 연중 최대 100일의 축일과 휴가, 주당 평균 27.7 노동 시간을 갖었다고 하니, 현대인들과 비교하면 노동 시간이 더 적고, 더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기존에 읽은 미술책들이 그림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 책은 역사의 흐름에 맞춰 그림이 설명을 돕는 자료로 활용됩니다.

거장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포스터, 삽화, 신문에 실린 풍자만화 등 다채로운 시각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예를 들면,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그림을 볼 때 빛을 어떻게 다루었나 하는 부분이 중요했는데, 이 책을 읽고 당시 해부학 극장, 수술 극장이 유행처럼 인기를 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취도 없이 진행되는 수술 극장은 오락 이벤트였고 플룻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의사는 배우처럼 쇼맨십을 보이고 환자가 고통 받는 장면을 입장권을 구입해서 관람했다고 하니,,인간의 잔혹한 호기심에 씁쓸한 여운이 남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보이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어둡고 추악한 모습을 함께 보여줍니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몽골의 칭기즈칸 위대한 왕이 아니라 잔혹한 정복자일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에 가려진 수만명이 희생된 거대 폭력과 희생을 다루고, 서부 개척사에서 말살된 생태계(버팔로 멸종)와 원주민의 고통을 함께 담았습니다.

대영제국을 이끈 엘리자베스 1세는 <바다의 개들>이라고 불리는 해적단을 공식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영국과 관련된 아편 전쟁, 아일랜드의 대기근 등 세계사를 살펴보면서 탐욕스럽고 잔인한 영국 역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림이 담고 있는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알게 되면 그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친숙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들(예: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년>이ㅡ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1871)의 파리 봉쇄로 생존을 위해 개, 고양이, 쥐고기를 먹었던 시기이후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ㅡ번영했던 시기인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는 의미) 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색채가 아름다웠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파리 봉쇄의 대기근 이후의 행복하고 자유로웠던 낭만의 시절이었습니다. 드가의 그림을 통해 하류층의 어두운 면모도 볼 수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나 역할을 다룬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스 도시들 가운데 여성에게 공교육을 유일하게 행한 도시인 스파르타, 남녀 불문 전 국민에게 사실상 의무교육을 시행한 아즈텍 제국, 남녀 성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고 여성을 존중했던 몽골에 반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한 국가의 통치자였지만 9명의 어머니이자 아내라는 이상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요구받았습니다.

미국의 신흥 부유층 딸과 유럽 귀족의 결혼을 다룬 '달러 공주'와 이후 페미니즘 물결로 이어지는 역사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대륙 발견, 제국주의 세력 확장, 미국의 서부 개척 등이 개척, 모험, 야성의 자랑스런 역사가 아니라 학살, 파괴, 유린의 부끄러운 인간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의 명암을 함께 바라보려는 저자의 시선이 반가웠고 공감이 갔습니다.

익숙하게 보았던 기록화는 당대에 그려진 것도 있고 후대에 그려진 것들도 있습니다.

기록을 담은 그림이 사실과 다른 왜곡된 역사를 담은 경우도 있어 그림을 볼 때 맹목적인 수용이 아니라 역사를 "제대로"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분,

그림에 관심 있는 분,

역사와 그림 모두 관심 있는 분,

이 모든 분들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술은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을 통해 미래를 향한 성찰과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