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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10년 전 물놀이 사고로 죽은 사랑하는 애나와의 기억에서부터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기억, 그와 관계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합니다. 이야기 전개 방식은 그의 기억이었다가 아내 애나의 글이었다가 관계된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등 전개 방식이 독창적이었습니다.
일상과 회상을 오가고, 관점과 시점을 달리하며 쌓아 올린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줄기로 모아집니다. 마치 나무의 잎과, 가지, 줄기가 모여 하나의 나무가 되듯, 나무, 꽃, 여러 식물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정원을 이루 듯 작은 이야기들이 각자 스토리의 힘을 갖고 모아지면서 전체 소설의 일부가 되어줍니다.
이 소설이 제게 특별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표현의 '은유적 적합성'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스토리가 쌓아올린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깊은 여운이었습니다.
표현의 '은유적 적합성'은 탁월하다 싶습니다.
플로렌스 씨의 잘린 손가락 두 개의 사건을 시작으로 영혼의 소울 메이트인 아내 애나를 잃은 고통을 '환지통'으로 비유합니다. 신체적으로 절단된 다리나 팔을 잃어버린 거의 모든 사람이 사라진 팔다리가 여전히 몸에 붙어 있다고 오랫동안 느끼며, 심한 통증과 고통의 감각을 느낍니다. 바움가트너는 죽은 아내를 잃어버린 자신을 반쪽만 남은 사람, 인간 그루터기라고 말합니다.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부모나,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배우자를 애도하는 남은 사람, 한때 살아 있는 사람과 붙어 있었기 때문에 상실의 고통을 몸의 언어로 번역하는 '환지통'
그 비유적 적합성은 너무 적절해서 바움가트너의 상실의 고통을, 우리가 겪는 이별의 고통을 느꼈을 때를 떠올리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바움가트너는 '운전대의 신비' 라는 책을 집필하는 대목을 빌려 인간이 스스로 움직이는 생물, 사람으로서의 자동차, 차로서의 사람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인간 삶이란 외로움과 잠재적 죽음이라는 고속 도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통제 불가능한 차'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깊은 여운을 주었던 마지막 장면은 폴 오스터가 왜 위대한 작가인지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었습니다.
작품 말미에 죽은 애나를 닮은 대학원생 베브가 등장합니다. 애나의 작품 연구를 위해 그의 집으로 오기로 한 베브는 약 아홉 시간 반 거리인 990킬로미터를-그것도 겨울 날씨에 혼자-운전해서 온다고 합니다. 베브의 '정신이 작동하는 과정'을 보고 그녀를 좋아하게 된 그로서는 말리고 싶은 상황이지만 고집스레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베브의 성격은 애나의 성격과 닮았습니다. 죽기 직전 물로 달려가려는 애나를 만류했지만 막지 못했을 때처럼 바움가트너는 베브를 막지 못합니다. 걱정으로 공황 상태가 된 바움가트너, 그는 어떻게 될까요?
소설의 이야기 중간중간, 애나 이후 두 번째 연인이었던 주디스의 말에서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 장면에서 제게는 폴 오스터의 생각이라고 읽히는 메시지를 읽었습니다.ㅡ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은 없는 것과 같다. 우리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베브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바움가트너의 마지막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적 연약함, 의미있는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고통을
그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의 자동차, 그의 운전대에서 벌어진 일은
그가 사람으로서의 자동차를
은유한 것을 떠올리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숙고하게 됩니다.
상징적인 장면으로 오래 기억에 머물 것같습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얼기설기 흩어진 것 같은 이야기가 치밀하게 직조한 비유와 상징, 스토리로 구성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껍지 않은 책이었지만 책을 읽고 난 후,
깊은 여운이 오래 머문 소설이었습니다.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대로이고, 아직 아프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두 가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생각들을 가져와 하나의 억지스럽고 명백히 우스꽝스러운 관념으로 뭉뚱그리며 바움가트너는 자신의 책을 앞으로 밀고 나갈 은유적 엔진을 발견했다. 사람으로서의 차, 차로서의 사람.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이것은 바움가트너에게 인간의 역사에서 벌써 몇 번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고 어떤 사람도, 심지어 가장 고립된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일뿐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도 마찬가지인데, 만일 프라이데이가 나타나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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