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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작은땅의야수들 #김주혜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런 소설들을 읽을때마다 느끼는건, 역시 기대했던 바에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전히 확실히 내취향이란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 이런 역사 기반의 소설은 ‘이야기가 주는 힘’이 느껴져서 좋다. 아니 사랑한다는 말이 더 맞겠다. 이런 이야기들은 묘약같은 흡입력이 있어 한번 펼치면 다 읽을때까지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일제치하의 소시민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인, 한국인, 남자들, 여자들 정말 그 시대를 살았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세기에 걸쳐 그려진다. 가장 중심시선은 옥희라는 기생이 된 소녀이다. 옥희에서 가지처럼 뻗어나간 캐릭터들이 각자의 삶에서 꿈틀대며 그 모진시대를 벼텨나간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순정을 가진 모든 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언제나 뻔뻔하고 이기적인 사람들. 이런 고구마같은 안타까움이 이야기의 전반에 있지만 이 시대를 지나온 정직한 사람들, 순애보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말로는 늘 이랬을 것이리라.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더했겠지.) 애정하는 주인공들의 아픔을 지나며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이야기가 뿜어내는 애절한 잔상이 더욱 깊어지겠지.
이야기의 말로는 그렇다. 소중했던 사람들은 죽거나 떠나거나. 그리고 한마음으로 이뤄낸 대한독립의 꿈은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다시 갈갈이 찢어지고 순정을 가졌던 몇몇 주인공들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주인공 옥희는 서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제주로 떠난다. 그곳에서 또다른 희망을 찾는다. 삶은 견딜만한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비록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미국으로 떠난 재미교포인 작가는 어쩜 한국에서 평생을 산 나보다도 더 역사에 능통하고 한국적인 감정선을 이리도 애절하게 처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그녀의 모국에 대한 사랑, 내 나라 것에 대한 사랑이 아주 깊게 와닿아서 겸허해 졌다. 그리고 뛰어난 글, 뛰어난 작을 통해 한국사를 세상에 알려주어서 고마웠다. 데뷔작이란게 믿기지 않을 정도. 섬세하고 꼼꼼한 등장인물간 감정선 표현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때 느꼈던 다채로움이 느껴지기 까지 했다. 원작 주인공들의 이름이 영단어로 묘사 된 것을 한국어로 옮겨오며 번역가가 한국어 이름을 다 직접 지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인물들과 넘나 찰떡인 것도 인상깊었다.
600여쪽에 달하는 페이지를 앉은자리에서 씻지도 않고 내일 새벽에 출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벽까지 읽었다. 내일 좀 피곤할테지만 그럼에도 너무 행복했다. 18000원이란 가격에 이토록 긴 페이지를 ,작가가 그려낸 긴 서사속 이야기를 그저 눈으로 좇는 것만으로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책은 정말 위대하다. 모든 창작자들에 감사하다.
한뿌리 책이라고 해야할까, 최은영 작가의 밝은밤이나 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 생각이 많이 났다. 다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소설들. 이 책들을 좋아했다면 작은땅의 야수들도 꼭 읽어보시길.
[P250정호-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는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P387성수-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성공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다는 사람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을 합리화하고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P485정호-그는 매일 이곳을 찾아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하늘의 빛깔, 새들의 울음소리, 파도위 부서지는 태양도 하루하루 조금씩 달랐다. 세상이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은 뼈저리는 아름다움을 안겨주었고, 그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거라 생각했다.]
[P535옥희-어쩌면 사람은, 그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P564한철-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세상에 딱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 운좋게도 이 두가지를 다 경험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충분한 믿음을 지니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P603옥희-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