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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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호주에 있을 때 서점에 들른 적이 있다.
서점에 도배되다 시피 늘어선 ‘스티븐킹’의 다양한 소설들을 보고 영미권의 가장 영향력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2022년 거의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그의 글쓰기 활동과 샘솟는 창작력에 박수를 보낸다. 장르소설은 소재나 기발함 등 있어서 더욱 힘들텐데 말이다.

‘나중에’
작가가 누누이 말하지만 이것은 공포물이다. 그러나 어둡고 스산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엄마와 단 둘이 살고있는 꼬마 제이미는 어느날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며 본인이 죽은자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범상치 않은 능력때문에 원치않게 엮이게 되는 각종 사건들- 그리고 그것들을 해결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통해 소년은 커간다. 칠면조를 우스꽝스럽게 그리던 작은 꼬마에서 스물둘 청년이 되기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만나며 성장해가는 제이미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실제로 엄마라 그렇겠지만) 누구라도 엄마미소를 짓게 된다.
실제로 제이미란 캐릭터는 아빠없이 자라면서도 그늘하나 없이 늘 바르고 엄마를 배려하고 사랑하고 많은 일에 성숙하게 대하는 것이 그저 ‘바른아들상’의 워너비였다.

죽은자를 보는 능력때문에 원치않게 끔찍하게 죽은 시체들의 영혼을 묘사하는 장면이라던가, 마약이나 19금 이야기처럼 묵직한 이야기들이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에 등장하지만, 작가의 유머러스함을 그대로 등장인물에 주입시킨 대화형 문체라던가 혼자만의 생각을 세련되게 표현해 낸 문장을 읽고 있으면 이건 공포물이 아니라 아주 재밌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특히 제목인 ‘나중에’를 반복적으로 글에 드러내며 표현한 부분들은 기똥차다.

재미있고도 읽기 쉬운 이야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반전에 감동까지.
반전에 대한 이야기라면 티아가 말한 것처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비밀들- 그 중 과연 제이미의 아빠가 누구냐 하는 것이었고,
감동에 대한 이야기라면 무엇보다 제이미와 엄마의 사랑 그리고 그저 한낱 이웃에 불과한 버켓씨와 두 모자의 우정이었다.

이야기는 큰 사건 후 평화롭게 마무리 되지만 아직 끝나지않은 테리올트와의 관계가 꺼림찍한것이 2편이 나올것인지 기대하게 만든다. 책의 마무리도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나중에.’라고 끝맺음 한 것을 보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한뿌리작품을 생각해본다면 식스센스나 사랑과영혼 같은 영매를 통한 흥미진진하고 감동을 가진 영화들일터, 이 책도 현재 영화제작중이라니 심히 기대되는걸?

어느덧 여든을 향해가는 작가님의 나이가 무색하게 정말 세련되고 군더더기없이 재미있는 소설임에 말해 뭣할까. 스티븐 킹이라는 위대한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아 이런 기발하고 멋진 책들을 읽고 영화로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127- 한번 데이면 두번째는 겁이 나는 법이지. 우린 문제없어, 그게 중요해.

180-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를 입 다물게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최악이다.

188- 누군가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싶었다는 말은 앞에서 이미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실행에 옮기고 나서야 나는 그게 굉장히 위안이 되는 일임을 깨달았다.

230- 신념이란 뛰어넘기엔 너무 높은 장애물이다.

240- 작은 소년은 어느덧 자라서 키도 훨씬 커졌다. 나이를 먹고, 키도 크고, 어쩌면 더 현명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때 그 사람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변하면서도 변치 않는다. 뭐라 설명을 할 순 없다. 미스터리다.

245- 누구나 비밀이 있는 법이야, 제이미. 너도 때가 되면 깨닫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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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트리스의 예언 비룡소 걸작선 63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소피 블랙올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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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으로 유명힌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신작.

아동청소년 문학이라고는 하지만,
어린 시절에 읽어서는 절대 느끼지 못할 것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태어나서 거의 제일 처음 본 소설인 어린왕자나 갈매기의 꿈 같은 것들이 아마 거기에 속할 것이다.
이 책 역시 아름다운 삽화와 곁들여진 신비스럽고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으로만 보자면 쉽고 재미있게 읽혀지겠지만, 속에 숨겨져있는 의미를 파악하기엔 어린 친구들에게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보다 더 뛰어날 어린 친구들을 내가 얕보는건가‘◡’;;)
나의 경우라고 하자 그러면.
나였으면 절대 청소년기에는 숨겨진 아름다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스토리 라인만 따라갔을 것이다.

가장 나약하고, 어쩌면 별볼일 없어 보이는 캐릭터들이 강력한 믿음과 사랑의 연대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이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자와 로봇과 허수아비와 소녀가 모험을 떠나 마녀를 물리치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이야기처럼- 작고 나약해 보이는 것은 절대 약한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강한 연대로 이어지면 모든 것이되고 희망이 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권선징악의 교훈적 결말 속 더 큰 사랑의 가치를 느끼며 읽어간다면 책을 읽는 동안 신비로움과 따뜻한 온기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이 한창이다. 이란 경기 시작 전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침묵으로 일관한 선수들과 응원석의 국민들의 눈물을 보았다. 침묵과 눈물이 보여주는 많은 메세지들. 머나먼 타국의 이야기지만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나도 모르게 남의 나라를 응원하게 되었다.

저자가 마지막까지 외치는 ‘사랑과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세지처럼 많은 사람들을 통해 이어지는 사랑의 힘과 이야기를 통해 내일의 삶은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좀 더 희망적이길 소망해본다.

187-다른 이들이 누군가를 알아보고 사랑해 주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지 생각해 보았어.

188-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건 모든 것이었어.
우리는 모두 마침내, 우리가 속한 곳으로 가게 될거야. 우리는 모두 마침내,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거야.

193-용감하다는 것은 도망가지 않는 거야. 용감하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용감하다는 것을 사랑하는 거야.

247- 세상을 바꾸는 건 무엇인가? “사랑”
사랑, 그리고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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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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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땅의야수들 #김주혜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런 소설들을 읽을때마다 느끼는건, 역시 기대했던 바에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전히 확실히 내취향이란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 이런 역사 기반의 소설은 ‘이야기가 주는 힘’이 느껴져서 좋다. 아니 사랑한다는 말이 더 맞겠다. 이런 이야기들은 묘약같은 흡입력이 있어 한번 펼치면 다 읽을때까지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일제치하의 소시민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인, 한국인, 남자들, 여자들 정말 그 시대를 살았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세기에 걸쳐 그려진다. 가장 중심시선은 옥희라는 기생이 된 소녀이다. 옥희에서 가지처럼 뻗어나간 캐릭터들이 각자의 삶에서 꿈틀대며 그 모진시대를 벼텨나간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순정을 가진 모든 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언제나 뻔뻔하고 이기적인 사람들. 이런 고구마같은 안타까움이 이야기의 전반에 있지만 이 시대를 지나온 정직한 사람들, 순애보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말로는 늘 이랬을 것이리라.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더했겠지.) 애정하는 주인공들의 아픔을 지나며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이야기가 뿜어내는 애절한 잔상이 더욱 깊어지겠지.
이야기의 말로는 그렇다. 소중했던 사람들은 죽거나 떠나거나. 그리고 한마음으로 이뤄낸 대한독립의 꿈은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다시 갈갈이 찢어지고 순정을 가졌던 몇몇 주인공들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주인공 옥희는 서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제주로 떠난다. 그곳에서 또다른 희망을 찾는다. 삶은 견딜만한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비록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미국으로 떠난 재미교포인 작가는 어쩜 한국에서 평생을 산 나보다도 더 역사에 능통하고 한국적인 감정선을 이리도 애절하게 처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그녀의 모국에 대한 사랑, 내 나라 것에 대한 사랑이 아주 깊게 와닿아서 겸허해 졌다. 그리고 뛰어난 글, 뛰어난 작을 통해 한국사를 세상에 알려주어서 고마웠다. 데뷔작이란게 믿기지 않을 정도. 섬세하고 꼼꼼한 등장인물간 감정선 표현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때 느꼈던 다채로움이 느껴지기 까지 했다. 원작 주인공들의 이름이 영단어로 묘사 된 것을 한국어로 옮겨오며 번역가가 한국어 이름을 다 직접 지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인물들과 넘나 찰떡인 것도 인상깊었다.

600여쪽에 달하는 페이지를 앉은자리에서 씻지도 않고 내일 새벽에 출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벽까지 읽었다. 내일 좀 피곤할테지만 그럼에도 너무 행복했다. 18000원이란 가격에 이토록 긴 페이지를 ,작가가 그려낸 긴 서사속 이야기를 그저 눈으로 좇는 것만으로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책은 정말 위대하다. 모든 창작자들에 감사하다.

한뿌리 책이라고 해야할까, 최은영 작가의 밝은밤이나 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 생각이 많이 났다. 다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소설들. 이 책들을 좋아했다면 작은땅의 야수들도 꼭 읽어보시길.

[P250정호-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는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P387성수-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성공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다는 사람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을 합리화하고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P485정호-그는 매일 이곳을 찾아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하늘의 빛깔, 새들의 울음소리, 파도위 부서지는 태양도 하루하루 조금씩 달랐다. 세상이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은 뼈저리는 아름다움을 안겨주었고, 그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거라 생각했다.]

[P535옥희-어쩌면 사람은, 그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P564한철-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세상에 딱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 운좋게도 이 두가지를 다 경험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충분한 믿음을 지니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P603옥희-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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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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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책 두권을 선물받았다.
을유사의 가치있는삶 그리고 어크로스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두 책의 공통점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삶의 이치를, 그렇지만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쉽게’ 되짚어 준다는 것이다. 세상에 좋은 책과 글들은 정말 많지만 좋은 글이나 책들 중엔 읽히지 않는 것들이 많기도 하고, 특히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 책은 찾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두 책 다 너무 좋았다.

인생 이쯤 살다보니,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이 길에서 이탈하기가 쉽지않기에 과연 잘 살아내고 있는 건지 고민하는 날도, 힘들어서 울고 싶은 날도 종종 있다. 그런 때는 나만 이렇게 힘든건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세상의 짐은 혼자 짊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다 본디 삶이란 것 자체가 힘든거겠지 하고 훌훌 털어내기도 하지만 유쾌하지 않는 청색시대를 겪게 되는 것 자체가 버겁다.

책은 인간의 그런 고통스런 측면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안아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반성하게 한다. 모든 행동의 근본적인 이유와 합당함을 인정해 주면서도 너무 그러하지 않도록 달래주고 토닥여주는 내용들이 가득해서 그저 넋놓고 책의 깊이에, 그것이 주는 위안에 깊이깊이 빠져버렸다. 비유를 하자면 오은영박사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정신분석학을 전공했다는 저자 마리루티박사는 마치 프랑스의 오은영인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 내면에 쌓인 과거의 실수와 그로인한 앙금, 실패로 인한 실망감 같은 마리루터가 언급한 많은 요인에서 확실히 내스스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살면서 유난히 자기애가 강하거나 스스로에 관대한 사람들을 보며 난 그러지 못함에 부러웠는데, 이건 내가 자기애가 부족해서라기 보다 ‘반복강박’이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 지속적인 노력을 하는데 있기 때문이고 결코 거기에 도달할 수 없을 거라는거. 왜냐하면 살면서 모든게 완벽하다고 느끼거나 자아가 실현되었다고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란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여기에는 어떤 반복되는 강박의 징후, 악마적인 힘이 있기에 이 과정에서 좌절하고 시련을 겪지만 그로 인해 또 대처하는 능력을 얻고 강화된 기질을 갖게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 삶에 고통은 축복이자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소이며 진정 성공한 삶은 고통을 잘 아는 삶이라고.

책을 덮으며
안나카레리나에서 읽었던
“난 아무것도 입증하고 싶지않아요.
그저 살고 싶을 뿐이예요.” 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잘 살아내야 함은 맞지만,
잘 살고 있나 채찍질보다는
내 불완전한 모습을 내 모든 원천으로 생각하며
파도에 몸을 맡기듯 자연스럽게 살아가야지.
나의 모든 순간, 심지어 헛되이 날렸다고 생각하는 하루 조차 그 과정에서 잃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만한 낙천가가 될수 있길.

살아가는 일에 대해 고민이 들거나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 이 책을 나침반 삼아 방향을 다잡아 나갈 수 있기를.

너무나 소중한 책.
모든 구절 다 소중해서 맘속에 꾹꾹.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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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120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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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하)권.
상권이 구전 설화같은 느낌의 신화적이며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였다면, 하권은 좀 더 철학적이고 종교적이었다. 탈무트 처럼 교훈적인 내용이 많고 현인들의 격언 인용이 많아(특히 솔로몬 왕) 언더라인을 책이 거메지도록 그어대며 읽었다.
하권의 이야기 역시 상권에서처럼 캔터베리를 향해 순례길을 이어나가며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교훈적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상권에서부터 느낀 점이지만 초서는 각 인물의 업을 통해서 그 인물의 기질이나 행동성향, 이야기의 질적수준(영화관에서 전체 관람가, 15세이상, 19세등 등급을 매기듯)나아가 이야기의 본질적인 방향까지도 생각한 듯 하다. 과거에 흔히 그랬듯 직업의 귀천이 정해져 있고 고귀한 직업일 수록 고귀한 이야기를 미천할 수록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그리고 사기를 일컫는 업은 또 그에 마땅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나도 모르는 새 화자의 업을 통해 이야기의 방향성까지 짐작하게 되었다.

하편의 많은 이야기 중 캔터베리순례자 이야기의 화자로 보이는 ‘토파스경의 이야기- 멜리비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멜리비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멜리비의 부인인 프루던스의 이야기다. 멜리비라는 인물은 적들로부터 사랑하는 딸이 공격을 당하자 전쟁을 통해 복수를 할지 말지 결정을 하기 위해 많은 참모꾼들의 조언을 듣게된다. 그러던 중 아내인 프루던스의 장작 28페이지에 달하는 현명한 조언을 받아들여 결국 적들을 용서하게 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인데 프루던스의 주언이 얼마나 구구절절 주옥같은지! 물론 그 내용들은 대부분 현명한 현인들의 인용이지만 대화형식으로 적시적소에 인용하며 남편을 설득하는 과정과 방식이 아주 훌륭하여 프로던스의 대사는 정말 다 줄을 긋고 본 것 같다. 또한 이 이야기가 초서 스스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했기에 수많은 순례자 중 ‘제가’로 지칭되는 주인공 화자를 통해 이야기 되도록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가’인 토파스 경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야기 경합 제안을 했던 숙소 주인 역시 감탄하며 내 마누라가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이라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초서가 프루던스의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애착을 가졌고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하권은 상권에 비해 분량은 짧지만 앞서 얘기했듯 상권보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 물흐르듯 읽기보다는 군데군데 복기하며 읽어야 했다. 특히 마지막 교구주임 신부의 이야기는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마음으로 참회의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읽는 것 만으로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앞서 알고 있었듯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가 가장 훌륭했는지 경합의 판결을 내지 않고 갑자기 철회문으로 저자의 작별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고해성사와도 같은 회개와 용서의 분위기로 급하게 마무리된다. 이것이 책의 완성에 흠결을 내는 것은 전혀 아니다. 상권 하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릴레이는 지루할 틈 없이, 그리고 많은 교훈과 생각할 거리를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이야기들로 가득했고 늘 목말라 하는 주옥같은 구절들도 많았다. 다만 그냥 계속 읽고 싶은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사실에 아쉬웠을뿐. 책을 읽고나면 이 책은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책, 언제고 다시 열어보고 싶은 책이 극명하게 판가름 나는데 이 책은 후자중에서도 ‘언제고 다시 열어보고 교훈과 삶의 방향을 찾고 싶은 책’이다.
이야기의 설정은 캔터베리 순례길에 나선 순례자들의 이야기 경합이지만, 나에게는 내 인생의 순례길에서 방향성을 읽을 때마다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고픈 책이랄까.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고 싶은 꿈이 있다. 순례길에서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당연하게 같은 길을 걷게 되는 동반자들이 생긴다고 하던데 그 때 나에게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동지들이 생긴다면 캔터베리 이야기가 많이 생각날 것만 같다 ❣️

p109. 전쟁이 뭔지도 모르면서 전쟁을 외치는 사람이 많군요! 전쟁으로 들어가는 문은 넓지요. 하지만 그 결과가 어찌될지 알지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엄마에게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전쟁때문에 죽을 것이고 아니면 슬픔속에 살거나 비참하게 죽을것입니다.
👉🏻 러시아vs우크라이나 전쟁이 너무나 생각나 마음 아팠던 구절. 우리는(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말 뭔지도 모르며 전쟁을 이야기하고 전쟁을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p332.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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