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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염장이 - 대한민국 장례명장이 어루만진 삶의 끝과 시작
유재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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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원형적인 세계관에 따르면 죽음은 절망적인 의미의 끝이 아니다.

잘 사는 것보다 어쩌면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려는 배움을 통해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것이 지난 학기였고, 이 책 제목을 들여다보았을 때 염장이라 불리는 유재철님의 사명이 문득 궁금했다.

 

책을 덮은 후 한 사람의 인생길의 마지막 순간을 모셔다 드리는 그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돈벌이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매 순간 긴장을 곤두선 채 한 사람의 마지막을 대우하는 그의 자세에 대해,

염습부터 시작해 모든 절차 하나하나에 깊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며 살아가는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며 존경스러웠다.

그가 그동안 수많은 장례를 지내오면서 일을 그저 형식적인 업무로서가 아니라, 고인의 마지막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내드릴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던 흔적들이 잘 묻어나 있다.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를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앞에서 애쓰시는 분이다.

 

그의 경건한 의례 행위에 대한 글을 읽어나가며 사람의 삶과 죽음의 인생사는 당연히도 귀천 없이 존엄한 것임을 생각해본다. 그런데 그것을 자주 잊고 사는 듯하다.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죽음에 한 화두를 던진다.

죽음을 외면할수록 삶은 고독해진다고 한다.

죽음을 추방하려 했던 기존의 모든 관습과 반대 방향에서, 돌아가신 고인에게 절대 누가 되지 않도록 예우를 갖춰 묵묵히 모셔왔던 그의 이야기 속에서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져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인을 존중하는 마음. 그 마음에 대해서 곱씹어본다.

 

글을 읽으며 입관하시고 나서 마주했던 할머니의 눈감은 얼굴이 문득 생각났다. 누구든 자기만의 서사가 있기에 모든 죽음은 안타깝다.

우리는 거국적으로 애도를 하는 사회적인 죽음을 마주하기도 하고, 가족과 지인들의 죽음도 마주한다. 남겨진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알게 모르게 아주 깊이 새겨진다.

장례는 죽은 자를 대우하고 유족들과 그 마음을 나누기 위한 자리이다.

고인들을 떠나보내는 그 순간이 없다면 죽음은 더욱 허망하고 쓸쓸할 것 같다.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돕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래서 깊은 울림을 준다.

 

삶이 있다면 죽음도 있는 것인데 왜 타인의 죽음이든 나의 죽음이든 왜 죽음을 항상 멀리 있다고 생각해오는 건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가 집착하는 삶과 마지막 순간에 대하여 고민해보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굴곡 없는 인생이 있을까? 드라마가 아닌 인생이 있을까?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가며 긴 인생을 걸었을 그 발 앞에서 저절로 숙연해진다.

-본문

 

대통령 염장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자랑거리로 삼진 않는다. 다만 고인이 어떤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한 자를 편안하게 보내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듯하다.

-본문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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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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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을 읽다가 내 얕은 독서 근육으로 완독을 실패한 적이 있다. 이번에 에리히 프롬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사회심리학자의 저서를 엮어 만든 책이다. 죽은 삶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의 철학을 사유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은 공부하듯,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사회를 어떻게 스스로 사유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니체와 칼뱅, 프로이트, 마르크스, 칸트 등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들이 등장하는데,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나 의문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보다 책의 목차마다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들을 가볍게 나누면서 소화하고 싶다.

서문을 제외하고 총 9가지의 차례로 엮이어 있다. 그 중 핵심으로 꼽고 싶은 내용을 공유하려 한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저자는 사랑이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력을 향한 관심이라면 현대 사회는 생명 없는 것에 은근히 끌리고 있다고 말한다. ‘국제적 차원의 폭력, 패권 추구’, 개인이 느끼는 압박감과 불안. ‘자신의 강인함을 믿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심리 역시 자신의 생명력보다 수단의 힘을 키우려는 것에 해당한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착각한 채. 그리고 익명의 권위에 따라 남들과 다르기를 불안해하며 평등동일로 이해한다.

동등한 권리를 원한다면 타인과 같아야 해.(...)” p.58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진정한 인간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조적 인간이 되어 소비와 수용의 태도를 극복하는 것’.

우리는 공이 세 번만 굴러도 지루해한다. 공이 구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공이 구르는 걸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자기 나무나 꽃, 풍경을 보는 화가는 나무가 예쁘냐 아니냐에는 관심이 없다. 나무의 이름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훨씬 더 마음에 두는 것은 나무를 남김없이 직접 경험하는 것, 그 나무의 본질을 경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무를 보는 것이다. (...)’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면서 세계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질문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질환인 듯하다.

삶의 형태가 존재가 아니라 모조리 소유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창의적인 삶>

그는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내 안에서 생각한다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p.135)

내가 나의 포로가 되는 것을 나는 잘 모른다. 사회에서 경험하는 불안과 공포, 강박적인 동조 욕망으로 인해 느낀 것을 자기 감정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착시 현상은 뒤이어 나오는 무력감에 관한 내용과 연결되기도 한다.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나에게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 이념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매일 분주하지만 사실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외에도 최대 소비 시스템을 최적 소비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끊임없이 불안한 사회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생각되어 동의 되었다.

 

끝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예감하고 감지하며 안다라는 문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는 것 또한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성이 사랑과 태동하는 생명력에 기원했다는 믿음으로부터, 스스로를 속이고 착취하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존엄을 지키는 내면의 강인함을 키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저항하기 위해 꼭 살면서 한 번씩이라도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맴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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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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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이 건초창고 안에 떠다니는 저 먼지 같은 거야.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한 번 나면 한 번 죽어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들이지. 태양이 끈을 놓으면 인간이 이루어낸, 아니 지구가 이루어낸 모든 것이 사라져.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합쳐도 주정뱅이 노래 하나 막지 못하고 풀 한 포기 자라는 걸 막지 못하지. 우리 모두는 태양의 미세한 요동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외줄을 타는 지구의 광대들일 뿐이야.

...

죽음은 이미 삶 안에 존재하여 묵은 삶이 흘러가야 새로운 삶이 온다고들 한다. 삶이 죽음의 시작이라면 허무는 존재를 안아주는 슬픔이다. 슬픔이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막막한 연민이라면 연민은 시간이 흘린 낙엽이다. 낙엽이 지고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존재의 양식은 달라진다.

-본문 -

 

기억에 떠도는 문장들이다.

꼬리라는 글자가 세로로 적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공허하고 슬픈 감정이 솟았다.

다큐멘터리스트로 활동해오다 야생호랑이 보호 활동을 결심한 박용수 작가가 시베리아 호랑이 꼬리를 알게 된 특별한 경험을 글로 섬세하게 풀어냈다.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그는 논픽션 자연문학이라는 분야로 이 작품을 출간했다. 요즘에는 OTT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생태계의 이야기가 어느 서사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 그가 만난 호랑이 꼬리의 삶도 우리의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부닥친 호랑이라는, 오로지 옛 이야기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존재가 마음을 공허하게 울렸다.

 

우선 작품의 자연 묘사가 참 생생하다.

작가가 잠복 생활을 하며 느낀 수많은 감정들과 자연의 계절감이 맞물려 떨어져 마치 내가 호랑이를 추적하고 있는 듯한 긴장감이 들었다.

광활하고 장엄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체가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될 때, 혹은 그러한 생명의 죽음을 목격할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꼬리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우두머리 경쟁자나 사냥감들, 그리고 인간과의 서사가 우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한한 존재는 언제나 그 자체로 슬프고 존엄하고 동등하다.

 

인상 깊었던 점 또 하나는 호랑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포식자도 자연에 속한 한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어쩌면 나도 꼬리의 그러한 모습에 이 작품이 끌렸던 것 같다. 완벽한 인물보다 결함이 있는 자에게 끌리게 되는 것처럼.

꼬리가 죽음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또한 굶주림에 치명적이고, 어리석어 보일지언정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서 이에 많이 흔들리기도 하며, 결국은 혼자 걸어간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과 호랑이의 마지막 순간은 어떠한 차이가 있을 것인가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꼬리와 다른 종족임에도 그를 그 자체로 존중하게 된 저자의 생생한 언어 하나하나가 울컥하게 한다. 꼬리의 눈빛을 본 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인간과 야생동물이라는 관계로 만나 서로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고, 모르는 척하면서 배려하지만 눈빛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먹먹했다.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은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

 

호랑이를 생포하는 과정 중에 마을 주민들과 사냥꾼의 갈등 장면에서는 현재의 문명은 과연 발달된 것인지 퇴화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이 생긴다. 자연물을 신으로 섬겼던 원시와 돈을 숭배하는, 그리고 숭배하게 만드는 이 자본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호랑이를 추적해온 한 사람과 고독하고 웅장한 왕대호랑이의 만남은 나에게 죽음과 자연 앞에 미미한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꼬리의 마지막 순간은 슬픔의 감정은 삶의 존엄함을 지탱하는 중요한 감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오늘도 숲은 무르익은 신비로 가득하다. 여울에 밀려나 쌓인 모래톱 위의 앙증맞은 발자국 하나에도 가슴이 설레고, 지저귀는 새소리 하나에도 무슨 의미일까 호기심이 자란다. 다 이해할 수도,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광활한 미지의 세계가 없었다면 나는 먼지 같은 존재의 미소 (微少)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본문 -

 

 

독자 한 줄 평:

고독한 호랑이의 모습에서 고독한 인간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임존중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꼬리,박수용,김영사,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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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 - 정민 교수의 세설신어 400선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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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한 줄 평:

성찰의 힘이 필요한 시대, 옛이야기와 성어 한 줌으로 나와 세상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중국 고전 시가 강의를 대학 수업에서 들었던 적 있다. 소식과 두보의 시를 배우며 한자 외우는 것을 싫증내면서도 몇 자 안 되는 문장에 담긴 깊은 표현의 맛에 푹 매료되기도 했다. 그때 비로소 한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깨졌는데, 이 책을 펼쳐 보며 고사와 성어는 사실 기본적으로 재밌는 학문이 아닐까, 비전공자의 얕은 시각이겠지만 그런 생각도 대담히 해보았다.

 

이 책은 소설처럼 정신없이 읽어 내리기보다는 천천히 곱씹기가 더 어울린다.

<점검>이라는 제목대로, 성어의 뜻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성어에 얽힌 고사를 통해 현재와 스스로에 대해서 차분히 돌아보기 좋은 작품이다.

 

우선, 가나다순으로 400개의 성어가 배열되어 있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두 번째로는 내가 아는 성어가 그중에 열 개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는데 책을 읽는 데에는 지장이 전혀 없었다.

목차에 이미 간략한 성어에 대한 설명이 드러나 있어서 나는 목차를 먼저 보고 끌리는 성어를 먼저 골라 읽다가 나머지 성어들도 자연스럽게 다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을 뽑기 전에, ‘세상글쓰기라는 두 갈래의 테마로 나누어보았는데, 시쳇말로 뼈 맞는이야기도 있었고, 한문학의 멋이 드러나는 서정적인 표현도 엿볼 수 있었다.

본문 중

세상에 공정한 말이 없다. 비난하고 기리는 것, 거짓과 진실이 모두 뒤집혀 잘못되었다. (...) 개중에는 주견 없이 남의 말만 믿는 자가 있고, 선입견을 고수해서 다시 살펴볼 생각을 않는 경우도 있다. 서로 전하고 번갈아 호응해서 잘못을 답습하고 오류를 더한다. <정상한화>

(...)“그 정도는 봐줘야지, 뭐 별일이 있겠어?”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때가 이미 늦었다. 특히 이 대목에서는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가 떠올라 인상 깊었다.

견양의 이름난 고기라고 아무 의심 없이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허망한 권위에 속아 주체적인 판단 없이 그저 공고한 권력을 재생산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온 성어들을 무조건적인 진리, 정답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주입하게 되면 사유의 폭이 좁아진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의 도구로 삼자는 소리이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3-400년 전부터 이야기되었던 정도를 찾는 것은 오히려 지금에서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옛글이 고지식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것으로 치부되는 요즘 세상이다. 그러나 듣기 편안한 소리보다 불편한, ‘뼈맞는진실에 때로는 부끄러워지고 세상과 나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생기기도 한다. 옛이야기에서 묻고 스스로 성찰하기. 그러한 독서 방식을 이 작품에 적용하기 좋은 것 같다.

점점 더 스마트해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스마트한 기술만을 어떠한 이해도 없이 수용하려는 것이 아닌지,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한 줌의 소망과 세상에 대한 바람이 때로는 전혀 소박하지 않은, 불가능한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사어가 되지 않도록 더욱이 소환해야 한다.

 

물론 이 책을 재미로 읽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성어에 대한 뜻풀이만 줄줄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어가 나온 유래나 관련 고사도 두 페이지 내외로 설명되어 있어서 읽는데 부담이 없고 뜻의 맥락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서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

흔히 한문학의 흥취라고 하는 것도 무엇인지 짐작될 듯하다. 나의 가장 최애대목을 뽑으며 감상평을 마무리해본다.

 

-본문 중-

퇴계선생이 주자의 편지를 간추려 <회암서절요>란 책을 엮었다. 책에 실린, 주자가 여백공에게 답장한 편지는 서두가 이랬다.

수일 이래로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매번 들을 때 마다 그대의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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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태석 - 톤즈에서 빛으로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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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묵직해진다. 이태석 신부가 말하는 사랑에 대하여.

 

부산에서 10남매의 아홉째로 태어난 이태석은 의대에 합격하고 레지던트 시험을 포기한다.

그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있다는 말에 100km를 넘어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하루에 진료를 매일 오전에만 200명씩 보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당시 내전이 심했던, 의료도 보건도 기술도 교육도 아무것도 온전치 않은 곳으로 향한 그의 내적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내 삶을 살아내기도 벅찬 세상에서,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사제로서 대의를 실천하는 삶은 대체 무엇일까. 그렇게 사는 삶이 가능한 것인가.

 

이태석 신부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그가 직접 쓴 편지 등을 참고로 하여, 수단으로 향하기 전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그의 자취가 책에 담겨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나는 어쩌면 오해했었던 것 같다. 나를 위한다는 행위가 철저하게 나를 위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역설을, 타인을 위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나를 희생해버리는 것 자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태석 신부를 통해 느낀다. 그러나 그 사랑을 깊이 이해하려면 나는 한참 멀었다.

 

이태석 신부가 실천한 사랑이 너무나 거대해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듯해 보이지만 그는 말했다.

나누기엔 가진 것이 너무 적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하찮을 수 있는 1%가 누군가에게는 100%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중-

 

이태석 신부의 삶은, 그리고 남수단 톤즈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치열하게 사는 삶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한다. 사랑을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를 통해 마주한 나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 스스로에 대한 미미함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면, 그로 인해 내 삶에서 자그마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만 하다면 자그마한 동기의 위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태석 신부의 자취를 살펴보며 지금 이 시기에, 그리고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된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과 세상에 필요한 사람에 대해서. 그의 사랑을 읽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수철아, 너는 길에 돌멩이와 다이아몬드가 있으면 뭘 줍겠니?”

지원자 수사님,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당연히 다이아몬드를 줍지요.”

그렇지? 그런데 나에게 의사는 돌멩이고 하느님과 너희들은 다이아몬드야. 그래서 신부가 되려고 수도원에 온 거야.”

정말요?”
.”

-본문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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