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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 - 정민 교수의 세설신어 400선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평점 :
독자 한 줄 평:
성찰의 힘이 필요한 시대, 옛이야기와 성어 한 줌으로 나와 세상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중국 고전 시가 강의를 대학 수업에서 들었던 적 있다. 소식과 두보의 시를 배우며 한자 외우는 것을 싫증내면서도 몇 자 안 되는 문장에 담긴 깊은 표현의 맛에 푹 매료되기도 했다. 그때 비로소 한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깨졌는데, 이 책을 펼쳐 보며 고사와 성어는 사실 기본적으로 재밌는 학문이 아닐까, 비전공자의 얕은 시각이겠지만 그런 생각도 대담히 해보았다.
이 책은 소설처럼 정신없이 읽어 내리기보다는 천천히 곱씹기가 더 어울린다.
<점검>이라는 제목대로, 성어의 뜻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성어에 얽힌 고사를 통해 현재와 스스로에 대해서 차분히 돌아보기 좋은 작품이다.
우선, 가나다순으로 400개의 성어가 배열되어 있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두 번째로는 내가 아는 성어가 그중에 열 개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는데 책을 읽는 데에는 지장이 전혀 없었다.
목차에 이미 간략한 성어에 대한 설명이 드러나 있어서 나는 목차를 먼저 보고 끌리는 성어를 먼저 골라 읽다가 나머지 성어들도 자연스럽게 다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을 뽑기 전에, ‘세상’과 ‘글쓰기’라는 두 갈래의 테마로 나누어보았는데, 시쳇말로 ‘뼈 맞는’ 이야기도 있었고, 한문학의 멋이 드러나는 서정적인 표현도 엿볼 수 있었다.
본문 중
세상에 공정한 말이 없다. 비난하고 기리는 것, 거짓과 진실이 모두 뒤집혀 잘못되었다. (...) 개중에는 주견 없이 남의 말만 믿는 자가 있고, 선입견을 고수해서 다시 살펴볼 생각을 않는 경우도 있다. 서로 전하고 번갈아 호응해서 잘못을 답습하고 오류를 더한다. <정상한화> 中
(...)“그 정도는 봐줘야지, 뭐 별일이 있겠어?”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때가 이미 늦었다. 특히 이 대목에서는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가 떠올라 인상 깊었다.
‘견양’의 이름난 고기라고 아무 의심 없이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허망한 권위에 속아 주체적인 판단 없이 그저 공고한 권력을 재생산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온 성어들을 무조건적인 진리, 정답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주입하게 되면 사유의 폭이 좁아진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의 도구로 삼자는 소리이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3-400년 전부터 이야기되었던 ‘정도’를 찾는 것은 오히려 지금에서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옛글이 고지식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것으로 치부되는 요즘 세상이다. 그러나 듣기 편안한 소리보다 불편한, ‘뼈맞는’ 진실에 때로는 부끄러워지고 세상과 나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생기기도 한다. 옛이야기에서 묻고 스스로 성찰하기. 그러한 독서 방식을 이 작품에 적용하기 좋은 것 같다.
점점 더 ‘스마트’해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스마트한 기술만을 어떠한 이해도 없이 수용하려는 것이 아닌지,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한 줌의 소망과 세상에 대한 바람이 때로는 전혀 소박하지 않은, 불가능한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사어가 되지 않도록 더욱이 소환해야 한다.
물론 이 책을 재미로 읽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성어에 대한 뜻풀이만 줄줄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어가 나온 유래나 관련 고사도 두 페이지 내외로 설명되어 있어서 읽는데 부담이 없고 뜻의 맥락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서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
흔히 한문학의 ‘흥취’라고 하는 것도 무엇인지 짐작될 듯하다. 나의 가장 ‘최애’ 대목을 뽑으며 감상평을 마무리해본다.
-본문 중-
퇴계선생이 주자의 편지를 간추려 <회암서절요>란 책을 엮었다. 책에 실린, 주자가 여백공에게 답장한 편지는 서두가 이랬다.
‘수일 이래로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매번 들을 때 마다 그대의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