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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평점 :
<사랑의 기술>을 읽다가 내 얕은 독서 근육으로 완독을 실패한 적이 있다. 이번에 에리히 프롬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사회심리학자의 저서를 엮어 만든 책이다. 죽은 삶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의 철학을 사유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은 공부하듯,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사회를 어떻게 스스로 사유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니체와 칼뱅, 프로이트, 마르크스, 칸트 등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들이 등장하는데,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나 의문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보다 책의 목차마다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들을 가볍게 나누면서 소화하고 싶다.
서문을 제외하고 총 9가지의 차례로 엮이어 있다. 그 중 핵심으로 꼽고 싶은 내용을 공유하려 한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저자는 사랑이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력을 향한 관심이라면 현대 사회는 ‘생명 없는 것에 은근히 끌리고 있다’고 말한다. ‘국제적 차원의 폭력, 패권 추구’, 개인이 느끼는 ‘압박감과 불안’ 등. ‘자신의 강인함’을 믿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심리 역시 자신의 생명력보다 ‘수단의 힘을 키우’려는 것에 해당한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착각’한 채. 그리고 익명의 권위에 따라 남들과 다르기를 불안해하며 ‘평등’을 ‘동일’로 이해한다.
“동등한 권리를 원한다면 타인과 같아야 해.(...)” p.58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진정한 인간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조적 인간이 되어 소비와 수용의 태도를 극복하는 것’.
‘우리는 공이 세 번만 굴러도 지루해한다. 공이 구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공이 구르는 걸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자기 나무나 꽃, 풍경을 보는 화가는 나무가 예쁘냐 아니냐에는 관심이 없다. 나무의 이름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훨씬 더 마음에 두는 것은 나무를 남김없이 직접 경험하는 것, 그 나무의 본질을 경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무를 보는 것이다. (...)’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면서 세계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질문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질환인 듯하다.
삶의 형태가 존재가 아니라 모조리 소유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창의적인 삶>
그는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내 안에서 생각한다’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p.135)
내가 나의 포로가 되는 것을 나는 잘 모른다. 사회에서 경험하는 ‘불안과 공포, 강박적인 동조 욕망’으로 인해 느낀 것을 자기 감정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착시 현상은 뒤이어 나오는 ‘무력감’에 관한 내용과 연결되기도 한다.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나에게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 이념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매일 분주하지만 사실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외에도 최대 소비 시스템을 최적 소비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끊임없이 불안한 사회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생각되어 동의 되었다.
끝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예감하고 감지하며 안다’라는 문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는 것 또한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성이 사랑과 태동하는 생명력에 기원했다는 믿음으로부터, 스스로를 속이고 착취하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존엄을 지키는 내면의 강인함을 키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저항하기 위해 꼭 살면서 한 번씩이라도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맴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