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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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이 건초창고 안에 떠다니는 저 먼지 같은 거야.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한 번 나면 한 번 죽어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들이지. 태양이 끈을 놓으면 인간이 이루어낸, 아니 지구가 이루어낸 모든 것이 사라져.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합쳐도 주정뱅이 노래 하나 막지 못하고 풀 한 포기 자라는 걸 막지 못하지. 우리 모두는 태양의 미세한 요동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외줄을 타는 지구의 광대들일 뿐이야.

...

죽음은 이미 삶 안에 존재하여 묵은 삶이 흘러가야 새로운 삶이 온다고들 한다. 삶이 죽음의 시작이라면 허무는 존재를 안아주는 슬픔이다. 슬픔이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막막한 연민이라면 연민은 시간이 흘린 낙엽이다. 낙엽이 지고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존재의 양식은 달라진다.

-본문 -

 

기억에 떠도는 문장들이다.

꼬리라는 글자가 세로로 적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공허하고 슬픈 감정이 솟았다.

다큐멘터리스트로 활동해오다 야생호랑이 보호 활동을 결심한 박용수 작가가 시베리아 호랑이 꼬리를 알게 된 특별한 경험을 글로 섬세하게 풀어냈다.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그는 논픽션 자연문학이라는 분야로 이 작품을 출간했다. 요즘에는 OTT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생태계의 이야기가 어느 서사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 그가 만난 호랑이 꼬리의 삶도 우리의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부닥친 호랑이라는, 오로지 옛 이야기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존재가 마음을 공허하게 울렸다.

 

우선 작품의 자연 묘사가 참 생생하다.

작가가 잠복 생활을 하며 느낀 수많은 감정들과 자연의 계절감이 맞물려 떨어져 마치 내가 호랑이를 추적하고 있는 듯한 긴장감이 들었다.

광활하고 장엄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체가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될 때, 혹은 그러한 생명의 죽음을 목격할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꼬리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우두머리 경쟁자나 사냥감들, 그리고 인간과의 서사가 우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한한 존재는 언제나 그 자체로 슬프고 존엄하고 동등하다.

 

인상 깊었던 점 또 하나는 호랑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포식자도 자연에 속한 한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어쩌면 나도 꼬리의 그러한 모습에 이 작품이 끌렸던 것 같다. 완벽한 인물보다 결함이 있는 자에게 끌리게 되는 것처럼.

꼬리가 죽음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또한 굶주림에 치명적이고, 어리석어 보일지언정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서 이에 많이 흔들리기도 하며, 결국은 혼자 걸어간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과 호랑이의 마지막 순간은 어떠한 차이가 있을 것인가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꼬리와 다른 종족임에도 그를 그 자체로 존중하게 된 저자의 생생한 언어 하나하나가 울컥하게 한다. 꼬리의 눈빛을 본 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인간과 야생동물이라는 관계로 만나 서로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고, 모르는 척하면서 배려하지만 눈빛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먹먹했다.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은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

 

호랑이를 생포하는 과정 중에 마을 주민들과 사냥꾼의 갈등 장면에서는 현재의 문명은 과연 발달된 것인지 퇴화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이 생긴다. 자연물을 신으로 섬겼던 원시와 돈을 숭배하는, 그리고 숭배하게 만드는 이 자본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호랑이를 추적해온 한 사람과 고독하고 웅장한 왕대호랑이의 만남은 나에게 죽음과 자연 앞에 미미한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꼬리의 마지막 순간은 슬픔의 감정은 삶의 존엄함을 지탱하는 중요한 감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오늘도 숲은 무르익은 신비로 가득하다. 여울에 밀려나 쌓인 모래톱 위의 앙증맞은 발자국 하나에도 가슴이 설레고, 지저귀는 새소리 하나에도 무슨 의미일까 호기심이 자란다. 다 이해할 수도,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광활한 미지의 세계가 없었다면 나는 먼지 같은 존재의 미소 (微少)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본문 -

 

 

독자 한 줄 평:

고독한 호랑이의 모습에서 고독한 인간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임존중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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