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 - 안니바오베이 장편소설
안니바오베이 지음, 서은숙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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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정보 없이 책을 봤을 때는 한 여자의 상처가 문득 스쳤다. 그리고 앞부분을 읽을 때는 몽환적이면서 나른해서 지루했다. 그러나 읽을수록 몰입이 된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자연스럽게 오가는 작가를 따라 나도 중국대륙을 상상하고 세 주인공의 마음에 이입되어 하나의 큰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렇게 다 읽고 나니 묘하게도 영화처럼 장면이 만들어져서 단편단편이 떠오른다. ‘연화’라는 다소 모호한 제목이 주는 이미지를 따라서 서술이 그만큼 자세하고 비유도 감각적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서술 방식이 너무 오래된 전술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하나하나 읽다보면 다 아름답고 그럴듯하면서도 다의적인 개념에 감탄하며 어떤 분위기에 휩싸이지만, 읽고 나니 뚜렷한 무엇이 기억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비유와 감성적 서술로 톤을 이끌어서 그림을 본 듯하기도 하다. 이 방법이 과거와 현재를 함께 서술하기에는 적당하다고 생각되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읽히고 쓰이는 소설들은 일본소설처럼 버겁든 즐겁든 현실과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고 소위 태연하게 인정하고 내면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연화>는 많이 에둘러져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읽는 호흡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함이 잘 나타난다. 그러면서 묘하게도 유치하지는 않아서 작가의 역량이 엿보인다. 추상적 관념 읽기가 재미있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세련되게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서술된 방대한 비유나 진언에 공감에 공감을 계속했지만, 읽고 나니 뚜렷이 기억나는 문장이 없는 거 보니 전체적으로 추상이 구상을 압도했던 것 같다.
앞부분에서는 어투가 지극히 서정적이어서 오히려 내면 읽기를 방해할 정도였고, 뒤로 갈수록 주관과 객관의 줄타기가 절묘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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