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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 식물과 책에 기대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을 어루만지다
제님 저자 / 헤르츠나인 / 2021년 12월
평점 :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은 제님 작가의 식물 에세이다.
그동안은 그림책이 주 소재였다면 이번에는 식물이다. 작가의 집에서 키우는 식물부터 길이나 남의 집 마당에서 만난 식물, 고향집이나 과거의 기억 속 그것까지 작가의 관심 안에 있는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기에 당연히 책이 연결되고, 작가의 일과 일상, 내밀한 감정까지 드러냈다.
이번 책에는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행복 씨앗을 발견해 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식물과 책과 사람들에 기대어 더 생기있게 짙어진 초록 이야기가 될 것이다. 경제적인 불안이 기본값인 일상에서 읽고 쓰는 삶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이며, 삶의 재미라곤 없을 것 같은 오십이라는 나이에도 이토록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마흔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서 맞이한 한 줄기 햇살 같은 맛이라 해야 할까? 그러니 살아남는 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충실한 매일을 살다보면 환한 오십에 기어이 당도하게 되리라는 한 조각 진실이 흔들리는 마흔들 마음에 가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사적인 이야기가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므로.
위 머리말의 마지막 문단이 이 책 전체 요약 소개에 해당된다 하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작가의 이야기에서 유사한 경험과 감정을 만날 때 독자들은 반갑고 위로를 받는다. 내가 서평단에 신청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온 지 3년째이지만 식물엔 심드렁했다. 그러다가 올 여름 플로리스트 교육을 받으면서 꽃에 관심을 가졌고 집안의 화분들 개수도 늘어났다. 그림책과 고양이와 식물! 모두 내 일상이니 당연히 그것을 소재로 쓴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먼저 놀란 것 하나! 작가가 좋아한다는, 집에서 키우는 식물 이름 중에 처음 듣는 것이 많았다. 마오리 소포라, 마오리 코로키아, 사광이아재비, 꽃방동사니. 이 이름들을 듣고 바로 어떻게 생긴 건지 아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식물초보는 아닐 것이다.



위 사진들은 책에 실린 것이다. 두 번째로 놀란 건 작가의 사진 솜씨다. 분명 아파트에 산다고 했는데 위 사진을 보면 아파트처럼 보이지 않는다. 집 안을 식물원처럼 꾸민 것인지 사진 실력이 출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거의 사진작가 수준이다.
아래 인용은 여러 가지로 놀란 것이 들어있는 문단이다.
“이야기가 필요한 이런 날 中” p.190
다음날, 월요일에 김서령의 가자미 이야기와 백석의 시 두 편을 가슴에 품고 물류창고로 향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의 백석처럼 삽상한 기분으로, 하루 종일 지루하기 그지없는 일을 하면서도, 투명 인간으로 살면서도, 손놀림이 느리다고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기분이 삽상하기만 했다. 집에 가면 나도 오늘 가자미를 꼬깃꼬깃 진간장에 지져 먹을 생각에, 나도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람이니까. 다음에는 김서령 작가의 <참외는 외롭다>를 읽을 거니까.
내게 백석의 시는 늘 발견된다. 다른 책을 읽다가 (나에게만)새로운 시를 알게 되는데 이번처럼 전문이 실리지 않는 경우 가지고 있는 <정본 백석시집>을 꺼내 찾아본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어본다. 이번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는 어찌나 침이 고이던지...ㅎㅎ
그리고 그동안 김서령이란 작가를 몰랐다는 사실! 책 제목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보는 순간, 작가가 안동 출신인가 했다. 이 꼭지를 다 읽고 바로 찾아보니 안동 출신이 맞고, 2018년에 타계했으며 그의 필력은 유명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몰랐던 식물 이름을 아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시와 작가를 알게 되어 더 좋았다. 위 밑줄 친 ‘삽상한’이란 단어처럼 처음 듣는 단어들도 꽤 있었다. 맨 ‘상쾌하다’밖에 쓸 줄 몰랐는데 앞으로 이 단어도 써봐야겠다.다
새롭게 알게 된 의태어도 있다.
"작년 봄에 툭 꽂아두었던 담쟁이덩굴도 마디마디 도틈도틈 싹을 틔웠다."
"빌라 울타리에 발맘발맘 기어오르던 청보라색 나팔꽃."
참으로 귀여운 말이 아닌가. 식물에세이라서 만날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어 좋기도 하지만 단점도 없지 않다. 작가가 소개해주는 책과 식물을 검색하다보면 어느새 그것들을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담고 있다. 불과 며칠 전에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글을 썼는데 말이다. 그래도 ‘마오리 소포라’ 보다는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먼저 결제할 것 같다. 동향 작가가 쓴 글을 어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고, 제님 작가와 비슷한 감정 포인트를 느끼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작가의 글들을 읽으며 직접 만난다면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작가의 마당파티에 초대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p.219
마당의 정서를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마당 파티를 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삶터에서 문학의 여백으로 승화된 마당에 대한 글을 낭독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마당에 대한 서사를 풀어놓는 자리에 얼마나 많은 결들의 감정이 포개지고 또 엇갈릴 것인가? 그 감정의 결들 사이에는 따뜻한 그리움과 마법같은 편안함이 소복소복 쌓일 것이다.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를 읽고 우리 집 마당 봄밤 이야기를,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 나오는 안동식혜를 먹어봤냐며 수다 떨 거리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그리고 제님 작가에게, 이젠 좀 어떻냐고 물어보고 싶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