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큼 살았다는 보통의 착각 -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두려워지는 당신에게
이근후 지음 / 가디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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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 이근후 선생의 새 에세이가 가디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두려워지는 당신에게라는 부제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는데 겁날 게 뭐 있냐며 호기로운 척 하지만 실은 그 나이 때문에 주저하고, 무엇에든 걸림돌은 나이인 것 같아 의기소침하게 된다. 한편 이만큼 살아보니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며 뭉뚱그리며 일반화시킬 때도 있다. 그래서 인생선배의 충고를 듣고 싶어진다.


이 책, <살 만큼 살았다는 보통의 착각>에서 저자의 어릴 때나 학창 시절 이야기는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 유사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도 있고 아주 처음 듣는 이야기라 새로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너무 옛날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면 의미가 없어진다. 허나 온고지신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내 상황에 맞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105~106


네팔에 있는 명상가인 내 친구 한 분은 세상 인구 가운데 1%만 마음 씻기를 한다면 세계가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반론으로 친구에게 딴지를 걸어보았다. “마음 씻기를 해야 할 사람은 마음을 씻지 않고 마음을 안 씻어도 이미 깨끗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계속 마음을 씻고 있으니 세계 평화가 올 리가 없다.” 

(……)

요즘 몸 씻기는 넘치게 잘 하지만 마음 씻기는 눈에 뜨이게 모자라는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몸만 씻고 마음은 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몸 씻기와 마음 씻기가 몸에 배어 우리의 습관이 된다면 바로 그것이 담담하고 평화로운 상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저자는 자녀 넷이 건물을 지어 함께 모여 산다. 많은 독자들이 부러워하며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해한다. 아버지인 저자가 시킨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의논해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아무나 쉽게 따라할 수 없기도 하거니와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 저자는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해주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 간섭한다면 모여 사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고 했다.


또 저자는 18세가 되면 자녀를 독립적으로 살도록 하자고 말한다.


p.45


옛날에는 자녀들이 노후의 보험이었지만 독립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자녀는 절대 보험이 될 수 없다. 서로 독립적으로 자기 앞가림을 잘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 상호 의존적인 자세로 소통을 한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인간관계가 될 것이다.

 

요즘 지인이나 선배들과 만나 나누는 주된 이야기 소재는 아파트 값이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식이 결혼할 때 아파트를 사주거나 전세자금이라도 해줄 수 있었는데 요새는 엄두를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시세가 너무 올랐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한탄이다. 이래저래 부모노릇하기도 힘들다.


저자는 열여덟이 되면 자녀가 독립적으로 해결하도록 놓아주라고 하는데 성인이 된 자식의 신혼집을 구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는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갑분싸가 될 것 같아 듣고만 있었다. 이것이 현실과 책 사이의 거리감인가...

 

이 책에는 저자가 만났던 환자의 사연이 몇몇 소개되는데 우울증 환자 중에 자살을 시도한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는 남에게 신세 진 일도 없고 더욱이 빚진 것도 없으므로 자기가 남에게 베풀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저자는 그 환자에게 당신은 덤으로 나온 인생으로 빚쟁이라고 말하며 빚진 것을 갚도록 유도하여 극단적 선택을 여러 번 막았다. 환자가 저자에게 빚을 졌다고 어떻게 갚으면 되겠냐고 물었을 때 저자는, “당신이 살아 있으면 나한테 빚을 갚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p.244

빚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얽혀 살면서 서로 인연 지워진 모든 것이 빚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저 세상에 가기 전에 이 세상에서 살며 졌던 빚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갚고 갈 수 있으면 평화로운 생의 마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번에 친정엄마를 간호하며 몹시 힘겨웠다. 나보다 덩치도 크고 무거운 엄마의 몸을 혼자 컨트롤하기에 힘이 달려서 점점 지쳐갔다. 엄마한테 받은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 무슨 업보인가 싶었다. 엄마가 나이에 비해 몸이 이렇게 안 좋아진 이유가 모두 남동생 박사공부 시키느라 너무 고생했기 때문이 아닌가, 딸인 나를 대학 공부시킬 생각도 안 했으면서... 자꾸 돈으로 결부시켰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저자의 위 내용을 읽으며 조금 누그러졌다. 이 세상 모든 인연이 빚이라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자는 지난날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게 없다는 메일을 친구에게서 받고자신도 지나온 87년을 되돌아보니 그 긴 세월이 한 순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그러나 반대로 한 일이 없는 게 아니라 한 일이 참 많다고 생각해 보자고 했다지금은 자기 자신이 살아온 결과이므로 한 일이 없다고 자학하기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옛 선현들의 말을 인용했다.


"인생은 순간이며 모든 것이 순식간에 주검으로 굳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인생은 짧은 이야기와 같다중요한 것은 그 길이가 아니라 값어치다." - 세네카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가진다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많은 대가를 얻는다." - 알렉산드리아 피네


세상에는 읽을 책이 너무 많고 유튜브에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숨가쁘게 올라오지만 기실 가까이에서 내게 맞는 조언을 해줄 어른은 없다. 옆집에 사는 심리학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공감하고 감사할 문장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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