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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열린 문으로 그분이 오신다 - 브릿G 8주년 기념 소일장 앤솔러지
소금달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4월
평점 :
황금가지 출판사의 단편집 <열린 문으로 그분이 오신다>의 서평단에 당첨되어 이북으로 받아 읽었다. 이 책은 온라인 소설 창작 사이트 ‘브릿G’의 8주년을 기념하여 장르 작가들이 참여한 앤솔러지다. 12편의 소설을 1월부터 12월로 구분하여 실린 이 소설들은 2024년 2월부터 2025년 1월까지 매월 진행된 소일장에 참여한 작품들이다. 소일장은 같은 소재 백일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단편들의 소재가 다양하고 SF도 여러 편 있어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 각 작품의 분량이 짧고 이북으로 짬짬이 읽기에도 좋다. 나는 주로 이동하는 운전 중에 들었는데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소설들은 퇴근 후에 다시 읽어보았다. 인상 깊은 소설 몇 편을 소개한다.
<바풍>에서 바풍은 아이들이 손으로 조물락거리며 가지고 노는 슬라임으로 풍선처럼 만들어 띄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바풍이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읽다가 좀 섬뜩해졌다. 주인공의 딸 하은이 바풍 안에 가둔 생명들이 편안해보여서 좋다고 했다. 하은은 엄마가 힘들어보여서 편해지라고 바풍을 씌우는데 엄마 강한나는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코로나로 갑자기 남편이 죽은 뒤 조리사로 일하며 힘겹게 딸을 키우고 있다. 팍팍한 일상의 무게가 바풍으로 한껏 가벼워지면 좋았으련만 그녀는 바풍에 갇혔다 사라진 바퀴벌레처럼 될까봐 아찔했다.
재미를 주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공포스런 물건으로 돌변할 수 있다니, 고통스런 일상을 소거하여 평안해지고 싶은 마음을 유혹하는 설정이었다. 싱글맘의 고단한 삶이 딸의 순수한 의도로 인해 중단될 뻔했다는 상상력은 마지막 아이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나 역시 그랬다. 힘들어도 부모에게 살아갈 의지를 주는 것은 순진무구한 낯으로 웃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소금달>은 액자소설인데 유튜버가 된 청년이 어릴 때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버려졌고 존재를 부정하는 험한 말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을 살게 한 이도 있었다. 소금달이 들려주는 말에 아이는 살아갈 힘을 얻었고 잘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란 것들은 끝없이 불행을 만들고 자넨 그 눈물로 자라니까 말이야. 걱정할 건 전혀 없지. 그러니 잊지 말라고. 난 자네 소금을 가져간 게 아니야. 자네를 도와준 거지.”
아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대상은 부모인데 그들이 손을 놓으면 아이는 세상을 잃는 것이다. 다행이 손 잡아주고 힘을 주는 어른이 있다면 아이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서 마음이 찡했다.
12월의 소설 <잔>은 화성에서 태어난 수민의 이야기다.
‘우주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건 없다. 우주에서 태어난 수민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수민이 본디 가지고 태어난 사랑은 수민을 외롭게 만들었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수민은 어찌어찌 버텨냈다. 어른이니까 버텨야 했다. 오늘은 달랐다.’
수민을 성장시킨 후 이혼한 부모님에게 원망은 없었으며 주위의 친구들은 다 잘 되었고, 그녀도 오늘 하루 일을 잘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왔다. 잔을 채운 물이 증발했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를 끓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라도 만나고 싶었다. 아니,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수민의 절절한 외로움이 읽혔다. 친구 리아가 보고 싶어 십 년 전 받았던 선물 상자를 열었다더니 거짓말처럼 리아가 수민을 찾아왔다. ‘진심을 담아 상자를 열면 뭐든 이뤄질거라고’ 했던 리아의 말대로였다.
‘둘은 지난날을 서로의 잔에 채웠다. 곧 찾아올 이별을 아쉽게 보낼 순 없었다.’는 마지막 문장이 나는 슬펐다. 짧은 만남 동안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웠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수민은 또 혼자가 될 테니까. AI 친구가 자연스러울 미래가 곧 오겠지만 AI 친구라도 늘 옆에 있지는 않을 거라는 이 소설의 설정은,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역설하는 듯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