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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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나는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쓴 글을 좋아한다. 올 해에 베네수엘라, 스위스, 독일, 칠레,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이 쓴 책을 읽었다. 외국에 살며 그 나라 언어에 점점 동화되어 가는 글을 읽으면 나도 같이 뿌듯해진다. 그 과정 속에서 겪는 어려움, 놀람, 재미, 위안 등의 감정을 같이 느끼는 것도 좋다. 이방인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그 역시 받아들일 밖에...


<언어의 위로>는 프랑스어를 20년 넘게 쓰면서 한국어 에세이를 꾸준히 출간해온 곽미성 작가의 신간이다. 그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소설 <파노라마>를 번역했다는 것을 알았다. 10월에 <파노라마>를 읽고 서평을 썼는데 가독성이 좋았던 기억이 났다. 그 책은 소설인데도 형사가 사건을 브리핑하는 것 같았는데 번역의 스타일도 한 몫한 것 같다. 곽미성 작가는 프랑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뉴스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 경험이 소설 번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작가는 영화를 배우려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지금은 번역과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언어의 위로> 1부는 낯선 프랑스어를 생존언어로 삼았을 때 벌어지는 경험들을, 2부에서는 프랑스어가 작가의 인생 전반에 스며들었던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학창 시절에는 시험을 위한 교과목으로서 영어를 배웠고, 성인이 되어선 외국어를 배운 적도 외국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나 같은 사람들은 모국어의 소중함이나 고마움을 느낄 길이 없다. 물론 별 불편함도 없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우리도 이제 모국어로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읽는다며 으스댈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릴 들었다. 모국어만 쓸 줄 아는 뭔가 능력 없어 뵈는 사람이었다가 갑자기 노벨문학상 보유국으로 격상된 게 아닌가. 하지만 태어난 곳에서 모국어만 쓰며 죽을 때 까지 사는 것보단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 이젠 거의 실현불가이므로 이런 책으로 간접경험하며 대리만족 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프랑스어를 배우는 경험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프랑스의 문화나 사람들의 태도, 그로 인해 드러나는 언어의 뉘앙스를 알 수 있었다. 나는 프랑스에 한 번도 못 가봤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프랑스인들이 자국어와 문화에 대해 자긍심이 강하다는 것을 많이 들었다. 또 식사 시간 동안 토론에 버금가는 대화를 많이 하며 비판적이라고. 이 책에 나의 선입견과 유사한 사례들이 꽤 나와서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가 프랑스인은 투덜이라고 표현하며 든 사례는 꽤 공감이 되었다. 작가가 그 상황에서 시니컬한 맞장구를 치기도 하는데 재미있다.


작가가 이젠 거의 프랑스인 다 된 것 같은 사례가 있었다. 작가는 프랑스인 남편과 자주 다투는 편이라고 한다. 사이좋게 대화하다가도 한 사람이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그 때부터 점화가 된다. 아이를 안 낳기로 결정한 건 잘 한 일이라고 말하던 부부는, ‘아이가 있다면의 주제로 넘어가면 둘의 의견 차 때문에 대화가 점점 격해진다. 학교 문제로 대립하다가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며 평소 마음에 안 들어 하던 부분이나 서로의 어린 시절까지 들추기에 이른다. 한 명이 어쨌든 아이는 없으니 이제 그만 얘기하자.”고 하면 겨우 끝난다고.


1부도 좋았지만 나는 2부 내용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8개의 꼭지에는 프랑스어로 된 한 문장과 그에 관한 에피소드를 실었다. 오랫동안 주치의였던 의사 선생님이 은퇴하며 헤어지게 되는 이야기에서는 까칠하기만 할 것 같은 프랑스 사람 중에 저렇게 정 많은 사람도 있구나 했다. 그와 함께 프랑스의 주치의 시스템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의 이미지는 수다스럽고 과장되다는 것인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쎄빠말’(나쁘지 않네)를 다룬 꼭지에서는, ‘거참, 그 사람들...’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작가도 처음엔 프랑스인의 말투에 상처도 받았지만 이젠 적절하게 끊거나 대응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샤캉 쉐르쉬 쏭 샤’(각자 자기의 고양이를 찾아 다닌다)에서는 영화를 배운 작가가 영화 일을 하지 않게 된 사연을 풀어냈다. 작가는 자신의 고양이를 찾은 것 같다. 작가는 영화를 전공하러 왔다가 글로 밥벌어 먹고 살게 되었다. 2021년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 모하메드 움브가르 사르의 글에서 공감한 내용을 인용하며 이렇게 썼다.


"각자 자신의 고양이를 찾아다닌다. 가느다란 선 위를 걷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어쩌면 '그럴 수 있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서. 어느 길모퉁이에 다다르면 고양이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지, 고양이는 사실 어디에도 없었던 건지, 실은 그것을 찾아다닌 모든 여정 속에 고양이가 있었는지, 그건 그때 가서 보는 수밖에."


젊은 사람들이 말했을 때나 어울릴법한 말이 내게도 적용되는지 잠시 갸웃했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아직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건가. 100세 시대니 아직 좀 더 찾아다녀도 되는 걸까? 무튼 샤캉 쉐르쉬 쏭 샤를 계속 소리내어보면 동글동글한 듯 끊기는 듯 묘한 매력이 있다.


한국에서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 에필로그에서는 프랑스에서 치열하게 살며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쓰지만 모국어의 포근함은 모국어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모국어의 무게로 가방이 무거워질수록 국경을 넘는 이민자의 마음은 든든하다. 이방인의 처지가 서러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오면, 이 책들을 꺼내 떠나온 곳의 사람들이 지어놓은 아름다움을 더듬고, 마음을 덥힐 것이다.


이 책으로 곽미성 작가 글의 매력에 빠졌다. 단단하면서 부드럽고 웃음짓게 만드는 글이었다. 작가의 다른 책들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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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구는 이웃들을 기다린다 책이 좋아 3단계
이선주 지음, 국민지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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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태구입니다.


우리 가족은 한화 열혈 팬인 아빠와 욕쟁이 할머니와 저, 이렇게 셋입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살아요. 요즘 정말 신나는, 아니 맛나는 일이 생겼지 뭐에요. 제가 이웃 사람들에 관심이 쫌 많거든요. 얼마 전에 이사 온 101호 할머니가 자꾸 우리 집에 와서 비번을 누르더라구요. 그 할머니를 댁에 모셔다드리기도 하고 할머니가 길을 잃었을 땐 아이들이랑 막 찾으러 다니고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101호 아줌마가 고맙다면서 맛있는 거 해주겠다고 놀러 오라시는 거예요. 해모랑 예은이까지 데리고 갔는데 불고기에 소고기가 아주 그냥 그득그득! 야채를 더 많이 넣는 우리 할머니표 불고기랑은 차원이 다르더라구요. 아줌마는 요리 솜씨도 일품인데 손도 커요. 다 맛있지만 아줌마 김밥은 정말 끝내줘요.



아줌마 딸 은비 누나는 16살인데 학교를 안 다닌대요. 탈학교라나 뭐라나... 그런데 집에만 틀어박혀 있고 밖엔 통 나가질 않는다네요, 그건 또 히끼꼬모리라나 뭐라나, 여튼 그런 은비누나 방은 거의 식물원이에요. 누나 방에 들어갔다가 입이 아주 떡 벌어졌다니까요. 은비 누나, 식물 잘 키우는 금손 인정요! , 누나가 밖으로 나오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그건 지금 말하지 않을게요. 좀 궁금하시라구요. 궁금하신 분은 <태구는 이웃들을 기다린다>를 꼬옥 읽어주세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우리 아파트에서 기절초풍할 사건이 벌어졌어요. 아파트 복도에 장독대를 만들어 놓은 할머니가 계시거든요. 사람들이 냄새 난다고 싫어하고 계속 민원을 넣어도 이 고집불통 할머니는 장독들을 절대 치우지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할머니 고추장 항아리 안에다가 오줌을 싼 거에요. 난리난리가 났죠. 범인을 CCTV로 찾아냄 된다구요? 확인 불가였어요. 그런데 제가 의심을 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 아빠에요. 사건이 일어났던 날 밤에 아빠가 아주 고주망태가 돼서 들어왔거든요. 저는 아빠를 유력한 용의자로 꼽았는데, 세상에!! 제가 범인으로 몰린 거예요. 억울해서 죽을 뻔 했어요. 전 아니라니까요! 요 사건의 범인도 궁금하시죠? 역시 책 안 읽곤 못 배기겠죠?


탈 많고 말 많은 건 동네 사람들 뿐만이 아니에요. 저희 집에도 사건이 제법 일어났는데요. 먼저 저희 집 거실에 비둘기가 떡 하니 들어와서 새우깡을 먹었다니까요. 그런데 할머닌 제가 헛 걸 봤대요. 아니거든요.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요. , 더 큰 사건! 아빠가 할머니랑 나를 데리고 바닷가 횟집으로 갔는데 거기에 어떤 아줌마랑 그 아줌마 아들이 같이 온 거에요. , 새엄마라니... 그럼 우리 졸지에 식구가 다섯 명으로 늘어나는 건데 같이 못 살아요. 우리 아파트 방 두 칸짜리거든요.



저는 친엄마가 보고 싶은지 어쩐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 얼굴 이젠 거의 까먹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들 집에 가서 걔들 엄마를 볼 때, 또 우리 집이나 제 처지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걸 들을 땐 저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할머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엄마가 필요할 때도 있거든요. 맛난 음식 많이 해주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101호 아줌마를 보면 우리 엄마도 저럴까, 혹시 우리 엄마가 다른 아이에게 저렇게 하면서 사는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해요.


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한 집에 사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부르면, 같은 동네 사는 사람들은 이웃이라고 부르잖아요? 저는 우리 동네 이웃들이 다 가족 같아요.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비둘기까지도요. 사실 비둘기한테까진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희 집 거실에서 비둘기 만난 후로 밖에서 보이는 비둘기들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더라구요. 얼마 전에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는 엄마를 봤거든요. 거실에서 만났던 그 비둘기가 떠오르지 뭐에요. 저 엄마 안보고 싶은 줄 알았는데 사실 보고 싶었었나봐요. TV 보다가 무슨 심리학자가 그러던데 이런 게 억압이래요. 방어기제라나 뭐라나... 무튼 이제 비둘기에도 더 관심가져 주려구요


, 제게 새엄마가 생겼냐구요? 것도 되게 궁금하시죠? 꼬옥 책으로 확인하세요.


태구는 이만 이웃들 기다리러 갑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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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학교 백서 청어람 청소년 1
심너울 외 지음 / 청어람주니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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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 주니어에서 청소년 문학 시리즈로 첫 작품 <미래 학교 백서>를 출간했다. 출판사에서는, 청소년에게 미지의 세계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고 아낌없는 위로와 힘찬 응원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요즘 앤솔러지 소설집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번 소설집에는 네 명의 젊은 작가, 탁경은, 하유지, 이선주, 심너울의 작품이 실렸다. 미래의 학교를 배경으로 청소년이 주인공인 SF소설이다.


첫 번째 소설 해커와 찰리는 학교가 학생들을 위협하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초현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인공 지능 찰리가 모든 시스템을 관장하며 교장과 교감만 인간이고 나머지 교사는 모두 인공 지능이다. 인공 지능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란 감옥과 다를 바 없다. 인공 지능 버전 업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요즘 전문가도 따라가기 벅차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 소설처럼 근미래에 인공 지능이 시스템화 된다면 그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인간은 몇이나 될까?


두 번째 소설 제목은 냉동 이모 고은비인데 네 편의 소설 중에서 이 작품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하유지 작가는 이 짧은 소설 안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동안 읽은 냉동 인간 소재 소설은 시간의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 문제를 주로 다루었는데 이 소설은 주인공이 열 다섯 살이라서 겪는 문제들이 주가 된다. 주인공은 냉동 인간이 해제되었을 때 벌어질 신체의 문제에 신경 쓸 겨를 없다. 청소년 시기는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라고 하는데 주인공 은비는 확립은커녕 다른 이유로 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마음의 나이 열다섯과 사회 나이 마흔다섯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30년 만에 깨어난 은비는 조카와 같은 반에서 공부해야 하고, 변화된 세상에 맞추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재미도 있었다. 자신이 좋아했던 아이돌의 아들이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고 학교 캠핑에선 중년이 된 아이돌을 만나게 되어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또 다시 큰 결정을 해야 할 일이 벌어지고 만다. 심장 치료약이 개발되서 깨어난 것인데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래서 다시 냉동 캡슐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다. 은비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또 다시 냉동 수면 상태로 들어갈 것인가, 짧은 삶과 영원한 수면을 선택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 독자도 고민하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은비의 결정을 여기 쓰면 큰 스포일러가 되므로 생략한다. 책을 함께 읽는 부모나 교사가 학생들과 토론해보면 좋겠다. 은비의 결정과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기술적인 부분은 어차피 상상이므로 자세히 언급하기보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결정에 초점을 맞추면 흥미로운 토론이 될 것이다. 다른 소설들도 토론거리가 많다. 이 책은 한 번에 읽기 보다는 한 편씩 소설을 읽고 그 소설에서 토론 거리를 찾아보는 활동을 해보면 좋다. 같은 소재라도 아이들마다 인상 깊은 부분이 다를 수 있으니 토론 거리도 다를 것이다.


세 번째 소설은 이선주 작가의 미끼.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이 많이 줄었지만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전혀 다르다. 비대면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쉬운 사례로 배달 음식 문화다. 예전엔 문을 열어 배달한 사람에게 직접 음식을 받고 돈도 지불했지만 요즘은 벨만 누른 뒤 음식을 문 앞에 두고 간다. 결제는 이미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전혀 대면할 일이 없다. 이 소설에는 A구역과 Z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A구역 아이들만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주인공 채아는 학교에 가지 않고 줌으로만 수업을 듣는다. 빈부 격차 문제, 비대면 교육 문제 등을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 수 있다.


마지막 소설 심너울 작가의 불법의 존재는 테라포밍(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및 위성, 기타 천체의 환경을 지구의 대기 및 온도, 생태계와 비슷하게 바꾸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소재다. 고도로 기술이 발달한 미래가 배경이다. 기계 아리가 인간에 의해 우주로 쏘아 보내졌는데 외계 행성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인간의 존재가 불법이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깨어난 아리는 이곳의 인간들이 합법적인 존재라면 도와야 한다.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이다. 작가의 무한 상상력을 따라가다 보면 청소년 독자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스토리 텔링법을 배우게 될 소설이다.


청어람 문학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을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게 되어 기쁘다. 중학생들과 재미있게 읽고 토론할 생각에 벌써 즐거워진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출간할 책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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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버지의 복수는 끝이 없어라 1~4 세트 -전4권 (완결) - 만화
강태진 지음 / 휴먼큐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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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카카오웹툰에서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강태진 작가의 <아버지의 복수는 끝이 없어라>가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 출간기념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1~2권을 받아 읽었다.


'복수' 키워드는 영화나 문학에서 심심찮게 사용되어 왔고 독자와 관객은 주인공의 복수가 성공하길 바란다. 특히나 요즘은 약한 사법판결을 대신해 사적제재를 가하는 내용에 더 감정이입 된다.

이 책의 주인공 맹도훈은 어린시절부터 고아나 다름없이 혼자 살았는데 갑자기 할머니를 찾고 아버지까지 만나게 됐다. 그런데 심각하게 꼬여있는 상태... 도훈은 아내 모르게 친구에게 1억이나 사기당했다. 할머니가 사는 동네 재개발로 집을 증여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치매, 할머니 집 창고에서 30년간 감금된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오게 되는데...

산너머 산이다. 과연 도훈은 빚을 해결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 걱정은 암것도 아닌 것! 갇혔던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도훈만 모른다는 사실. 한거풀씩 벗겨지는 사연은 반전에 반전이!!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니고, 누명에, 불륜까지!


그런데 줄거릴 쓰려니 죄다 스포라서 뭘 언급할 수가 없다. 그저 쫄깃하게 재밌고 실감나게 웃긴다는 건 확실하다!! 탄탄한 스토리 라인은 첨부된 연습노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부산 사람으로서, 넘 재미있었던 건 사투리였다. 경상도 사투리라고 뭉뚱그릴 수 없이, 딱 고마쎄리 마 부산 사투리다!! 네이티브 아니면 읽으면서 쫌 힘들었을 것이다. 연재 당시 사투리 해석 혹은 번역 댓글이 달렸을 게 분명하다.


아래 문장 해석이 가능하다면, 부산싸람!!

"지 아이라카면서 택시 타고 달라빼뿌대."

"이 새끼가 터진 주디라꼬 씨부리는 꼬라지 봐라."

"근데 이 자슥이 그 걸배이한테 홀킸는가, 안 온다캐요."

"보살님하고 충배 보살하고 다이다이 붙으면 누가 이기요?"

"당연히 제가 이기지예. 기혈을 팍 요래 찌시면 꼼짝도 못합니더."


과연 도훈의 아버지 영춘은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덕수의 복수는 성공할까? 불쌍하게 살아온 도훈에게도 볕들 날이 올까?
넘 궁금한데 1~2권이 끝났다.

어서 3~4권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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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새소설 1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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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라는 소설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요즘 얘기일거라 예상했다. 요즘 나는 도대체가,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답답해서 죽을 것 같고 화도 난다. 내겐 왜 그를 처리할 능력이 없는 것인지! 소설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제목만 보고 멋대로 기대했다. 부끄러운 시대를 건너려면 이러이러해야한다는 지침을 주지 않을까. 아니면 현실보다 훨씬 부끄러운 시대가 여깄으니 위안 삼으라 할 줄 알았다. 비장한 내 예상과는 달리 소설은 밝았고 예뻤다.


소설의 첫 문장 나의 아버지는 유령이다.”는 호텔 청소부의 정체성이다.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우리가 어떤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지점에 있다. 소설에서 작가가 사용한 단어는 유령, 우산, 부끄러움이고, ‘이봐요‘DO NOT DISTURB’도 있다.


수공예 우산을 만드는 강한해가 들려주는 그의 가족사에 놀랐다. 저렇게 순수한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이혼한 누나가 집으로 들어와 다시 세 식구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한다. 평생 같은 호텔에서 청소를 해왔는데 청소노동자로서의 유령 같은 정체성은 삶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삶의 태도를 부끄러움이라고 정의 내렸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직업이 같았지만 성격은 아버지와 정반대였다. 있는지도 모르는 청소노동을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선두에 나서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녀 인생의 첫 번째 행동은 고등학교 때 막말을 하는 담임에게 천하의 개새끼!”라 욕하고 교실을 나온 것이었다. 두 번째는 퇴학당한 막내딸을 집안의 수치로 여기는 부모에게서 당당하게 독립한 일이었다. 스무살 생일을 지나자마자 가출한 것이긴 하지만. 그런 어머니가 정반대의 인품을 가진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누나의 과감한 행동은 어머니를 닮은 것처럼 보였다. 남편 이빨 사이에 낀 고춧가루와 셔츠 사이로 삐져나온 가슴 털 한 가닥 때문에 밥맛이 뚝 떨어져서 이혼했다는 누나가 친정으로 돌아와 빈둥빈둥거리는 게 동생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김치찌개 국물과 블루베리 얼룩이 묻은 목 늘어난 티셔츠를 닷새째 입고 있는 누나가 아버지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커피까지 받아 마시는 꼴을 보니, 동생의 입에서 부끄럽지 않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가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쓸 때가 바로 저런 장면이다. 그런데 누나는 이혼이 부끄러운 거냐며 반문했다.


소설에서는 부끄러움이 수줍음, 좋아함, 존경심처럼 여러 모습으로 정의된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의 수줍어하는 부끄러움, 존경하는 이에게 부끄럽게 표현하고픈 경외감. 이런 것은 서두에 밝혔던 요즘 나의 부끄러움과는 다르다. 갑갑한 현실 때문에 내 사고가 갇혀버린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화두는 같은데 칙칙하고 답답한 현실과 이 소설은 달라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화자인 강한해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나는 아버지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없어선 안 될 직업인 청소부, 그것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하는 호텔 객실을 청소하는 유령 같은 존재인 아버지는 일상에서도 유령처럼 살았다.


지위에 맞지 않는 짓거리만 자행하는 자가 국가의 아버지 격인 리더랍시고 떡하니 자릴 차지하고선 제 행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이에 대학교수들과 문인들이 속속 시국 선언을 하고 있다. 첫 문장을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로 시작하는 경희대학교 교수들의 시국 선언은, 참담한 현실을 바꾸겠다는 의지다.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다. 사람들이 부끄럽다며 기피할 직업을 강한해의 아버지는 평생 성실하고 당당하게 수행했고, 생의 마지막을 유령처럼 마감했다. 소설 속 감염 상황은 코로나 팬데믹 시절의 장례와 같이 치러졌다. 그렇게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들에겐 대화록이 남았다. 수줍어서 비대면인 문자를 선호했던 아버지는 시인 같은 문장들을 남겼고 아들은 그 문자 대화록을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여긴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문자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정과 마음이 엿보여 지우지 않고 보관해 두었는데 태우거나 버리지 않을 유품이 될 것이다.


"우리 아들 한해 많이 지쳤지? 내일은 꼭 집에서 같이 저녁 먹자. 네가 좋아하는 순두부째개 해놓을게. 오늘 밤은 가을 달이 순두부처럼 말캉하구나."


아버지의 이런 감수성의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만남이 있었는데 그는 호텔 투숙객이었고 강한해의 스승님인 우산 장인이다. 우산을 손으로 직접 만드는 강한해의 이야기와 호텔을 청소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또는 겹쳐지며 진행되었다. 전혀 다른 직업의 작업 과정을 두 축으로 보여주다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스승님이다. 부자가 같이 존경했던 사람이었다. 한해가 스승님의 언행을 복기할 때마다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는데 아버지와 스승님이 호텔 직원과 투숙객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그 실체가 명확해진다.


이 소설은 참 신기한 소설이다.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자간의 갈등이 없다. 남매간의 격렬한 다툼도 없다. 가족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나 싶다. 하찮게 여겨지는 직업인 청소노동자와 함부로 버려지는 우산을 손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안에서 진정한 직업의식을 만날 수 있다. 고충만을 토로하거나 단점을 부각시키지도 비하하지도 않는다. 자주 등장하는 부끄러움은 그 외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한해는 아버지의 죽음을 한마디로 방해하지마!”라고 정의했다. 아버지는 생을 끝내고 나서야 저 말을 세상에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배제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말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시대를 잘 지키고 버텨냈기 때문에 한해는 자신의 삶이 부끄럽지가 않다. 자신이 바로 아버지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인생은 존버!’이란 말과 비슷하게 자주 쓰이는 버티고 견디는 게 인생이라는 말로 소설이 끝나서 조금 식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뻔한 게 인생이 아니던가. 다 달라보여도 죄 비슷하니까 말이다.


또 일반적이지 않은 것 하나는, 한해가 사귀게 될 여성 이봐요씨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고 소설이 끝난 것이다. 사람 대 사람의 만남에서 통성명은 기본이고, 소설 속에서 주요한 인물은 어떤 식으로든 불리어져 독자에게 알린다. 이봐요씨가 이름을 말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워서였을까...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자들이 분노를 유발하는 시대에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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