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진화하는 페미니즘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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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페미니즘이라는 부제를 달고 권김현영의 책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가 출간되었다. 왜 진화하는~ 이라는 부제를 달았을까? 이 책에는 총 5장에 걸쳐 60꼭지의 글이 실려 있고 이 글들은 저자가 2003년부터 2019년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16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담론화되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비롯,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지도 않지만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것들 등등을 다룬 내용들이다. 저자는 일련의 사건들을 톺아보며 한국 사회에서 진화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자신의 시각으로 정리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가 뭐냐고 묻는다면(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ㅎㅎ)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페미니즘이 뭐라는 걸 어디서 들었든 글로 읽었든 그 때 뿐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설명해 줄수는 없다. 페미니즘은 노동법이랑 비슷한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임에도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그때를 넘기며 살아간다.

 

나도 여자이기에 어렸을 때부터 결혼후까지 무수한 남녀차별의 경험을 했다. 부당하다고 식식거렸어도 그냥 여자는 그렇게 사는 거겠거니... 하며 살았다. 나 하나가 뭐 그리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나? 체념하고 살았다는 말이 더 적당하겠다. 최근에 자주 들리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말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다. 상황에 그리 맞지 않음에도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를 보면서 페미니즘이 일상화 되었고 그것을 이제 더 자주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혐, 남혐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는 걸 보니 남녀간에 대립과 갈등의 구도만 만들어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보려고 서평단에 신청해서 받아 읽게 되었다.

 

p.8~9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 알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늘 쓸모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여성을 둘러싼 현실은 지겨울 정도로 비슷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으므로 페미니즘의 유용성을 인정받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피해 증거를 수집해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여성은 진화하지 않는 존재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여성의 삶은 어떤 사회 혁명보다도 놀라운 수준으로 변화했다. 페미니즘은 이렇게 변화한 여성의 궤적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지, 몇몇 예외적인 여성의 영웅담만을 기억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 책에는 그 과정이, 생각의 여정이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는 흑역사이고 어떤 건 특정한 상황에서만 의미 있는 기록이다. 이런 흔적들을 남겨둔 것은 진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위 인용한 프롤로그의 내용으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따라갈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무엇이 올바른지 찾아가고, 진화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기록하는 기록자이다. 그녀가 짚어나가는 이 길이,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세계에 쉽게 발을 디딜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의 일상과 격리된 먼 곳에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다룬 사건들의 시간차는 16년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그리 먼 거리감으로 체감되지는 않았다. 일련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것들이 대부분이고 특별한 케이스도 있긴 했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내가 문제적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발견한 것이다

.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사건을 다룬 꼭지, ‘안희정과 재판부가 유죄다에서 저자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증거를 인멸하고 무시한 그들이 유죄라고 했다. 물론 안희정은 지난 9월 대법에서 징역을 받았다. 이 글은 그 전에 쓰여진 듯하다. 사실 나는 안희정의 판결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저 저런 인간들은 자신의 권력으로 여자들을 농락할 여력이 있고 그것을 충분히 행사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여자비서가 폭로한 저의가 궁금했다.

다른 경우는 일명 개똥녀 사건이다. 그저 지하철에서 개똥 안치우고 내린 여성을 비난한 사건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 여성에게 어마무시한 공격이 있었다. 저자가 이 사건에서 짚은 포인트는 그녀의 무례한 행동이 그 정도로 공격받을 사건이었나? 그렇다면 다른 지하철에서 무례한 남성들에 대해서는 왜 공격하지 않나고 물었고, 그렇게 공격에 동참한 남성들의 행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감히 어린 여자가 사람도 아니고 개를 우선시하며 나이 많은 남성을 무시하다니, 뜨거운 맛 좀 보라며 남성사회의 동맹과 힘을 과시한 소규모 전투였다. 여성이 취약한 집단이기에 더 쉬운 표적으로 지목되고, 여성의 무례함에 대한 대중적 공감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었기에 이길 것이 뻔했던, 너무도 지독하게 가학적인

 

최근 영화개봉으로 다시 핫이슈로 떠오른 책 <82년생 김지영>을 다룬 꼭지도 있다. 나는 책도 영화도 아직 보지 않았다. 주위에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소설이라기보다 고발르포에 가깝다며, 우리가 겪어온 이야기들이니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영화는 소설보다 괜찮더라고 하는 평가는 들었지만 아직 극장에 가질 못했다.

이 소설에서 포착한 시대정신을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요즘 무슨 성차별? 여성 상위시대지~”라고 말하는 것을 포스트 페미니즘적 감성이라고 부르는데, 성차별은 이미 지나가버린 문제거나 저 멀리 있는 다른 후진적 사회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렇게 낡아버린 문제처럼 보이게 만든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성차별적 현실이라고 비판한다.

이 소설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라고 했다.

 

자꾸만 다른 여성으로 빙의하는 김지영 씨를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밝혔다시피 책을 읽지 않았지만 나는 이 책을 불편해하는 젊은 남자들의 태도에 더 관심이 있었다. <90년생 김지훈>이란 책을 통해 자신들도 역차별을 받고 있으며 페미니즘을 외치면서도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여성들을 까발리고 부패한 페미니즘도 알려야겠다고 한 이들이 있었다. 펀딩으로 책을 내려고 했다가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82년생이고 미혼인 내 남동생의 입을 통해서 이미 여성 비판을 충분히 듣고 있다. 그 내용들은 자신의 경험도 있고 일베에서 회자되는 이슈들을 끌어와 말하는 것도 있다.

나는 궁금했다.

저들은 왜 억압받았던 여성들의 과거는 인정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불이익이 그녀들 탓인 것으로만 치부할까? 자신이 경험했던 극히 일부 여성들의 이중적 태도로 전체를 아우르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결론은 항상 그러니까 여자는 나쁘다, 이기적이다.’ 이런 식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사실대로 풀어놓으면 어떤 이들은 그게 더 어불성설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내가 쓴 이 리뷰를 읽어봐야 몇 명이나 읽으랴 싶어서 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류 역사 이래로 공고히 유지해온 남성의 기득권에 금이 가는 것을 위협이라고 느끼는 그들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물론 오늘날 남성들이, ‘지금 여성들이 무슨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조상이 오랫동안 누려온 것을 여성들도 정당하게 같이 누리자고 하는 것을 못견뎌 하고 있다. 90년생들을 평가한 책에서 보니 그들이 원하는 건 공정이라고 하던데 여성의 정당한 권리 찾기는 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건가? 그들이 말하는 공정의 대상은 남성만인가? 이해할 수 없다. 그들도 변화하는 시대와 여성의 권리찾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는 아주 서서히 변하고 있고 여성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느린 속도로 자신이 당한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밥그릇을 뺏기는 것으로만 여겨 혐오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는 차~~암 못났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이 책을 읽고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알았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을 정립한 것은 아니다! 그러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다른 책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얼마나 무감한 인간으로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가사노동과 명절 지내기에서 겪은 억울함과 부당함을 당연한 일로 여기며 살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 반응들을 보면서는, ‘참 유별나다, 누군 뭐 안 당했나? 경중의 차이일 뿐이지.’라고 시크한 척 했다. 이젠 어렴풋하나마 알겠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과 같은 태도로 살았으며 여성이라 당한 일들에 문제의식을 가지거나 행동하지 않은 채 길들여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아마 대부분 여성들은 나처럼 살았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성폭행이나 살해를 당하지 않은 것을 그저 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통해 나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알고 무엇이든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간 누린 권리는 무임승차 편이었으나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발걸음을 떼야 할 때가 아닐까. 페미니즘의 진화에 아주 작은 발자국을 찍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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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마커스 버킹엄.애슐리 구달 지음, 이영래 그림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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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그런데 띠지에는 더 놀라운 문구가 들어있다.

 

이제까지 당신이 믿어온 일 잘하는 법은 다 거짓말이다!”

 

그럼 그동안 우리는 헛발질만 했다는 말인가?

설마??

살짝 찔리는 게 있다.

회사 다닐 때를 떠올려보니, 출근하면 점심시간만 기다렸고 점심 먹으면 퇴근 시간만 기다렸었다. 회사를 다니긴 다니는데 일에 몰입하여 업무 성과를 내려고 애쓰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싶다. 그럼 이 책에서 다루는 일과 관련된 거짓말이 어느 정도 맞는지 궁금해진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직장인들이 보면 놀랄 문구로 눈길을 사로잡는 이 책을 한 번 파헤쳐보자. 지금 나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직장생활 했던 옛날을 떠올려보며 여기서 말하는 거짓말, 우리가 속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먼저 책에서 말하고 있는 9가지 거짓말부터 살펴보자.

 

첫 번째 거짓말 : 사람들은 어떤 회사에서 일하는지에 신경 쓴다.

두 번째 거짓말 : 최고의 계획은 곧 성공이다.

세 번째 거짓말 : 최고의 기업은 위에서 아래로 목표를 전달한다.

네 번째 거짓말 : 최고의 인재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다섯 번째 거짓말 : 사람들은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

여섯 번째 거짓말 : 사람들에게는 타인을 정확히 평가하는 능력이 있다.

일곱 번째 거짓말 : 사람들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여덟 번째 거짓말 : 일과 생활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홉 번째 거짓말 : 리더십은 중요한 것이다.

 

위 내용들을 얼핏 봤을 때, '뭐가 문제지?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다재다능한 사람을 인재라고 하지 않나? 직딩들에게 피드백은 필요하고, 워라밸도 중요하며 리더십도 중요한거 아닌가?

나 조직생활 그만둔지 너무 오래 됐나보다. 아니면 조직에서 리더였던 적이 없어서 영 감이 안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이제 표지의 강력한 문구대로 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박살내주는 혁명을 맛보아야 하겠다. 회사에 다니거나 리더라면 나와는 또 다른 자세로 이 책을 읽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일과 사람의 진실에 대해 확인하고 자신의 속한 조직에서 활용해보면 좋겠다.

 

일 망하게 하는 사람 아니고 일 잘하게 하는 사람, 즉 일에 관한 거짓말 말고 진실을 알아보자.

 

첫 번째 진실 :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팀에 있는지에 신경 쓴다.

두 번째 진실 : 최고의 정보는 곧 성공이다.

세 번째 진실 : 최고의 기업은 위에서 아래로 의미를 전달한다.

네 번째 진실 : 최고의 인재는 특출한 사람이다.

다섯 번째 진실 : 사람들은 관심받기를 원한다.

여섯 번째 진실 : 사람들에게는 자기 경험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일곱 번째 진실 : 사람들에게는 추진력이 있다.

여덟 번째 진실 : 일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홉 번째 진실 : 우리는 특출한 사람을 따른다.

 

이 책은 9가지의 거짓말을 다룬 각 장에서 왜 그게 거짓말인지 하나하나 반박하고 마지막에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이러한 진실이라며 거짓말에 대웅하는 문장을 선보인다. 각 내용마다 풍부한 통계자료와 사례를 이용하여 독자들을 설득한다. 나는 현재 직장인이 아니라 단박에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익히 유명한 사람들을 사례로 사용할 때는 이해가 쉬웠다.

 

예컨대 메시의 왼발 능력으로는 인재란 다재다능한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 특출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조직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사례에서도 마틴 루서 킹목사를 인용한다.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는 그의 강력한 영향력은 그의 능력이 다양해서가 아니라 집중적이고 독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늘날 리더는 프리싱킹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개성을 짓밟아야 할 결점으로 여기지 않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혼란이자 건전하고 윤리적이며 번성하는 모든 조직의 원료로 보는 포용력 있는 리더, 독단적 견해를 거부하고 분명한 증거를 찾는 리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보다 새로운 경향에 가치를 두는 리더, 무엇보다 내일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의 세상이 진정 어떤 모습인지 직시할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는 데 있음을 아는 리더가 바로 프리싱킹 리더이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일원들이 리더로 발전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분명 도움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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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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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은 갈 때마다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몇 가지 있다.

'언제 가면 조용히 감상할 수 있을까?'

북적이지 않는 시간대를 생각해본다.

'도슨트와 오디오 가이드 중 어떤 설명을 들어볼까?'

도슨트 해설의 경우에도 시간 확인은 필수다.


 

이런 고민의 이유는 감상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화가의 전시라면 한 번만 가지는 않는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드는 아쉬움은 엽서나 굿즈 구매로 달래기도 한다. 혹은 거금을 들여서라도 도록을 사기도 하는데 그림 사이즈가 작아도 보고 싶은 그림을 혼자, 조용히, 독점?하고 싶은 이유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감상가이드용 책이 나왔다.

오시안 워드의 <혼자 보는 미술관>이다.

이 책은 미술 감상 초심자들을 위한 안내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단 각 그림에 대한 설명이 한 두페이지로 길지 않아 부담감이 적다. 키워드를 제시하여 그대로 대입해가면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키워드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인데 감상법 각 단계의 영어 단어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영어라도 입에 착 붙는다. 이 키워드를 바로기억해서 순서대로 감상하는 것은 물론 무리다. 그러나 저자의 조언대로 책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보다보면 감이 올 것이다. 단, 주의사항이 있다.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후루룩 읽는 것은 비추다. 9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타불라 라사’식으로 감상하는데 몇 시간만에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책을 고른 독자라면 분명히 그림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미술작품 감상법에 대한 책이라는 사전 정보가 있었을 것이므로 설마 한번 읽고 말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출판사 리뷰단 자격으로 받았다. 받자마자 한 번 훑어보니 이 책은 한 번만 읽고 리뷰를 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ABULA RASA’의 키워드를 하루에 하나씩만 읽어도 열흘이 걸리고, 작품 하나하나에 대입해 감상한다면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릴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의 성격이나 배경지식에 따라 속도는 다르겠으나 이 책은 급하게 읽으면 제 맛을 알 수가 없다. 천천히 두고두고 곱씹으며 읽으면 그 참맛이 우러나는 책이다. 처음 본 그림도 여러번 보고 설명도 읽으면,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미술작품과 인문학적으로 연결한 에세이집은 여러 권 읽어보았는데 이 책처럼 감상법 위주로 만든 책은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그리고 속지가 두꺼운 것도 내 취향이라 마음에 들었다. 이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보통 책갈피 사용을 까먹고 책귀를 마구마구 접는 스타일인데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명화를 훼손하는 것만 같은,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마지막에 작품목록과 참고문헌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다른 책을 더 읽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제 TABULA RASA가 뭔지 알아보자.

Time (시간 : 오래, 자주, 계속의 힘)

Association (관계 : 말을 걸고 마음을 나누고)

Background (배경 : 아름다움의 출처를 묻는 일)

Understand (이해하기 : 얼마나 마음을 열 수 있는가)

Look again (다시 보기 : 작품도 내 마음도 매번 다를 때)

Assessment (평가하기 : 정답이 없다는 말은 정답이다)

Rhythm (리듬 : 간격과 박자와 배치의 유쾌함)

Allegory (비유 : 그럴듯한 생각과 있음직한 사실들)

Structure (구도 : 그림 속 풍경, 액자 밖 프레임)

Atmosphere (분위기 : 느낌은 아우라가 된다)

 

프롤로그에서 TABULA RASA로 감상법 설명 후에야 본문이 시작된다. 본문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주제는

Philosophy, Honesty, Drama, Beauty, Horror, Paradox, Folly, Vision 이다. 각 장의 영어 제목은 Art as~ 로 시작하고 한글로 제목과 부제를 따로 달았다.

1장을 예를 들면 영어 제목은,

Theme 1. Art as Philosophy 이고 한글로는 사유는 붓을 타고 : 철학이라는 캔버스 이다. 8개의 회화작품을 소개하며 미술에 표현된 철학적 세계를 고찰한다.

프롤로그에서 배운 감상법 중 RASA를 활용한 그림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p.83

리듬, 알레고리, 구도, 분위기의 원리를 활용해 재빨리 훑어보면 도움이 된다. 사진작가의 작업실처럼 양이 정면으로 환하게 조명을 받고, 그 뒤는 새까맣기 때문에 리듬은 단조로워 보인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양털이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닌지 흥미를 갖게 한다. 우리 시선은 화면을 가로질러 어린 양의 묶인 다리로 내려간다. 단순하고 꽉 짜인 구도에서 십자 모양으로 묶인 다리를 묘사한 이 아랫부분이 작품의 절정이다. 수르바란은 이 주제를 열 번도 넘게 되풀이해서 그리면서 복잡한 요소를 하나씩 버리고 가장 본질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머리 위 후광과 글자가 새겨진 회색 석판을 없애 관람자가 참고할 만한 요소를 거의 남겨 두지 않았다. 밝은 색조와 어두운 색조가 대조되면서 이상하게 과장되고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장면이 연출되어 분위기 효과도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알레고리 덕분에 우리는 이 그림을 희생양이 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렸다고 상상할 수 있다.


 

 

위처럼 각 장의 주제에 어울리는 그림들을 프롤로그에서 배운 감상법에 대입한 설명이 나오므로 초심자들도 쉽게 감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한 장씩 혹은 그림 하나씩 천천히 꼼꼼하게 보고 읽기를 추천한다.

이 리뷰에서 TABULA RASA 감상법 각각에 대한 설명을 모두 다 하는 것은 무리다. 그 중 배경에 대한 부분을 소개한다.

Background(배경)

우리는 유명 작가에게 붙은 천재라는 딱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의깊게 보지 않는다. 작품의 제목과 작가, 제작 시기만 알아도 작품 감상을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벽에 붙어있는 설명을 보고 정보를 조금 더 얻어 작품의 몇 가지 특징을 파악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야기 속에 담긴 종교적인 의미만 알면 다른 정보를 찾아서 읽지 않아도 충분히 감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성경 장면이나 신화 장면 때문에 당황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에는 자료를 더 찾아 나서기보다 여러분의 직감을 믿고 여러분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게 좋다. 언제나 그림을 먼저 찬찬히 감상하고 난 다음 설명을 읽어야 한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그림만 보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웬만큼 조예가 깊지 않다면 화가와 마라와의 관계,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배경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면 저자의 말대로 작품을 먼저 감상한 후 설명을 읽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아무런 사전정보없이 그림만 보면서 이렇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손에 쥔 편지는 받은 것일까? 쓴 것일까? 오른 손에 펜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쓴 것 같기도 하다.

죽은 사람 표정 치고는 평화롭다.

뒤쪽이 검기 때문에 마라의 벗은 상체와 흰 시트가 선명하게 부각되고 좌측에 치우친 몸이 안정적으로 보인다.

우측에 있는 상자 아래쪽에 쓰여진 글자는 마라와 다비드인데 두 이름을 써놓은 의미는 무엇일까? '

그림을 보며 위처럼 자유롭게 감상한 후 저자의 설명을 읽어보면 작품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것이다.

 p.29

자크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자 행렬이나 기념식을 준비하면서 혁명 정부의 선전 업무를 책임졌다. ‘민중의 친구’인 장 폴 마라의 초상화를 그릴 때, 빛의 효과를 이용해 그를 극적이면서도 영웅적으로 묘사하면서 죽음을 순교처럼 표현한 것은 그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전혀 놀랍지 않다. 피부병에 시달리던 마라는 증세를 가라앉히기 위해 목욕을 하다가 젊은 여성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 여성은 그림 속 마라가 쥐고 있는 거짓 편지를 이용해 마라를 만났다. 분명 아픈 상태였고 젖은 수건을 쓰고 있지만, 마라의 얼굴을 보면 죽어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듯하다. 그리스나 로마 조각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평온하고 부드럽고 깨끗한 얼굴이다. 마라의 축 늘어진 몸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모습과 비슷하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 <피에타>의 자세와 닮았다.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여러 요소를 거리낌없이 바꾸면서 피에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마라의 죽음을 모든 인간의 몸부림과 고통으로 해석하기 위해서였다. 수백 년 전의 작품인 피에타의 영향력은 그때까지 살아남아 마라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한 다비드의 그림에서 그의 존재감을 증명했다.


 

위 설명을 읽고 마라 죽음의 배경, 피에타 자세의 안정적 느낌, 다비드의 창작 의도까지 알게 되었다. 이처럼 그림 속에 숨어있는 스토리텔링을 알게 되면 훨씬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다.

각 그림들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읽는다면, 이 책은 천천히 오래오래 읽어야 할 책이다. 옆에 두고 나만의 도슨트로 삼기에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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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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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라는 제목과 보랏빛 표지 중앙의 원 안에 반짝거림은 환타지 소설의 느낌을 준다. 그런데 띠지를 벗기면 드러나는 그림, 잿빛 도시는 음습한 느낌이다. 띠지의 홍보문구에 이렇게 쓰여 있다.

 

국내 최초 재난공포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역작!’

 

김유정 소설 문학상 수상작가인 이경의 첫 장편소설 <소원을 말해줘>의 내용은 제목의 느낌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소설에는 시간적 배경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도시의 D구역에 격리된 사람들은 피부병에 걸려있다. ‘롱롱이라는 전설의 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평소 SF소설에 관심이 없거나 뱀에 대해 불쾌감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를 못 느낄 소재이다. 그렇지 않다면 뱀과 허물, 사람들의 소원과의 관계를 따라가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풍토병을 앓고 있는 D구역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방역센터에 입소해야 한다. 그곳에서 허물을 벗고 퇴소하면 다시 허물을 입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곳에서 이름 없는 여자 주인공, 파충류 사육사는 김과 후리, 뾰족 수염과 척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전설 속 거대 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영원히 벗겨진다고 믿고 있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D구역 사람들 모두의 소원은 허물을 벗는 것일까? 그들에겐 생존을 위한 간절한 소원이다. 그러나 전해져오는 전설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한 번도 확인한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설을 믿어야만 했고 그렇게 전해야만 했다. 이제 독자들도 제목을 따라가려면 그들의 소원을 쫓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전설처럼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그들의 허물을 영원히 벗을 수 있을 거라는 욕망을 품는다. 롱롱의 허물을 벗는 과정에서 파충류 사육사의 활약, 꿈틀대는 개개인의 욕망, 드러나는 제약회사의 음모가 드러난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뱀, 롱롱의 묘사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이동과 움직임이 한 눈에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육사가 비늘을 붙잡고 핸들링 할 때나 뱀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은 설득되었다. 등장하는 거대 뱀 자체가 상상의 산물이니 확연하게 보여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그러나 이 소재 덕분에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잘 그려진 것은 장점이다.

 

우리는 직접 겪지 않은 사건들, 뉴스로나 접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그저 그런 일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스쳐지나간다. 이 소설 속에서 제약회사와 방역센터(정부로 대변되는)가 그들의 이윤 추구만을 위해 저지른 일들도 D구역 이외의 사람들에겐 무관심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D구역외에 다른 구역은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조남주의 <사하맨션>도 이 소설과 유사하게 근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디스토피아적 세계로 계급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날 개인화, 파편화된 분절 사회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대와 참여는 헛구호에 불과하며 개인은 이미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으므로 상대에게 무관심한 채로 어떤 식으로 이용당해도 모른 채 끌려 다닌다. 이런 소설들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미래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소설적 재미로 만족하는 것을 너머 소설 속의 모습과는 다른 우리의 모습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공박사의 대사는 비관적이다.

도시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것만 있으면 다시……

 

D구역 사람들의 소원은 허물을 벗는 것이었다. 그들 개개의 소원 못지않게 다른 구역, 방역센터, 공박사 같은 이들의 소원은 다를 것이다. D구역 사람들의 절박한 소원은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다른 이들은 이 체제를 영원히 유지함으로써 그들의 이익과 안녕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 공박사의 마지막 말은 오싹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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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보이는 매력 아우름 40
김응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다음 세대가 묻다.

미생물은 질병을 일으키는 해로운 생물 아닌가요?”


 김응빈이 답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처럼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예사롭지 않은 가르침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샘터사의 아우름시리즈 40번째 도서는 미생물학자 김응빈씨의 책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이다. 아우름시리즈는 샘터사와 CJ 도너스캠프가 공동기획한 책으로 청소년을 위한 인문교양 시리즈다. 이번 책도 미생물 전문가에게 듣는 미생물의 세계에 대한 것으로 중학생 이상 성인독자까지 미생물에 대한 지식과 교양을 충분히 쌓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을 소개하고 있다. 마치 생물학 교과서처럼 사진과 그림 도표를 이용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준다. 미생물 안에 들어가는 세균과 곰팡이, 조류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미생물 감염과 퇴치의 역사, 유명 학자들의 연구등, 어른이 읽으면 학창시절에 배웠던 내용을 상기하거나 몰랐던 내용을 접하며 새로운 재미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저자는 미생물학자답게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인간과 공생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p.33~34

땅과 바다 깊숙한 곳과 공기에서부터 동물의 창자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가장 널리 퍼져 있습니다. 미생물의 다양성은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의 다양성을 합친 것보다도 크죠. 하지만 이 많은 미생물 가운데 현재의 기술로 배양할 수 있는 것은 약 1퍼센트 남짓입니다. 자연계에는 아직 우리가 접하지 못한 무수한 미지의 미생물들이 있다는 이야기죠. 우리는 그 수많은 미생물을 눈으로 볼 수도, 몸으로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무얼 하든, 어딜 가든 늘 함께합니다. 싫든 좋든 우리는 미생물의 세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미생물 없이는 인간의 삶도 없죠. 잊지 마세요. 미생물은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해야만 하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미생물 없이 우리는 일주일도 채 버티기 힘듭니다.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반려자이자 조력자인 미생물과 함께 조화 속에 살아가야만 합니다. 여기엔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인간은 이미 태아 시절부터 시작해서 출산과 육아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미생물을 어머니에게서 받습니다. 보통 세 살까지 구축된 인간 미생물체, 특히 장내 미생물은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속담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셈입니다."

 

3. ‘미생물은 축복인가 재앙인가에서는 대체에너지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쓰이는 사례와 탄저균, 페스트균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사례를 통해 미생물을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대한 숙고를 할 기회를 준다.

 

p.117

1925년 생물무기와 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일본을 비롯한 몇몇 열강은 이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국가들은 비밀리에 생물무기 실험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731부대는 1939년부터 1944년까지 5년여에 걸쳐 무고한 중국인과 한국인,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천인공노할 인체 실험을 자행했습니다. 주로 실험에 사용했던 균들은 탄저균, 브르셀라균, 콜레라균, 페스트균등이었고 이 생체 실험으로 사망한 사람만 무려 3000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제네바 협정이 갈수록 무력해지자, 1969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생물무기사용금지정책을 선언합니다. 이에 힘입어 1972년 세계 143개국이 비준한 생물무기협정이 최종적으로 체결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물무기의 위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9.11테러와 20184월 시리아 내전에 동원된 생화학무기가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9.11테러는 생물 무기 공격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어 커다란 공포와 충격을 주었습니다.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미생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자기들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으니 말입니다. 지혜롭다는 뜻이 담긴 인간의 종명, 사피엔스가 부끄러운 것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겠지요?

 

 

4. ‘나눔을 통한 공생의 아이콘에서는 다양한 곳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사는 미생물의 종류를 보여주며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들을 정리하고 있다.

지구의 어머니란 애칭을 받는 식물을 보면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굳건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감탄하는데 식물에게도 조력자가 있었다.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식물의 뿌리와 균근, 뿌리 주변에 있는 각종 미생물(특히 박테리아)이 복잡하고 긴밀하게 얽혀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균근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이 연결망을 우드와이드웹이라고 부른다.

식용 미생물인 버섯의 경우, 친환경 경제모델인 순환 경제에 이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온실에서 나오는 바이오매스와 배출수를 버섯 재배에 이용하고, 버섯이 성장하면서 내놓는 이산화탄소는 온실로 보내는 것이다. 온실 속에 이산화탄소 양이 2배 늘어나면 식물성장은 30%정도 증가하고 온실가스 배출감소효과도 따라온다.

미생물도 인간처럼 치열한 경쟁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소화관에 살고 있는 세균 수백 종이 그렇다.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온갖 이기적인 방법도 사용한다. 그러나 경쟁만이 있는 게 아니라 공생도 한다. 각기 기능에 맞게 공급망의 일원으로도 참여한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도 베풂의 테두리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공생이 중요하다. ‘공생의 반대말은 경쟁이나 기생, 홀로살기가 아니라 공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타인의 노력을 존중해주고 타인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 능력을 나누어 서로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미생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미생물처럼 살지도 못하면서 미생물 함부로 욕하지 말자며, 저자는 유명시를 패러디한다.

 

미생물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나눔의 미인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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