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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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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창비 출판사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사람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던 나는 4년전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면서 친정가족들로부터 이상한 눈빛을 받게 되었다. 최근엔 "비글구조협회" 라는 카페에 가입해서 실험동물들과 유기견의 고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프롤로그를 읽고 일단 책을 덮었다. 몇 해 전 ebs에서 본 프로그램의 영상이 떠오르면서 냄새까지도 같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 책이 르포라고 했는데 이 작가는?? 하며 작가 프로필을 보니 소설가였다. 아 그래서...

 

 1챕터 '어떤 시작'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왜 하려는지에 대한 설명이고 나오게 될 인터뷰한 이들과의 첫만남, 첫 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맛보기 정도인데 뒤로 갈수록 읽기가 힘겨워졌다. 어떻게 이 모든 사례를 취재하고 글로 다 써냈는지 놀랍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싶었다.

 

"어쩌라고? 그것들은 동물이잖아." 타자의 고통은 언제나 추상적이다. 동물이 겪는 고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발휘하든 하지 않든 그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2챕터 '새끼 빼는 기계들'은 번식장과 경매장의 실태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와 인터뷰한 이들을 보니 한결같이 타 존재에 대한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들인 것 같다. 이 챕터에는 애견미용사, 번식업자, 유기견보호소 소장이 나오는데 자신의 할 일만 하면 되지만, 개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며 못 본체할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허술하고 모순된지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인간은 더더욱 개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고 개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받고 있다. 강아지들이 경매장에서 등급별로 경매 처리되고 높은 값을 받기 위해서는 일찍 어미와 떨어져야만 한다. 그런  강아지들이 펫숍 윈도우에 장식된다. 읽을수록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 쳐지고 법을 바꿔야하는 국회는 뭐하나 싶어 분통이 터졌다.

 

 3챕터 '죄 없는 사형수와 무기수들'은 공설 보호소와 사설 보호소에 대한 이야기다.

 

"정부예요, 정부. 나라에서 제대로 된 동물 관련법을 만들지 않아서 생기는 일을 힘없는 개인이 독박쓰고 감당하는 거에요."

 

 "단지 애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우리 모두 유기견을 살리고 싶어서 구하잖아. 그런데 기껏 살려서 감옥살이 시키면서 뭣하러 구하는 거야?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어디 있어? 안락사 없고 평생 굶주릴 걱정 없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사람이면 자기가 평생 갇혀 살아야 하는데 죽임당하지 않고 밥 굶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할거야? 왜 얘들한테는 밥만 먹고 살라고 해? 왜 그거면 충분하다고 해?"

 

 공설과 사설보호소 실태에 관한 것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인간이 원하는 품종을 만들기 위해 혼종을 한 후 근친교배를 수십세대에 거쳐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개들을 '품종견'이라 부르며 비싼 값에 팔고 그 외의'믹스견'이라 불리는 개들은 키우다  버려지거나 잡아먹힌다.

 

 4챕터 '쓸모없어진 존재들의 하수처리장'은 개농장과 개시장 도살장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때는 몹시 불편하다. 그 장소들의 적나라한 묘사는 읽는 내내 힘들었다. 그동안 쟁점이 되었던 개의 식용이 과연 문화적 차이에 대한 논쟁뿐인가, 개식용을 합법화하는 것만이 대안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었다. 또한 우리가 마구 뒤섞어 사용하고 있 용어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도덕이라는 것도 어쩌면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가깝냐 안 가깝냐, 나와 함께할 수 있느냐 없느냐. 도덕이 뭐 대단한 양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이토록 이기적인 '나'에서 출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모든 동물은 먹어도 된다. 사람만 안 먹으면 된다, 이런 생각도 있는 거에요. 하지만 그게 인간 말고는 다 잡아 죽이자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그게 다른 종을 대하는 우리의 도덕입니까? 인간은, 우리는, 그래도 되는 걸까요?"

 5챕터 '어떤 응답'은 작가 개인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와 왜 개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을 포함한 동물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생명을 얼마나 싸구려 물건처럼 취급해왔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한 사회 안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존재가 목적이라는 인식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적으로서의 인간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스템 안에서 동물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이야기하는 일, 그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질문하는 일이 오로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의지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동물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데에는 아무 자격도 필요치 않다며, 미코라는 개가 자신에게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었기에 자격없어도 이 책으로 답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의 이 책이, 나 개인이 하는 작은 행동이 거대한 시스템에 작은 변화의 물꼬를 트는데 시작이 되길 바라며 나는 무엇을 할지 비장한 각오를 하다가... 박준시인의 추천의 글을 읽으며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옆집 사람들의 보신탕이 되고 말았을 그 비글, 누피의 눈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글을 키우진 않고 있지만 약 4개월간 비글구조네트워크 카페를 들락거리며 만난 비글들의 그 촉촉한 눈망울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이번 달 애들 사료값 모금에 동참하지 않았네... 얼른 송금해야겠다. 그리고 동물들의 고통을 볼모로 영위하고 있는 내 생활을 돌아보며 자격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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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김동식 소설집 5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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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이야기꾼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4,5권이 이달 초에 출간되었다.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열심히 글을 올리던 그를 유심히 관찰하던 김민섭 작가와 그의 글을 읽고 단번에 세 권을 출판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이 없었다면 "김동식의 스타 탄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 채 한순간 빛을 발하다 명멸해버리는 유성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한국 소설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수식어를 달아도 뻔하다는 말을 듣지않을 것 같다.

 1월에 출간 사연이 실린 기사를 보고 대체 어떻길래 하며 1권<회색인간>을 사서 읽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읽어보라며 권유했고 1권은 미국 사는 아이 셋 있는 친구의 생일선물에 동봉해서 보냈다. 그 집에는 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이 있어 온 가족이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좋을 것 같다. 4,5권 출간 기사를 보니 5권의 주제들이 끌려서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전권을 선물로 받았다. 누구는 기피 선물 1번이 책이라지만 나는 명품백보다도 반갑고 좋은 것이 책 선물이다. 뛸듯이 기뻤다.

 5권을 먼저 펼쳐들었는데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하... 그런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나만 그런가??)1권때도 그랬다. 김동식씨 소설은 이게 맹점이다. 허나 방법은 있다. 나처럼 썽질 급한 사람들은 일단 끝까지 읽은 후 다시 한 편씩 숙독해야 한다. 각 편마다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기 때문에 곱씹으며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면 좋다. 생각할 때마다 선택이 바뀔 수도 있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박완서 선생님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늘 세상 고고한 척 똑똑한 척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늘 그 주인공이 가장 헛똑똑이이고, 합리적이라는 말을 가장한 비겁한 인물이라는게 드러난다. 김동식표 주인공들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의 까발려진 민낯에서 내 얼굴을 볼 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알고 행한 것과 모르고 행한 것의 차이"에서는 교통사고로 어린아이를 친 주인공에게 생명교환 서비스 직원라는 사람이 나타나 어린아이가 아닌 사람을 죽인 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여러 생명체의 목숨값을 매기고 그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 그 매겨진 가격을 연신 저울질하는 주인공에게 직원이 기억을 지워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갚을 여력이 되는 100만원짜리를 선택한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도 모진 존재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끝이 난다. 생명이 소중하다고,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성토하던 인간들도 정작 본인이 궁지에 몰리면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은 사라져 버리게 된다.

 제목으로 쓰인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를 읽으면서는 영화 "데몰리션"이 생각났다. 아내와 함께 하는 것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두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은 모두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내가 죽었는데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한다. 자신의 감정을 모르는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이기는 하나 자신이 아내를 몹시 사랑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도덕적 딜레마에 주인공을 던져 두고 그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독자들에게 맞춰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이 소재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 아직 두 권만 읽었는데 각 이야기마다 이런 상황을 아주 빈번히 사용하는데 그리 질리지는 않는다. 것도 참 신통방통한 일이다.

  "김남우,김남우,김남우"에서도 주인공들을 극한 상황에 몰아부쳐놓고 선택하라 한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라는 조건을 묻는다. 동명의 셋중에 둘은 복제 인간, 하나만 진짜 인간이다. 진짜를 가려내고 둘은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어떤 기준으로 인간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선함? 관계성? 무언가를 남겼을 때? 주인공들이 고민하는 동안 나도 똑같이 고민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도 그들처럼 명확하게 하나를 꼽지 못했다. 다만 가중치를 두고 몇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인간의 조건에 대해 묻는 거라 생각했고 인간이라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즉 이타주의를 말하려는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둘은 죽고 한 명은 살아 남아 인간인지 복제인지 확인하는 순간이 오는데 어김없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독한 아이러니가... 그리고 작가는 묻는다. 둘이 죽을 때 억지로 타의에 의해 살아남은 듯 보이는 나머지 한 명, 생존자, 그의 행동은 과연 타의였을까??

 이렇듯 5권에서는 인간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김동식표 소설이 저장된 화수분이 깨어지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그 화수분이 문지르면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였으면 좋겠다. 다행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출판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 같은 존재, 한기호 소장이 김동식 작가가 글만 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게속 고민 중이라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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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꼬닐리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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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의 작가 '꼬닐리오'씨에게는 미안하게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유명 작가이고 이번 책은 두 번째 출간한 책이다. 그림이 따뜻하고 예쁘다. 받아서 일단 그림 위주로 스르르륵 넘겼는데 진짜 캐릭터가 너무 귀엽다~~

작가의 말을 보니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내일을 위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요즘 부쩍 어릴적 추억이 떠올랐는데 더욱 공감이 될 것 같은 기대감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면은 보여주지 않고 옆얼굴로 말한다. 그런데 그림 옆 글을 읽으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다~~ 상상이 된다. 신기하게도... 그래서일까? '상상'에 대한 명문구들이 나온다. 그림이 아기자기하고 귀욤귀욤해서 옛추억 떠올리기에 제격이다. 짧지만 그림과 딱 맞춘 글도 좋다. 옛 추억 떠올리고플때, 엄마 생각 날 때, 전학가서 다시 못보게 된 친구 생각 날 때, 이 책을 추천한다.  

 

 나에게 지속되고 싶은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난 시간을 톺아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지난 시간은 역시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이다. 고등학교 보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지냈던 순간들이 더 기억에 남고 중학교 친구들이랑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다. 학교 가는 게 마냥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뭐가 그리 우스웠는진 기억도 나지 않지만 깔깔거리며 한없이 웃었더랬다. 결코 헤어질 일 없을 줄 알았지만 이별의 시간은 찾아왔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뿔뿔히 헤어졌다. 어젠 얼마전 남편 직장따라 미국에 간 중학교 때 절친에게 생일선물로 책을 여러권 보냈다. 영어울렁증 때문에 한글로 된 책을 보고 싶다고 해서... 그 친구도 이 책을 보며 나와의 추억을 떠올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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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장석주 지음 / 마음서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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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는 장석주 작가~~하면 글의 종류 가리지 않고 쓰는 다작에다 명문장 메이커이다. 이번 신작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에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명문들이 우수수 쏟아져 읽다가 앞으로 돌아가 보고, 다시 돌아와서는 '이 문장을 한 번 써볼까, 아니 이걸 써볼까?'하며 독자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감나무 가지에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날아와 우는 늦가을 저녁, 고요가 산에서 내려온 키 큰 짐승처럼 부엌 안쪽을 우두커니 들여다보곤 했지요. 그 시절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한 나는 머리를 산발한 채 흑염소처럼 울부짖으며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았어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벌겋게 발열되었지요. 그러나 그리움이 독으로 변해 내 안쪽을 까맣게 태울 때조차 나는 애써 태연했어요.

 

 우리는 지나간 것과 다가오는 찰나에 종속되면서 시간의 커다란 띠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이라고 부르는 이 찰나에 잠시 멈춰 서서 서로를 호명하는 게 아닐까요? 이 찰나, 서로를 그리워하며 애타게 서로를 부르는 이 시각은 당신과 나의 '첫'입니다.

 

 지금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당신이 언제 어디에 있든 사랑한다고 말하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사랑은 '사랑한다'는 말 속에서 번성합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는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이미 식은 건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외로운 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지금 당신이 고독하더라도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고독을 감당하는 존재들이지요.

 

답장 : 당신, 고마워요!

 오늘도 당신의 편지를 한 통 읽습니다. 오늘 당신은 '레이먼드 칭'이라는 화가의 화집을 샀네요. 그림 속의 남자를 제게도 보여 줬어요. 저도 그 남자를 응시합니다. 이 건장한 사내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눈가의 주름과 긴 머리카락, 덥수룩한 턱수염은 온화함을 풍깁니다. 표정도 밝아요.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도 같아요. 아마도 사랑하는 이가 사내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 같네요. 이 그림을 보며 당신의 편지가 제게는 이 남자의 표정과 같음을 깨달았어요.

 

 떠나고 싶다고 훌쩍 떠나버릴 수만은 없는 현실속을 사는 저에게 보내주는 당신의 소식은 소풍날을 기다리는 설렘과도 같습니다. 복닥거리는 이 곳,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 당신 덕분에 호주의 어떤 숲속을 거닐기도 하고 뉴질랜드 어느 해변의 모래를 밟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갑갑한 일상을 견디게 해 준 청량음료입니다. 그래서 힘들다~~며 징징거리지 않고 당신의 편지를 기다리고, 또 읽는 즐거움으로 행복했답니다. 마지막엔 언제나 정겹게 '당신, 잘있어요.'라고 해주었지요. 저도 당신에게 답하고 싶습니다.

 

"당신,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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