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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ㅣ 김동식 소설집 5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평점 :
2018년,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이야기꾼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4,5권이 이달 초에 출간되었다.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열심히 글을 올리던 그를 유심히 관찰하던 김민섭 작가와 그의 글을 읽고 단번에 세 권을 출판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이 없었다면 "김동식의 스타 탄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 채 한순간 빛을 발하다 명멸해버리는 유성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한국 소설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수식어를 달아도 뻔하다는 말을 듣지않을 것 같다.
1월에 출간 사연이 실린 기사를 보고 대체 어떻길래 하며 1권<회색인간>을 사서 읽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읽어보라며 권유했고 1권은 미국 사는 아이 셋 있는 친구의 생일선물에 동봉해서 보냈다. 그 집에는 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이 있어 온 가족이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좋을 것 같다. 4,5권 출간 기사를 보니 5권의 주제들이 끌려서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전권을 선물로 받았다. 누구는 기피 선물 1번이 책이라지만 나는 명품백보다도 반갑고 좋은 것이 책 선물이다. 뛸듯이 기뻤다.
5권을 먼저 펼쳐들었는데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하... 그런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나만 그런가??)1권때도 그랬다. 김동식씨 소설은 이게 맹점이다. 허나 방법은 있다. 나처럼 썽질 급한 사람들은 일단 끝까지 읽은 후 다시 한 편씩 숙독해야 한다. 각 편마다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기 때문에 곱씹으며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면 좋다. 생각할 때마다 선택이 바뀔 수도 있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박완서 선생님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늘 세상 고고한 척 똑똑한 척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늘 그 주인공이 가장 헛똑똑이이고, 합리적이라는 말을 가장한 비겁한 인물이라는게 드러난다. 김동식표 주인공들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의 까발려진 민낯에서 내 얼굴을 볼 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알고 행한 것과 모르고 행한 것의 차이"에서는 교통사고로 어린아이를 친 주인공에게 생명교환 서비스 직원라는 사람이 나타나 어린아이가 아닌 사람을 죽인 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여러 생명체의 목숨값을 매기고 그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 그 매겨진 가격을 연신 저울질하는 주인공에게 직원이 기억을 지워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갚을 여력이 되는 100만원짜리를 선택한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도 모진 존재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끝이 난다. 생명이 소중하다고,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성토하던 인간들도 정작 본인이 궁지에 몰리면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은 사라져 버리게 된다.
제목으로 쓰인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를 읽으면서는 영화 "데몰리션"이 생각났다. 아내와 함께 하는 것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두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은 모두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내가 죽었는데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한다. 자신의 감정을 모르는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이기는 하나 자신이 아내를 몹시 사랑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도덕적 딜레마에 주인공을 던져 두고 그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독자들에게 맞춰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이 소재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 아직 두 권만 읽었는데 각 이야기마다 이런 상황을 아주 빈번히 사용하는데 그리 질리지는 않는다. 것도 참 신통방통한 일이다.
"김남우,김남우,김남우"에서도 주인공들을 극한 상황에 몰아부쳐놓고 선택하라 한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라는 조건을 묻는다. 동명의 셋중에 둘은 복제 인간, 하나만 진짜 인간이다. 진짜를 가려내고 둘은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어떤 기준으로 인간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선함? 관계성? 무언가를 남겼을 때? 주인공들이 고민하는 동안 나도 똑같이 고민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도 그들처럼 명확하게 하나를 꼽지 못했다. 다만 가중치를 두고 몇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인간의 조건에 대해 묻는 거라 생각했고 인간이라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즉 이타주의를 말하려는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둘은 죽고 한 명은 살아 남아 인간인지 복제인지 확인하는 순간이 오는데 어김없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독한 아이러니가... 그리고 작가는 묻는다. 둘이 죽을 때 억지로 타의에 의해 살아남은 듯 보이는 나머지 한 명, 생존자, 그의 행동은 과연 타의였을까??
이렇듯 5권에서는 인간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김동식표 소설이 저장된 화수분이 깨어지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그 화수분이 문지르면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였으면 좋겠다. 다행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출판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 같은 존재, 한기호 소장이 김동식 작가가 글만 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게속 고민 중이라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