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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슬픈 호랑이>를 읽으면서 막막했다.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쓰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찔한 순간이 닥쳐 여러 번 책장을 덮어야 했다. 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리뷰를 쓰기도 힘들었다. 이 책은 의붓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한 딸의 회고록 형식이다. 그러나 순차적이지 않으며 에세이와 소설, 비평을 넘나든다. 작가는 쓰기 싫은데도 책을 쓰는 이유를 내내 자문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라면, 이 책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독자인 나는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작가는 어릴 때 계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학대를 당했는데 성인이 되어서야 주위에 알렸고 그를 법정에 세웠다. 그러나 처벌은 가벼웠으며 형 집행 후 그의 삶은 놀라우리만치 평화롭고 생산적이었다. 작가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 작가나 유사한 소재로 다루어진 문학을 비교했고, 다큐나 실제 상담 뿐 아니라 프랑스 유명인 가족의 사례까지 소환한다. 이것은 아동 성학대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반해 묻혀 있는 경우가 많으며 처벌도 미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또 묻는다. 이러한 것을 알리는 프로그램이나 책의 방향성과 그것을 보거나 읽는 이의 초점에 대해.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이 그러한 소비에 부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미가 있는 것인지, 구원받길 바라는 것인지, 계속 묻는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질문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이 책을 선택한 자신은 무얼 기대한 거지? 책을 읽다가 스스로를 검열한다. 관음증이 있었던가? 죄의식도 생겨난다. 피해자의 고통에 얼마만큼 공감이 되는가...
나는 작가의 고통에 힘겨워 여러 번 책을 덮었다 폈다 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글이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깊이 생각하게 했다. 세상이 아름답고 평온해 보여도 악한 인간은 위장한 채 숨어 있고, 법은 여전히 소아성범죄에 관대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기란 힘들다는 것을. 내가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어서 답답하다. 책에서 다룬 것들을 하나하나 인용할 수도 없고 격렬한 공감을 하기엔 과도해 보일 것 같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가족, 계부 이야기를 자세히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나 같은 독자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드러내야만 했던 더 큰 이유는 자신의 딸 때문이었다. 작가 뿐 아니라 여러 사례를 보면 소아성범죄 피해자는 주위에 알리지 못한다. 끝끝내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삶이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피폐해진 정신과 육체로 성인이 되었을 때 암으로 발현되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성장하는 딸을 보며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작가는 가해자에게 영향을 받은 자신이 그와 같은 인간종이라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럼에도 작가는 괴물과 자신을 구분하고자 이 책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한 질문 중에서 아래 문장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p.333
내가 과거의 처지를 잊고 나보다 작은 존재를 억누를 위험은 없을까? 나보다 강한 어떤 힘에 맞서 일어서면서도 다른 힘을 억압하는 쪽으로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악을 초월하면서도 새로운 악을 향하지 않고 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 선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될까?
소아성범죄는 섹스보다는 권력으로 휘두른 폭력에 더 무게를 둔다. 가해가 멈추거나 가해자가 사라진다 해도 한 인격이 당한 피해는 성인이 되어서도 육체와 정신을 황폐하게 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묻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경고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도 섞여있고 선과 악의 구분조차 모호하다고. 저도 모르게 악에 빠져들 수 있으므로 경계하자고. 경계에 서 있으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말자고 한다. 비틀거릴지언정 그 속에 떨어지지 말자고!
책의 주제와 조금 어긋나긴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사실적이고 진실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작가는 글쓰기가 치료법이 된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정석처럼 알고 있던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글을 쓰다보면 어느 정도 치유가 된다.’는 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이다. 나는 항상 내 이야기를 쓰면서 호주머니 뒤집듯 다 꺼내놓지 못했다. 거짓을 쓰는 건 아닌데 늘 찜찜함이 있었다. 그럼 아예 소설을 쓰면 되겠다 싶었지만 그건 또 깜냥 부족이다. 진실과 진솔 사이를 헤매다 사실에라도 근접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글쓰기는 쓰면 쓸수록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