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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ㅣ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평점 :

청량감을 주는 파도색과 샛노란 유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책이다. 제목 <유자는 없어>와 파도의 물방울에도 노랑을 썼다. 상큼한 표지의 느낌과는 다른 어감의 제목이다. 유자는 유자차 만드는 과일, 유자가 맞는데 주인공 유지안의 별명도 유자다. 김지현 작가의 신작 <유자는 없어>는 경남 거제를 배경으로 하는 청소년 소설이다. 지역이 배경이어도 주인공들은 늘 표준어를 사용하던데 이 책은 등장인물들이 사투리를 써서 현실감이 있다.
성이 유씨이고 유자빵집 딸이라 별명이 유자인 유지안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전교 1등을 뺏기고부터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하고 지방 소도시 거제라는 곳에서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모가 사는 부산으로 가서 공부하라는 권유에 불안하다.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반대로 이곳 저곳 전학 다니다 거제로 온 김해민은 별명이 전학생이고, 정주하는 삶의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지안의 절친 고수영은 다시 태어나고 싶은데 개명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등학생 셋의 고민과 일상이 거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한달살이 하러 지안의 동네에 온 성인 혜현 언니의 이야기까지 더해진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삶이란 대개 수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 비슷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누구나 성적 고민을 할 것 같아도 가족이나 친구 관계, 외모 등 저마다 제각각의 고민이 있는 게 당연하다. 거기에 살고 있는 곳이 수도권에서 아주 먼 곳이라면 지방 소외감도 한몫 한다. 왜 보고 싶은 공연은 서울에서만 하는지 좀 억울하고, 기를 쓰고 이곳을 떠나려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어른이 되면 서울로 가야만 할 것 같다. 지금 당장 답을 구할 수 없는 고민들은 뿌연 안개 속 같다.
그런 고민도 그저 한 때이고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리기엔. 그 시절을 지나온, 여전히 지방에서 살고 있는, 나 같은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다. 뭐라 조언을 하기엔 몹시 진부한 말잔치를 늘어놓을 것만 같아서 입을 열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를 화려하게 포장된 커다란 선물 상자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지 말고, 당장 앞을 볼 수 없으니 아무 것도 아닐 거라 회의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는 말해주고 싶다. 더 이상의 흰소리보단 이 책 <유자는 없어>를 슬며시 건네주겠다. 누구보다 섬세한 감성을 지닌 지안의 일기장 같은 글을 읽다보면 청소년 독자는 자신과 비슷한 면을 발견하면 반갑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등장인물에 놀라게 될 것이다.
p.112
특별할 것도 없는 바다를 보며 저렇게 감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더 이상의 궁금증이나 기대가 일어나지 않는 이 도시에서 의미 있고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는 그 눈이 부러웠다.
p.123
“그래도 만약에 여길 떠날 수 있다면......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요.”
어디에서도 꺼내 본 적 없는, 나도 알지 못하던 마음이었다. 떠나고 싶다는 말은 지금 여기가 싫다는 뜻이 된다. 타고난 배경이 불만족스럽고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그 마음과 마주 보기가 싫었다. 인정하는 순간 지금의 내 모습이 초라해질 테니.
p.160
천천히 숨을 골랐다. 호흡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러다 터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뛰었던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려 금방 쓰러질 것 같아도, 시험을 망쳐서 인생이 망한 것 같아도,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유지안이었다.
p.181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인사도 제대로 못 한 채 도망치듯 떠나는 것이 어른이 되는 한 과정인 걸까. 재희는 이런 얄궂은 헤어짐을 계속 겪어야 한다면 차라리 스물이 되는 일을 미뤄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겨울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