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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정보라.최의택 지음 / 요다 / 2025년 12월
평점 :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제목이 비장하지 않은가!
나는 본 글을 읽는 사람에게 어떤 선입견도 주고 싶지 않다.
그런 리뷰를 쓰고 싶다!!
이미 다른 리뷰를 읽었을 수도 있고, 책 소개에는 스토리를 예측 가능한 정보들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처음 먹은 마음대로 쓰려고 한다.
책 소개를 읽는 순간 내 눈 앞에서 여러 장면이 휙휙 지나갔다.
나를 사기 쳐 먹은 사기꾼의 얼굴과 계약서 같지도 않은 계약서,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떠들어대던 윤가의 얼굴, 그리고 정보라 작가.
나는 이성적인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 순간의 판단 미스 아니, 한 순간이 아니라 귀신에 씐 듯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상태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돈을 보내고... 그렇게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p.94
“포항 사진을 찍으니까, 포항에 사는 줄 알았다고요. 그래요, 참 단순해요. 그래서 사기도 당한 거겠죠. 바보처럼.”
“사기 당한다고 바보 아니에요!”
느닷없는 역정에 의택은 깜짝 놀랐다.
“바보라고 사기당하는 것도 아니고, 사기는 그냥 사기예요. 사고 같은 거라고요!”
나는 저 대화를 읽다 순간, 세차게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나도 바보 아니다. 그런데 위로까지 되진 않았다. 사기를 당한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고개 끄덕이며 읽을 만하고, 책에 나오는 각종 사기 수법을 보며 저런 것들이 내게 또 닥치면 이번엔 눈 밝게 피해가리라, 다신 사기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순삭했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그렇게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미리 밝히는 것이다. 사기 당한 사람의 입장으로서.
사기 당한 적 없는 독자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것이라 장담한다. 일단 보라와 의택의 케미(케미라는 말이 웃기긴 하지만)가 헛웃음 터지게 한다. 석유시추공 분양 사기 피해자인 두 사람이 만나 사기꾼들 잡으러 포항으로 가는 길은 로드무비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고속도로 위, 경차 레이 안에서 벌어지는 둘의 대화는 블랙 코미디 같고 각자의 사연이 나올 때는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 와중에 펼쳐지는 포항 풍경은 멋들어지고 동해안 명소와 과매기 설명까지 읽다보면 이거슨! 포항 홍보 소설인가? 포항시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해야겠는데...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포항이 정보라 작가의 시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작가의 글'을 읽어보니 기어코 경북 관광 홍보를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결말 부분에선 남편의 권유(아닌 경미한 압박ㅋ)도 있었던 모양이다. 아, 작가의 글도 소설 못지않게 재밌다. 이 소설은 마치 한 사람이 쓴 것 같지만 두 작가가 어떻게 의기투합해서 릴레이 형식으로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정보라 작가의 책은 여러 권 읽었지만 최의택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정보라 작가의 영향을 받아 SF를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제 1회 문윤성 SF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는 에세이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을 먼저 찾아 읽었다. 작가는 근위축증 때문에 중학교 때 척추 교정 수술을 받았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니기 힘들었다. 휠체어를 타고도. 그리고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에세이를 읽어보니 작가의 모습이 의택의 캐릭터에서 엿볼 수 있어 작가를 한층 더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포항에 가면 뭐? 덤앤더머 같은 둘이 사기꾼을 잡는다고? 잡히길 바라긴 했으나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99%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궁금한가? 책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나는 날린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 0이고 아직 해결된 게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의 감옥 속에 갇혀있다.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은 그 감옥 속에서 잠시 나올 수 있다. 이 리뷰가 별로라면 내가 사기를 당한 사람이라 그렇지 책은 정말 재미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