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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의 작가 바바라 몰리나르는 평생 글을 쓰는 족족 파기했다는 책 소개를 읽고 흥미가 일었다. 왜 그랬을까? 그녀는 왜 자신의 글을 남기기 싫었을까? 궁금해 서평단에 신청했다. 서문을 읽어보니 작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글을 없애왔는데 뒤라스의 끈질긴 권유로 1969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가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작가는 1986년 세상을 떠났다.
p.11
이 책에 실린 글은 지어낸 것도 꿈을 꾼 것도 아니다. 이 글은 살아낸 것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살아낸 것에는 글쓰기도 포함되어 있다. 글쓰기는 경험이다. 그것은 고통이라는 여정 속에서 내딛는 한 걸음이다. 글쓰기가 없으면 부동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 세상에 만연한 혼란 속에도 놀랍도록 일관된 게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이다. 그 끔찍한 얼굴과 텅 빈 얼굴 사이에서 둘을 이어주는 것은 바바라의 고통이다.
이 책에 실린 14편의 소설들은 모두 낯설다. 위 인용한 뒤라스의 서문에서처럼 바바라 몰리나르의 고통이 문장 사이사이에서 넘쳐흐른다. 각 소설 주인공들의 불안과 공포가 읽는 이에게 전염되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게 한다. 기존에 읽어온 소설들과 느낌도 결도 다르다. 몰리나르의 소설은 불친절하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사건도 일어나지만 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는지 명확하지 않다. 개연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어떤 소설은 얼른 끝났으면 싶었고, 어떤 소설에선 살짝 기대를 품게 했다가 여지없이 뜨악했다.
소설을 읽으며 주제를, 의미를, 어떤 은유가 있는지 따지기보다 나는 작가가 궁금했다.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사진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남편의 스튜디오에서 15년간 일했다는데 몹시 힘들었을까?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하기에 이런 글들을 썼을까? 허구 같지만 실재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너무나 초현실적이라 SF적이기도 했다. 주인공들은 불안하고 고통 안에 있고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닿지 못한다.
“머리 없는 남자”의 주인공 여자는 사랑하는 머리 없는 남자에게 머리가 생기자 도망친다. 죽은 그녀를 발견한 남편은 사랑했다고 속삭인다.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였다. “만날 약속”의 주인공 X는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어딘가에서 헤매는데, 매일 바위를 들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형벌 같은 행위를 해야만 한다. 왜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고 벌거벗은 채로. 읽다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X는 그 사람을 만날 수나 있는 걸까? 마지막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짐승 우리”다. 중반까지 나는 희망적이었다. 여자 주인공에게 행운은 일요일에 쉬는 것이었으나 즐기는 방법을 몰라 막막했다. 그녀는 동물원 철창 안의 동물들이 슬프고 외롭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수치심을 느꼈다. 사랑이야기를 읽으며 고독을 생생하게 깨닫고 밤새 울었다. 외로웠던 그녀 베르트가 피에르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불안불안하더라니 둘이 동물원에서 봤던 보아뱀을 발단으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결국 피에르가 사고로 죽고 베르트는 미쳐갔다. 마지막에 그녀에게 떠오른 생각 하나로 행복해졌다고 하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마지막 두 문장에 반전이 있었다.
그들에게 보아뱀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독자들은 보아뱀을 어떻게 생각할까? 보아뱀은 부부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는 트리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부부마다 트리거는 다르겠지만 크게 보면 어슷비슷할 것이다. 나는 소설의 마지막 줄을 읽으며 결국 그녀는 고독했던 모습으로 되돌아 간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였던 그녀가 남자를 만나 행복했다가 결국 혼자가 되어 행복해졌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어찌보면 그녀는 자아를 되찾은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짐승 우리는 결혼 제도인가?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