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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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책 제목이 너무 따뜻하다. 내용은 읽어내기 쉽지 않다. 나는 힘들었다. 저자가 투쟁해 온 것들 중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여전한 것도, 뒷걸음 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안들도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위정자들은 돈과 권력을 차지해 휘두르고, 목숨 내놓고 일하는 노동자들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아직 있다.


이 책은 저자 박래군의 자서전이자 한국 인권사이다. 그의 삶이 곧 역사인 셈이다. 문학청년을 꿈꾸던 그가 1981년에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시대가 부른 것일까. 아니, 아버지의 작명이 삶의 방향을 정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올 래) (무리 군) 데모만 하고 살거냐는 아버지께 그는, 무리와 어울려 데모하면서 살라는 이름 뜻대로 살고 있다고 답했다. 이래저래 인권의 길은 그의 운명이었다. 인권운동가로 산 그의 45년은 한국 민주화운동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막혔던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제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권을 외쳤던 사람들은 권력자에 의해 인권을 박탈당했고 목숨까지 뺐겼다. 너무 화가 나고 답답했다.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던 인권 유린 현장을 글로만 읽어도 이러한데 저자는 대체 45년이나 활동가로 어떻게 살았다는 걸까?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책을 읽는 것 밖엔... 그의 활동을 따라가다보니,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이 그렇게 된지 불과 몇 십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미안하고 고맙다.(... 요새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 이런 심정이다!) 맨날 지는 일만 하고 있다는 그의 활동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권리도 없었을 것이므로.


인권을 말할 때 앞에 천부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천부인권은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가지는 권리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현실에 그 단어가 있지만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인권! 인권!을 외쳐야 한다.


1장 문학청년에서 운동가로 에서는 전두환 독재 정권에서 투쟁하다 처음 투옥된 경험이 그의 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p.60

다시는 교도소 안에서 소란을 떨지 않고, 규율을 잘 지키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포승줄로 묶였던 팔과 다리는 물집이 터져서 쓰라렸고, 잘린 혀는 통증이 심해졌다. 하지만 퉁퉁 부어오른 상처보다 더 끔찍한 건 내 마음이었다. 폭력에 굴복했다는 무력감, 노동 해방을 위해 싸우는 전사가 이깟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자괴감에 너무 괴로웠다.


2장 유가족이 되어 는 동생 박래전의 분신 이후 유가족이 된 저자가 많은 억울한 죽음들을 알게 되었고 유가협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여하면서 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 여사를 스승으로 삼는다.


p.144

그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었던 일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이었다. 투쟁 중에 자결하거나 국가 폭력으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면 목숨마저 버리고 민주화하려고 했던 사람을 나라가 기억해 줘야 하지 않냐는 이소선의 바람은 아직 미완이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될 일은 언제건 되더라고.”

이소선 어머니의 이 말을 낙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평등주의자, 이소선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다.


3장 가장 약한 존재들의 곁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를 다룬다. 민주화가 이루어졌어도 인권 유린의 현장은 곳곳에 있었고 어김없이 그가 출동했다. 인권사랑방 활동을 하면서 했던 일들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젊은이들은 설마?라며 어리둥절할 것이다. 시위 현장에 여경이 배치되고, 시련 속에서도 인권 영화제를 개최했고, 불심검문 거부운동, 크레파스에 살색이 사라졌다. 양지마을과 에바다 학교 사건까지. 그리고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이 책을 읽고도 그런 주장을 할까 싶다. ,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안 읽겠지...


p.268

내게 지금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국가보안법 펴지라고 답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단지 법률 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인권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1948121일 법이 제정된 이후 이 법으로 간첩의 누명을 쓰고, ‘빨갱이사냥의 희생양이 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옥에 잡혀가고, 고문을 당하고, 죽어가기까지 했는가. 이 법의 조항마다 수많은 사람의 피가 짙게 배어 있다. 허울만 국가안보였지 실상은 독재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법, 공포와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게 한 법이다. 나는 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한다.


4장 질 줄 알면서도 싸운다 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과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등, 2000년대 이후 더욱 확산된 신자유주의와 개발 논리에 맞서 싸운 치열한 투쟁이다. 여전히 재개발 지역에서는 전쟁이 계속된다. 철거민은 쫓겨나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이 들어선다. 2011년에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2013년에 인권센터를 개관했다.


대추리 상황 당시 막냇동생이 전경으로 복무할 때 그곳에 파견되었는데 시위자들이 과격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무섭다고 했다. 나는 내용도 잘 모른 채 동생의 안위만 걱정했고 동생이 제대하면서 그곳을 잊었다. 저자가 투쟁했던 현장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나라가 우리 땅을 내주고 우리 국민을 내쫓아 미국의 군사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p.290

국방부는 2008년까지 미군 기지 확장 공사를 마무리 짓고 미군에 기지를 넘겨주어야 한다며 주민들을 다급하게 쫓아냈지만, 실제로 기지가 완성되어 미군에 넘겨준 것은 2016년이었다. 2017710, 미군은 신청사 개관식을 열었고 그 뒤로 미8군을 비롯한 전국의 미군들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논과 마을을 빼앗고 그곳에 들어섰다. 이후 제주 강정 해군기자, 경북 성주의 사드 기지까지 갖추어지면서 중국을 상대하기 위한 미군의 군사 전략 거점이 완성되었다. 미국과 중국 간에 전쟁이 난다면 중국에서 제일 먼저 타격할 미군 기지는 당연히 평택 미군 기지이고, 제주 강정 해군 기지, 성주 사드 기지가 다음 목표물이 될 것이다.


5장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는 세월호 이후로 저자는 생명안전운동가로 거듭났고 지금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p.432

나는 말하고 싶다.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 사람들의 증언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고통에 더 공감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바로 나와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되고, 유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해온 박래군 활동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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