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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자주 쓴다. 보통 인위적이지 않은 상태를 이르는데, ‘자만추’라는 단어를 한 번 보자.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이 말은 누군가의 소개나 조건이 선행되는 선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도 실상 어떠어떠한 조건들을 품고 있지 않나? 그 조건들은 스스로 정했다기보다 부모나 친구들의 조언, 사회적 분위기나 유행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다는 말의 기저에는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움’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자만추’는 ‘자연스럽다’는 말 그대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나? 우리가 당연하게 하는 생각들안에는 선입견이나 어떠한 편견이 작동하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것을 선(善)이라고 여긴다.
나는 생물학 서적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이번에 출간된 이수지 박사의 <자연스럽다는 말>의 책소개를 보고 내 관심사라서 서평단에 신청해 받아 읽었는데 저자의 논리적인 서술에 설득당했다. 저자는 현재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학 연구소에서 현대 인류의 출산 및 생식 행동을 연구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이 연구소에서 생식노화 독립 연구단을 이끌 예정이라고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스러운 것은 항상 좋고, 정상적이고, 또 필연적이어서 우리가 꼭 지키고 따라야만 하는 것인가? 이 책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좇을 질문이다. 가능하면 끈질기게 묻자.”
1부에서 자연에 대한 물음, 2부는 인간에 대한 물음, 3부를 사회에 대한 물음으로 나누었다. 저자의 물음은 나도 의문을 가졌던 것들이었다. 저자가 물음에 대한 답을 다양한 학제와 실험, 인물로 논증해 내는 것을 읽으며 지적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특히 우리가 갖게 된 자연스러움의 정의에 이데올로기가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자연스럽다’는 낱말에 자연이 들어가는데 너무나 인간 위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1부에서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말한다.
p.25
어떤 자연 현상이 좋고 나쁨의 성질을 얻는 과정에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인간 자신의 가치판단이 선행되고 있다. 자연이 먼저 존재하고 그로부터 가치가 도출되는 양 생각하는 것이 오류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에서 답을 구하기 이전에 자연에 투사되고 있는 나의 가치 체계가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할 과제가 주어진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이들은 동성애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계에는 수많은 동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성 개체와 성적 행동을 하며 다수는 아닐지라도 자연계에 일정 비율로 이런 행동이 존재한다고 했다. 어쩌면 자연이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개별적 존재로서 다 다르며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저자는 그 고유함이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종도 똑같이 고유하다는 깨달음이 있을 때만 가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고유성을 인간에게만 적용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다 깨달았다. 정말이지 우리는 지극히 인간 본위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 판단으로 자연을 바라보는구나 싶다.
2부에서는 ‘남자니까, 여자라서’처럼 성에 따라 당연하게 붙는 말이 자연스러운 것인가를 묻는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험에 반대되는 실험,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할로 박사의 천 인형 엄마 실험인데, 새끼 붉은털원숭이가 천 인형에 정서적으로 의존한다는 결과를 토대로 애착이론의 주창자 존 볼비는 (생물학적)엄마만이 자식의 발달과 정신건강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실험을 했던 할로박사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천 인형은 새끼 원숭이가 편안하게 접촉할 상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일 뿐 그것이 꼭 엄마여야 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존 볼비의 주장만 알고 있었다. 정작 실험을 했던 할로 박사는 이름도 처음 들었고 그의 주장도 처음이다. 이 실험이 볼비의 주장으로 20세기 중반에 어떻게 해석되고 이용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p.90~91
철창 안에 매달린 천 인형, 새끼 원숭이가 원하는 편안함을 24시간 제공하는 이 엄마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다. 수동성은 보통 부정적 가치로 여겨지지만, 엄마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는 유독 그렇지 않다. 천 인형의 수동성은 ‘의식적 노력이 필요 없다’라는 뜻과 연결되면서 모성이 본능으로 여겨지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여성의 역할로 여겨져 온 가사 및 돌봄 노동이 가치 폄하되는 과정을 견인하고, 또 강화했다. 여기에 애착이론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90년대 후반 내가 좋아했던 리키 마틴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그는 인공 수정과 대리모를 통해 쌍둥이 아들을 얻었고 이후 남성 파트너와 결혼한 뒤에도 인공 수정으로 두 아이를 더 얻어 이제 네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남자가 공감능력이 떨어져 아이를 잘 못 키운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르자면 마치 여자는 어떤 능력이 부족하니 특정 직업군을 잘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남자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자만 있으면 왠지 아이를 잘못 키울 거라고 의심하고, 친부가 아닌 경우 심지어 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할거라는 의심까지 더한다. 남자가 아이를 못 키울 거라는 편견이 그들에게 아이 키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남자들의 잠재된 육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 이에 대한 합의와 지원이 필요하다. 남자들에게도 육아의 고충과 기쁨을 함께 할 기회를 더 만들어 주어야 한다.
3부에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다윈에 대한 것이다. 다윈은 생물종과 인간 집단이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한다는 상대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이들이 ‘더 나은’ 성질에 따라 서열화될 수 있다고도 보았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종에 속한다는 단성 기원론은 사람이 특정 방향으로 진보(해야)한다는 생각과 만났을 때 인종 차별과 공존할 수 있다. 다윈은 노예제에 반대했으면서도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이 지능, 도덕, 사회 제도 등 주로 정신적 측면에서 하등하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이들을 야만인이라 불렀다. 저자는 다윈 자신이 가진 편견을 몰랐다고 말했다. 다윈은 사람이 신의 피조물이 아니며 다른 동물들과 질적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집단(영국 백인 중산층)이 누리는 지위와 특권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p.198
다윈처럼 비범한 과학자도 틀릴 수 있다. 부족한 자료로 인한 증거의 한계, 또 다윈이 처한 역사적 상황(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더해 개인적 조건(영국 중산층 남성)에서 기인하는 관점의 한계 때문이다. 과학자 자신의 위치성에서 빚어진 생각의 습관을 벗어난 완전한 중립성이란 가능할까? 다윈의 사례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은 ‘자연스럽다’는 말을 우리가 얼마나 인간 위주(편견을 가진 채)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자연과 인간, 사회를 통해 설명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동안 교육과 독서로 배운 내 지식이 얼마나 협소했는지 알았다. 생물학과 진화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저자가 말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면 앎의 지평이 확장되고 그 안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