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결심 -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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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은 자의가 아니어도 죽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질병으로 인해 지극한 고통에 내몰렸을 때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조력사를 소재로 한 책, <1128, 조력자살><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읽어보았는데, 이번에 같은 소재의 신간 <고요한 결심>을 읽었다. 이 책은 에세이스트 이화열씨의 일곱 번째 에세이로 시어머니의 조력사에 대한 내용이 주 소재이다. 이전에 읽은 두 책이 스위스까지 함께 하는 여정을 중계하듯 보여주었다면 이번 책은 결이 조금 달랐다.


작가의 시어머니 아를레트는 말기암 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노화에 따른 질병들이 자신의 존엄을 무너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 딸이 스위스 업체에 신청을 했으며 아들과 며느리는 아를레트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시어머니가 살아있는 동안 그녀의 요청대로 목요일에 만나 샴페인을 같이 마셨다. 이 책은 아를레트의 스위스행 중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죽음을 말할 때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들을 이 책에 같이 실은 이유다.


독자 입장에서 아를레트가 어떤 사람인지는 순전히 작가가 주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사람 사이의 경계를 잘 지키는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을 존중했다. 나는 아를레트가 좀 외로워보였다. 깔끔한 성격에 자존심도 강한 사람 같다. 그래서 자신의 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직접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딸과 아들이 있지만 며느리와 교감이 더 잘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목요일 샴페인 시간도 그러했고 그녀가 며느리에게 했던 말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아를레트는 며느리를 만난 것을 운이 좋았다고 했고, 작가는 그 말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p.143


운이 좋았어라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덜 부담스럽고, 고맙다는 말보다 더 깊고, 미안하다는 말보다 따뜻하다. 어쩌면 이별을 가장 덜 아프게 만드는, 배려의 말 같다.


마지막 목요일의 샴페인 시간이었다. 아를레트의 성정답게 사람들에게 부고장만 보내달라고 하자 작가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썼다.

죽음을 선택하지만 슬픔에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작가의 남편은 자기 엄마가 죽는 걸 돕고 있다니.”라며 자조했지만 작가는 아를레트의 선택을 인정하며 작별 연습이라고 표현했다.


p.72


이 작별 연습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끝까지 서로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적어도 우리에겐, 배웅할 시간이 있다.


작가가 친정어머니와 장례절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꼭지에서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다른 듯해도 비슷해 보였다. 두 어른의 완강함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기 삶을 혼자 책임지겠다는 자존심이라는 것. 그리고 헤밍웨이의 말을 빌려 두 어머니를 이렇게 말했다.


p.209


헤밍웨이는 말했다. ‘인간이 죽을 때, 이치에 맞게 행동하려면 꽤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 어쩌면, 나에게는 두 어머니 모두 그랬다.


꽤 훌륭하게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가 시어머니 유품과 집을 정리하는 과정을 보며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만 사 모으고 하나씩 버려야 한다고. 작가가 딸에게 유물 더미를 남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에 격공했다. 딸이 걱정말라며, 어차피 그건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말에 작가는 웃었다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딸이 없기도 하거니와 유품이 아닌 쓰레기들이 될 물건들이 내 눈앞을 쉭쉭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밑줄 그은 문장들이 많았다.


- 인생은 비교할 수도, 객관화할 수도 없다. 그저 스스로에게 묻는 것, ‘나는 지금 괜찮은가?’정도의 질문이면 충분하다.

- 어떤 맛은 기억을 압축파일처럼 풀어낸다.

- 사라진 것은 몸 안의 기억으로 살아남는다.

- 사랑을 어떻게 주고 받았는지에 따라 남겨지는 감정의 지형은 다르다.

- 진정한 작별은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삶 속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 죽음은 순간이지만, 삶은 과정이다.

  슬픈 건 고독한 죽음이 아니다.

  어쩌면 외로운 삶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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