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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설탕과 전쟁이라! 제목만 봤다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설탕과 전쟁을 하는 이야기일까 싶을 것이다. 설탕은 인류에게 오랫동안 달콤한 존재였는데 이제는 성인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런 설탕을 주제로 한 미시사 <설탕 전쟁>을 집필한 저자 최광용씨는 30여 년간 약 80개국을 넘나들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사업가 겸 여행가이다. 오늘날 세계가 형성되는 데 설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이 책에서 알려준다.
역사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설탕의 존재를 알게 된 서구 열강이 어떻게 원주민을 착취했고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는지, 아메리카 대륙이 현재의 국명과 언어를 가지게 된 지리 역사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설탕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나는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역사책을 즐겨 읽는다. 학창시절 배운 역사는 왕조사였다. 세계사 역시 근대사 이전까지는 왕조사 위주였고 그 사이사이에 일어나는 큰 전쟁을 배웠다. 나이가 들어 세계사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동안 나는 정복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유럽인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번에 <설탕 전쟁>을 읽으면서 또 발견했다. 유럽인들이 항로를 개척해 신대륙을 발견하고 보험업을 위시한 상업을 발달시킨 행위들을 나는 꽤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인 내가 무적함대 에스파냐인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인의 마인드로 살았던 것이다. 그동안 배운 세계사와 읽은 역사책이 그런 시각이었으니 세뇌를 당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럽인들의 오만함과 잔인함을 확인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고 결과론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식의 평가도 있지만 나는 사탕수수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계속 생각했다. 남의 땅에 배를 몰고 쳐들어가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며 자기 소유라고 외친 후 그 곳의 자원을 수탈하고 사람들을 착취했다. 그것을 본 다른 유럽인들도 똑같이 행동하다가 전쟁을 했다. 원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럽인들 멋대로 땅을 나누고 나라 이름을 붙였다. 속국으로 만든 후 금을 캐고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차곡차곡 부를 쌓아나갔다. 오늘날 강대국이라 불리게 된 시작이었다. 그간 유럽인의 시각으로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럽다.
이 책으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6장 브라질에 대한 역사다. 포르투갈의 지배로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금과 사탕수수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겐 비극이었다. 브라질 국명은 그곳에서만 자생하는 나무 '파우브라질' 혹은 '페르남부쿠'에서 유래했다. 과거 플랜테이션 식민통치 영향으로 브라질 경제의 핵심은 여전히 농업이다. 설탕 왕국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설탕 생산국이며 설탕에서 에탄올을 추출해 자동차 연료로 활용하고 있다.
하와이 한인 이주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독립운동이다. 하와이에서 노예와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냈는데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한 이들 중 상당수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그들 중 장인환과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저격했다. 일본의 조선지배가 정당하다는 망언을 일삼았던 대한제국 외교고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가 1908년 3월 21일 샌프란시스코에 휴가를 와서도 조선 비하 발언을 했고 이틀 후 장인환과 전명운이 나선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미국에 산재했던 10여 개의 독립 단체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대한인국민회가 창립되었다. 설탕전쟁의 역사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로까지 연결되었다.
혀끝에 닿는 달달함이 얼마나 지난한 역사를 거쳐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위 리뷰는 하니포터 11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