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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소련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의 새 책 <붉은 시대>가 출간되었다. 그는 1919년에서 1930년대 후반까지를 ‘붉은 시대’라 명명했다. 항일투쟁의 역사에서 공산당 활동에 참여한 이들의 길을 샅샅이 훑어 그들의 활동이 식민지 조선에 미친 영향과 오늘날에까지 이른 면면을 짚는다. 광복 80주년,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5년을 기념할 의미 있는 책이다.
먼저 그는 1919년을 전지구적 반란의 해라고 불렀다. 1919년에는 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 팬데믹이 있었다. 러시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의 봉기가 이어졌다. 그해 조선에서 일어난 범민족적 시위 군중은 여성, 청소년, 천민계급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었고, 대중정치의 핵심 주체 ‘인민’이 탄생하여 근대사회가 명확한 골격을 이루었다.
붉은 시대의 사회주의적 급진주의는 조선의 근대문화에서 새로운 기여를 했다. 1부는 조선 공산주의운동 주체들의 조직, 분파투쟁과 공산주의 강령을, 2부 ‘새로운 지식’에서는 붉은 시대에 활동한 주요 인물들의 궤적을 따라간다. 이 책으로 알게 된 놀라운 점은 그 시대에 요구했던 것들이 오늘날 인권, 노동권과 복지국가의 요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김철주가 지도하는 전북 공산주의자 그룹의 강령 내용은 이렇다. 모든 시민의 무상의료, 무상의무교육, 국영 노인요양원과 국영 고아원 운영, 공창제 폐지와 사적 토지 몰수, 석방된 정치범의 생계 보장이다. 노동부문에서는 야간조 노동에 특별 임금, 청소년의 야간 노동 금지, 미성년자(16세 이하)와 연장자(45세 이상)의 노동 폐지 등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이루어진 것도 있고 여전히 요원한 것도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고 연구했을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덕분에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지식인, 농민, 노동자 구분 없이 그들이 추구했던 근대화의 열망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가히 뜨거웠다.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 한국전쟁 전후 공산주의자들은 일제 강점기 보다 더한 탄압으로 숙청당했고 독재자 박정희로 이어졌다.
저자는 결론에서 ‘1945년 이후 북조선과 남한의 궤적은 식민지 조선의 불꽃같았던 붉은 20년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썼다. 또 ‘해방 이전 조선의 지적 세계에 동시대와 그 이 후에 깊은 흔적을 남긴 전통이 존재했다’는 것을 이 책으로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저자가 증명하는 붉은 시대의 모습과 인물들을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